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8일 수십 만 명의 홍콩 시민들이 참여한 집회와 행진이 평화적으로 끝나는 것 같았다. [홍콩 르포2] 다시 거리로 나선 홍콩 시민들...사랑해야 한국 외쳤다

시민들이 자연스럽게 해산했고 센트럴 지하철역에서는 시민들이 질서있게 지하철을 탑승했다. 그런데 저녁 7시(현지시각)가 조금 넘은 시각 홍콩 현지 언론들을 중심으로 속보를 보도하기 시작했다. 경찰과 시위대가 대치하며 긴박한 상황이라는 것이었다.

일부 시위대가 행진이 마무리 된 센트럴 거리에 바리케이트를 치고 해산을 거부했다. 이에 경찰이 출동해 대치하게 된 것이다.

현장에는 남아 있는 시위대와 각국 기자들, 유사시를 대비한 구급요원들 그리고 집회 주최측 관계자들로 북적였다. 주최측은 밤 10시까지 집회와 행진을 끝내기로 신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최측은 집회를 마무리하려고 했다. 그러나 일부 시위대는 쇠파이프와 돌, 벽돌, 우산 등을 준비하고 있었다. 경찰과 대치 상황을 고려한 것이었다.

경찰은 충돌을 우려한 듯 바리케이트 앞을 막아서고 압박할 뿐 진압에 나서지는 않았다. 밤 10시까지 집회를 허가한 만큼 시간을 보내며 자진 해산을 유도하는 듯 했다.   

 

 

각국 기자들은 긴박한 상황을 취재하기 위해 바리케이트가 설치된 안과 밖을 오가며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소식을 듣고 도착한 기자들이 계속 나타나면서 현장은 프레스센터를 방불케했다.

센트럴역은 시위대 유입과 기물 파손을 우려해 일찍 문을 닫았다. 이에 지하철을 이용하려던 일반 시민, 관광객 등이 항의를 하기도 했다. 

구급요원들의 움직임도 빨라졌다. 경찰과 시위대가 대치하고 있는 중간에 구급요원들이 배치됐다. 위험한 상황을 고려해 이들은 헬멧, 방독면을 비롯해 각종 안전장비를 갖추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주최측은 현장에서 철수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현장의 시민들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경찰은 해산을 유도하려는 듯 오거리 중 2개 도로를 차단하고 3개는 열어 놓고 있었다. 3개 도로를 통해 시민들이 현장을 떠나기 시작했다. 

현장에는 시위대가 남기고 간 돌멩이, 쇠파이프, 우산 등이 남아 있었다. 밤 10시가 다가오면서 일부 시위대만 남았다. 기자와 구급요원들이 시위대 보다 많았다. 

그럼에도 한 시민은 혼자 확성기를 이용해 경찰을 향해 각종 이야기를 쏟아냈다. 경찰에 대한 도발적인 언행에도 경찰은 꿈쩍하지 않았다.

대치 중이던 일부 경찰들이 돌아가는 모습을 보이면서 긴장이 풀렸다. 구급요원들도 휴식을 취하거나 돌아가기도 했다. 

성동격서 전략이었을까? 오거리에서 경찰이 막고 있던 2개가 아닌 전혀 다른 쪽에서 경찰차가 몰려왔다. 그리고 눈깜짝할 사이 경찰들이 쏟아져 나왔다. 경찰들은 각종 보호장구를 갖추고 손에는 곤봉을 들고 있었다. 일부 경찰은 고무탄총, 최루탄총 등을 들고 있었다. 이들은 차도에서 물러날 것을 요구했다. 시위대, 시민들은 물론 기자, 구급요원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경찰의 위협에 다들 인도로 물러섰다.

 

한 할머니는 십자가를 들고 경찰차를 막아서기도 했다. 하지만 경찰이 차에서 내려 할머니를 옆으로 인도하자 역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경찰은 주변을 경계하면서 바리케이트 철거에 나섰다. 철거가 이뤄지는 동안 그리고 끝난 후에도 도로로 나오지 말라고 소리쳤다. 도로로 들어갈 경우 당장이라도 곤봉을 내리칠 분위기였다.

 

경찰이 현장에 진입해 바리케이트를 해체하면서 남아있던 시민들도 자리를 떠났다.

경찰은 한 곳의 바리케이트를 철거한 후 다른 곳의 바리케이트 철거에도 나섰다. 철거 작업은 군사작전처럼 삼엄한 경계 속에서 이뤄졌다. 철거가 마무리될 즈음 남아있는 시위대는 거의 없었다. 각국 기자들만이 철거 작업을 취재하고 있었다. 철거가 마무리 됐을 때 거리는 황량한 모습이었다.

자칫 폭력 사태로 얼룩질 뻔 했던 12월 8일 밤 시위대와 경찰의 대치는 그렇게 무사히 끝났다. 

홍콩 = 강진규 기자  maddog@nk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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