문산역

2019년 6월 30일 문재인 대통령과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사상 처음으로 판문점에서 만났습니다. 갑작스러운 만남에 기자로써 취재를 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6월 29일, 30일 방한하기로 한 소식이 알려진 후 국내외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에서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이를 부인했습니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이 일본에서 열린 G20 정상회담에 참석하고 있을 때 트위터로 김정은 위원장을 만날 수도 있다는 뜻을 나타냈으며 문재인 대통령과 노력하자는 대화도 나눴습니다. 

이에 두 정상 또는 세 정상이 만난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정상들이 만난다면 경호 문제, 의전 등을 고려했을 때 판문점이 유력했습니다.

필자는 6월 29일 기사들을 보면서 고심했습니다. 아마도 판문점에 가는 것은 청와대 출입기자 그것도 일부이기 때문에 저는 못가는 것이 확실했습니다. 일반인으로 판문점 들어가는 것을 알아보니 국정원에 신청을 해야하는데 이미 8월까지 신청이 꽉차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더구나 만약 정상회동이 이뤄지면 예약된 일정도 모두 취소된다고 확인했습니다.

그렇다면 서울에서 나오는 자료나 기사들을 보고 기사 쓰는 것과 근처라도 가보는 방법이 있었습니다. 가만히 앉아있기 보다는 뭐라도 하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무것도 안하고 안 되는 것과 최선을 다하고 안 되는 것은 분명하게 다르기 때문입니다. 

저는 판문점 근처인 통일대교, 임진각이라도 가보자는 생각에 6월 29일 부랴부랴 사무실에서 집으로 돌아간 후 속옷, 세면도구 등 짐을 챙겨나왔습니다. 그리고 파주 문산으로 향했습니다.

제가 차가 있다면 6월 30일 새벽이라도 출발할 수 있지만 저는 차가 없었습니다. 더구나 30일 정상회동이 몇시에 열릴지 여부는 미지수였습니다. 그래서 문산에서 자고 30일 상황을 봐서 그 근처로 가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문산 시내

문산역에 도착했지만 계획없이 출발한 것이어서 숙소부터 구해야 했습니다.

6월 29일은 토요일로 인근 부대 장병들이 외박을 나왔고 몇몇 모텔은 예약이 끝난 상황이었습니다.

이미 저녁이 된 시각이었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 없이 방이 있는 모텔을 찾다보니 허름한 곳(?)을 예약했습니다. 모텔 상황은 당황스러웠습니다.

화장대에는 긴 머리카락과 성인용품 케이스 등이 그대로 있었고 세면대에서는 벌레가 나오고 에어콘은 고장에 TV는 작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곳을 찾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진짜 눈만 붙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산자유시장 모습

저녁 식사를 해결하기 위해 나온 문산자유시장은 관광객들을 잡기 위해 야시장도 만들어놨지만 몇몇 어르신들이 술에 취해 몸을 흔들고 있을 뿐 오후 8시에 대부분 식당, 상가들이 일찍 문을 닫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나마 문산에서 저를 반겨준 것은 도인(?)들이었습니다. 거리를 걷고 있을 때 두 번이나 영혼이 맑다고 이야길 해주셨습니다.

결국 문산시외버스터미널 근처에서 햄버거를 사서 먹고 숙소로 돌아와 잠을 자야했습니다. 밤 10시가 넘은 시각 중년 남성 취재원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마침 주말을 맞아 파주에 와 있는데 제가 문산에 있는 것인지 물어보더군요. 그리고 파주에서 제 숙소 근처로 격려를 해주기 위해 차를 몰고 오셨습니다. 잠깐 동안 호프집에 가서 저는 맥주를 마셨습니다. 취재원은 차를 가져왔기 때문에 사이다를 마셔야 했습니다. 그렇게 1시간이 조금 넘는 시간동안 수다를 떤 후 취재원을 보내고 숙소에 와서 잠이 들었습니다

30일 아침에 일어나 아침을 먹고 문산에서 버스를 타고 통일대교, 임진각 근처로 향했습니다. 아침을 먹는 동안 주변 테이블의 어르신들이 불경기를 탓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문산 역시 최악의 불경기라는 하소연이었습니다.

인근에는 수 백명의 경찰들이 버스를 타고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30일 오전에는 트럼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이 판문점을 방문해 김정은 위원장을 만난다는 것이 이미 기정사실화 됐습니다. 

 

판문점으로 향하는 통일대교에는 취재진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헬기를 이용해 판문점으로 이동할 것으로 알려졌지만 기상 상황이 안 좋아지거나 동선을 바꿀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또 방송사들은 판문점에서 가까운 곳에서 자리 잡고 리포팅을 하기 위해 통일대교로 몰려들었습니다.

여러 대의 차량과 버스 등이 통일대교를 넘어 북쪽으로 향했습니다. 회동 준비를 위한 실무진들이 이동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외신기자들도 통일대교로 몰려왔습니다. NHK, TV아사히, NBC 등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문제는 무더운 날씨였습니다. 그늘조차 없는 통일대교에서 30도가 넘는 무더위에 다들 지쳐갔습니다. 차를 가져온 기자들은 교대를 하며 차에서 쉬고 대기하기를 반복했습니다. 

저 역시 화장실, 식사, 물 등이 필요했기 때문에 인근 임진각으로 철수해야 했습니다. 임진각에서 대기하면서 인터넷으로 오후 1시 20분 한미 정상의 기자회견을 본 후 판문점으로 출발한다는 소식을 들은 후 다시 통일대교로 향했습니다.

두 정상이 헬기를 타고 간다는 소식이 나왔지만 미처 이를 알지 못한 시민들도 있었습니다. 한 시민은 트럼프 대통령을 환영한다는 피켓을 들고 통일대교에서 기다리기도 했습니다. 또 한 어르신은 "트럼프 대통령을 환영하려고 통일대교에 왔다"고 했다가 헬기를 이용한다는 소식에 발길을 돌렸습니다. 한 30대 남성은 "트럼프 자동차라도 구경하려고 왔다"고 했다가 헬기를 이용한다는 경찰의 설명에 차를 돌렸습니다.  

 

오후 2시30분이 조금 넘은 시간 헬기들이 나타났습니다. 우선 2대의 헬기가 임진각 방면으로 북으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이어 5대의 헬기의 통일대교를 따라 북으로 향했습니다. 앞선 2대의 헬기 중 1대에 문재인 대통령이 탑승한 것으로 보였으며 5대의 헬기 중 트럼프 대통령이 탄 헬기가 있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5대의 헬기 중에는 야포도 들어올린다는 시누크 헬기가 2대 이상 포함됐습니다. 시누크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전용차량 등이 탑재됐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리고 5대 중에는 구급헬기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추가로 2대의 헬기가 더 북쪽으로 이동했습니다. 곧이어 문재인, 트럼프 대통령의 판문점 도착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아쉽지만 예상처럼 판문점으로 취재를 하러 갈 수는 없었습니다. 일부 제한된 기자들만이 판문점 남북미 회동을 취재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인터넷으로 남북미 정상의 만남을 보면서 결국 더위를 이기지 못하고 임진각으로 다시 발길을 돌렸습니다.

임진각에서는 나드리 나온 가족들과 관광객들이 붐볐습니다. 그중에는 외국인 관광객들도 있었습니다.

 

임진각과 주변 공원을 방문한 사람들은 남북미 회담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스마트폰으로 회동을 지켜보며 관심을 나타냈습니다. 하지만 차분한 관심이었습니다. 뉴스를 보다가 각자 목적에 따라 관광을 하고 노는 모습이었습니다.

남북 평화와 협력에 대해 기대하면서도 그동안 남북 관계의 굴곡 때문에 오히려 덤덤한 분위기였습니다.

개성공단이 운영될 때 관련 일을 했다는 한 주민은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을 만나면 분위기도 좋아지고 협력도 되지 않을까 싶네요"라면서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과연 통일이 될까요? 개성공단을 할 때만 해도 기대감이 컸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언제 상황이 다시 변할지 모릅니다. 남북 관계가 잘 됐으면 좋겠지만 과거 경험이 있기 때문에 섣불리 기대하지 않습니다. 더 지켜봐야하지 않을까요"라고 말했습니다.

사상 초유의 남북미 회동의 열기와 또 한편의 차분함 속에서 저는 기사를 쓴 후 취재를 끝내고 버스를 타고 서울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1박2일 동안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지만 실망하지도 후회하지도 않습니다. 실패해도 도전하고 또 다시 도전하는 것이 기자입니다. NK경제는 앞으로도 도전을 계속할 것입니다.   

강진규 기자  maddog@nk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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