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 매국노의 대명사인 이완용을 북한에서도 대표적 친일파로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북한은 그가 단순히 친일만 한 것이 아니라 친미, 친러, 친일로 바꾸면서 살아온 기회주의자로 비판하고 있다.  

NK경제는 북한 과학백과사전출판사가 편찬한 조선대백과사전(스마트폰용) 중 '정도전(북한명 리완용)'에 관한 내용을 확인했다. 

북한 사전은 이완용이 친일매국역적이라고 정의했다.

북한 사전은 이완용이 조선봉건정부의 양반관리 판중추부사 이호준의 아들로 1882년 문과에 합격한 후 여러 관직을 거쳐 1888년 미국 주재 조선공사관 참사관으로 임명돼 미국에 갔다가 공사 박정양이 소환된 뒤 임시대리공사로 있었다고 소개했다.

사전은 그가 1894년 일본 공사로 파견됐고 1896년에는 이범진의 친러파 내각 성원으로 매국적 정책을 실시하면서 혁신관리 김홍집 등을 살해하는데 공모했다고 설명했다.

사전은 이완용이 일제에 의한 을사5조약과 정미7조약의 사기적인 날조에 관여함으로써 매국역적으로서의 정체를 드러냈다고 비판했다. 1910년 소위 전권위원으로 매국조약인 한일합병조약 날조에 직접 조인했다는 것이다.

북한 사전은 이완용에 대해 "큰 나라에 아부하고 나라와 민족을 팔아 제 한 몸의 부귀영화를 꾀한 이완용은 일생을 시세의 변동에 따라 친미, 친러, 친일주구로 변신하면서 살아온 철저한 사대매국노이며 만고역적이다"라고 평가했다.

사전은 그가 나라를 팔아넘긴 대가로 일제로부터 후작의 칭호를 받았고 일제 조선총독부 중추원 고문 겸 부의장으로 일제 식민지통치를 방조했으며 3.1 운동을 진압하는데 발벗고 나서는 등 민족반역행위를 계속하다가 죽었다고 설명했다. 조선인민들이 그와 공모한 자들을 을사5적, 정미7적 또는 만고역적으로 규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를 통해 북한에서도 이완용을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이며 친일파로 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이한 점은 북한 사전이 이완용이 미국에서 근무한 사실과 친러시아 정권에 가담한 일도 소개했다는 것이다. 북한은 이완용이 친미, 친러, 친일로 변신한 기회주의자였다고 평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강진규 기자  maddog@nk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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