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살아있는 사람을 죽었다고 소리친다면 제 정신이 아니라고 할 것이다. 그렇게 외친 사람이 국가 안보를 위협하고 죽은 사람을 모욕하며 나아가 사람들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한다면 우리는 그 사람을 사이코패스라고 부를 것이다.

현실 세계에 그런 악당이 있느냐고 반문한 것이다. 바로 북한, 통일을 취재하는 대한민국 언론과 기자들이 그렇다.

최근 조성길 전 북한 이탈리아 대리대사가 한국에 입국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2018년 11월 잠적했던 조성길 대리대사의 행적은 그동안 베일에 쌓여있었다. 그런데 그가 약 1년 전 한국에 입국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정부 관계자들은 물론 보수야당 의원들 조차 뉴스가 나와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조성길 대리대사가 한국에 입국한 사실이 알려지면 북한에 있는 가족들의 안전이 위협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 관련 취재를 하다보면 이런 사례가 종종있다. 취재원이 얼굴, 이름 등이 언론에 노출돼서는 안 된다고 요구한다. 남한에 입국했지만 북한에서는 실종이나 중국으로 넘어간 것으로 행정 처리된 사람이 있다. 그런데 한국에 있는 것이 알려지만 조성길 대리대사 처럼 북한의 가족, 친척, 지인들에게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요청이 있으면 기사 자체를 보류한다. 불가피한 경우에는 사진을 모자이크 처리하고 가명, 익명으로 보도를 한다. 사람의 생명보다 중요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을 보도한 언론사와 기자는 국민들의 알 권리를 주장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조성길 대리대사가 입국한 것이 국익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 묻고 싶다. 한국 정부 하물며 야당까지 관련 사실을 공개하지 않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

북한에 있는 조성길 대리대사의 가족들이 만약 위험에 빠진다면 해당 언론사와 기자가 책임을 질 수 있는가?

언론과 기자 활동에도 기본적인 윤리가 있고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 언론사와 기자가 사람을 살리는 기사를 써야지 사람을 죽이는 기사를 써서는 안 된다.

조성길 대리대사 사건 뿐만이 아니다. 올해 4월 한국 언론들은 북한 김정은 위원장 위독설에 이어 사망설을 기사로 내보냈다.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모습을 드러내면서 가짜뉴스로 확인됐다.

살아있는 사람을 죽었다고 기사를 쓴 것 부터 잘못됐다. 더구나 북한 최고지도자에 대한 이런 보도는 북한에 대한 모독으로 인지될 수 있다.

가짜뉴스로 인해 남북 관계가 긴장상태에 빠지고 만약 국경지대에서 총격사건이 발생해 사람들이 죽고 다친다면 과연 그 언론사와 기자는 책임을 질 수 있을까?

지난 9월 발생한 해양수산부 소속 공무원 피살 사건에 대한 언론들의 보도 역시 문제가 있다. 사건을 보도하는 과정에서 일부 언론이 한국군의 대북 감청과 정보 수집, 분석에 관한 내용들을 상세히 보도했다. 

그동안 군은 서해에서 발생할 수 있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대북 정보 수집체계를 갖춰왔다. 그런데 이에 관한 내용이 알려지면 그동안 구축된 시스템은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 국가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되는 것이다. 

더구나 이런 부류의 기사들은 안보를 중시한다는 보수 매체들이 더 많이 쓰고 있다.

언론이 정부를 비판하고 감시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쓸 수 있는 기사가 있고 써서는 안 되는 기사가 있다. 

만약 군이 대북 정보수집 체계로 남한 민간인을 감시했다면 그것은 뉴스가 된다. 그러나 이번 사건처럼 군이 본연의 업무인 대북 정보수집 체계를 무용지물로 만들어 군인들 나아가 국가를 위험에 빠트리는 기사는 나와서는 안 된다. 

북한군에 피살된 공무원에 대한 보도 역시 마찬가지다. 이번 사건은 한국 민간인이 표류하다가 북한군에 의해 피살된 것이 핵심이다.

그런데 일부 언론은 죽은 공무원에 대해 자극적인 보도를 하고 있다. 기사를 쓸 때 피해자에게 가해진 위해 방법 등을 함부로 써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강도 살인 사건이 발생했을 때 강도가 피해자의 어디를 칼로 찌르고 어떻게 죽였는지 뉴스에 담지 않는다. 고인에 대한 명예를 훼손하고 가족들에게 마음에 큰 상처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피살된 공무원의 월북 여부와 관련해서도 함부로 기사가 나오고 있다. 이런 보도 역시 피해자 가족들에게 큰 상처가 된다.

기자는 진실을 보도해야 한다. 그 진실이 때로는 고통스럽지만 보도해야 한다. 하지만 기사가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고, 국가 안보를 위협하고,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를 준다면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그것이 꼭 알아야 할 진실인지 아니면 알려지지 않아도 상관없는 사실인지 말이다.

북한, 통일에 대한 취재가 얼마나 힘든지 필자 역시 잘 알고 있다. 북한 관련 기사는 정보 습득이나 확인이 어렵다. 또 언론사 국장, 부장 등 간부들의 특종 압박과 기사 방향 지시도 있을 것이다. 또 모든 사람은 의도하지 않게 실수를 한다. 필자를 포함한 기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 더구나 많은 한국 언론들이 4월 김정은 위원장 사망설 사태를 경험하고도 반성도, 사과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9월, 10월 또 다시 잘못된 보도를 하고 있다. 이것은 좌파, 우파나 이념의 문제가 아니다. 그런 언론들은 사라지는 것이 대한민국에 도움이 된다.

국민들이 기자를 기자와 쓰레기의 합성어인 기레기라고 부르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 특히 거기에는 북한, 통일 분야 취재 기자들이 크게 일조했다.       

필자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다른 언론을 단순히 비난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북한, 통일 분야 취재 기자들에게 하소연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대로 가면 북한, 통일 분야에서 한국 언론도, 기자도 국민들의 신뢰를 잃고 공멸할 것이다. 

지금이라도 잘못된 행태를 반성해야 한다. 아닌 것을 아니라고,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고 말해야 한다. 

확인도 안 된 상황에서 김정은 위원장 사망설을 다시 쓰라고 한다면 그것은 아니라고 회사, 국장, 부장에게 항변하자.

조성길 대리대사 사건과 같은 특종을 쓰라고 한다면 사람의 생명이 더 중요하다고 편집국에 외치자. 

어쩌면 그렇게 항변해도 달라지는 것이 없다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과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다르다.

언론사도 직장이기 때문에 그렇게 항변을 했음에도 억지로 기사를 써야할지 모른다. 그래도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하는 정신이 죽지 않는다면 언젠가 세상은 변화할 것이다.

그리고 지렁이 만큼의 용기도 없다면 북한 취재 기자를 관두라고 조언하고 싶다.

강진규 기자  maddog@nk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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