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이며 문학인으로 유명한 단재 신채호 선생에 대해 북한은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그의 무장 투쟁에 문제가 있었다고 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NK경제는 북한 과학백과사전출판사가 편찬한 조선대백과사전(스마트폰용) 중 '신채호'에 관한 내용을 확인했다.

북한 사전은 신채호 선생이 애국문화활동가이며 작가로 20살 때 조선의 최고 교육기관인 성균관 박사벼슬을 지냈다고 소개했다.

북한 사전은 신채호 선생의 독립운동에 대해 자세히 소개했다. 사전은 "신채호는 20세기초 일제의 침략 책동이 더욱 강화되고 봉건통치배들의 사대매국 행위가 극도에 이르러 나라와 민족의 운명이 칠성판위에 놓이게 되자 구국의 뜻을 품고 애국문화운동에 나섰다"고 지적했다.

사전은 그가 황성신문, 대한매일신보를 비롯해 잡지 대한자강회월보, 서우, 서북학회월보 등에 반일애국사상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글들을 많이 발표했으며 그가 쓴 책 '을지문덕전'과 '논문 역사와 애국의 관계'는 주민들에게 반일애국사상을 고취한 대표적인 글이라고 설명했다.

또 사전은 신채호 선생이 이승만의 외교론과 안창호의 준비론을 배척하고 일제와의 무력항쟁을 제창했으며 1907년 비밀정치단체 신민회에 참가해 일제 침략자들과 매국적 봉건 통치배들을 반대하는 정치활동을 벌렸다고 전했다.

사전은 신채호 선생이 일제의 탄압이 강화되자 러시아 연해주로 망명했으며 해조신문을 발행했고 1915년 중국으로 간 후 동포들이 간행하는 신문을 맡아보았고 중국 신문에도 많은 글을 발표했다고 전했다.

 

 

사전은 신채호 선생이 해외에서 역사 연구를 계속해 특히 봉건지배계급과 일제어용가들에 의해 날조된 역사를 바로 잡기 위한 투쟁을 벌렸다며 그 대표적인 저작이 조선사연구초라고 지적했다.

사전은 "애국적이며 진보적인 역사가이며 문학가였던 그의 저서들은 당시 인민들을 애국주의 정신으로 교양하고 일제 침략자들을 몰아내기 위한 투쟁을 불러일으키는데 일정한 기여를 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북한 사전은 신채호 선생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도 했다. 사전은 "그러나 그는 자신의 계급적 제한성으로 인해 반일 의병운동, 독립군 운동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신채호 선생이 무정부주의 계열 단체에 참가하고 의열단 활동을 한 것에 대한 비판으로 보인다. 북한 사전은 신채호 선생의 주요 독립 운동 중 하나인 의열단 참가와 조선혁명선언문 등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그는 무정부주의연맹에 가입해 활동했으며 동방연맹과의 사업을 위해 대만에 상륙하다가 인제 헌병대에 체포돼 10년형을 받았다. 그는 여순감옥에서 옥중생활을 하다가 옥사했다"고 전했다.

신채호 선생이 몸 담았던 의열단 김원봉 단장은 해방 후 귀국했다가 월북한 바 있다. 이후 1950년대 북한에서 숙청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강진규 기자  maddog@nk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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