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28일 SBS가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들이 감사원 감사를 앞두고 삭제한 자료 목록을 보도했습니다.

삭제 문서 목록 중 '북한지역 원전건설 추진방안'에 관한 내용이 확인돼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앞서 지난해 11월 문재인 정부가 북한에 원전을 건설하는 방안을 검토했다는 보도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들은 '소설'이라고 전면 부인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산자부 공무원들이 삭제한 목록에서 문서의 존재가 확인되면서 문재인 정부가 몰래 북한에 원전 건설을 추진한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 NK경제에 문의를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관련된 내용을 제가 아는 범위 내에서 설명드리고자 합니다.

사실 남북 원자력 협력과 원전 건설 등은 예전부터 거론됐던 내용입니다. 

위의 내용은 2016년 11월부터 4개월 간 한국원자력통제기술원이 진행한 '원자력을 이용한 북한 에너지 솔루션 개발 연구' 용역 내용입니다. 당시는 박근혜 정부 시절이었고 문재인 정부는 2017년 5월 출범했습니다.

 

문서를 보면 '북한의 핵포기를 유도할 수 있는 북한 내 원전 단지 건설을 통한 전력 공급 방안 개발'과 '북한 원자력 발전 시설 도입을 위한 국제 공조 체제 개발' 등에 관한 내용이 있습니다.

즉 북한의 핵포기를 대가로 원자력 시설을 건설해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문서는 조달청 나라장터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이번에 문제가 된 산자부 뿐 아니라 다른 부처에서 남북 원자력 협력 아이디어가 나온 경우도 있습니다.

NK경제는 2018년 10월 과기정통부, 남북 원자력 협력 방안 연구 기사를 보도했습니다.

2018년 9월 28일 과기정통부는 '2018년도 하반기 원자력정책연구사업' 공고를 게재했습니다. 과기정통부는 3개 과제 중 하나로 '한반도 비핵화 진전에 따른 과학기술적 대응과 남북 원자력 협력 방안연구'을 포함시켰습니다.

원자력
원자력

문서에는 구소련 해체과정에서 국제과학기술센터(ISTC) 설립, 운영한 사례 등을 참고해 북한 전력공급 및 인프라 확충, 상업용 원전(중소형, 대형원전), 의료용동위원소 등 남북 원자력 및 방사선 협력 모델을 만든다는 내용이 언급돼 있습니다. 또 고성 등 비무장 지역 중심으로 남북 공동 에너지 특구 설치해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북한 원자력 전문인력의 재배치 등 방안도 마련한다고 돼 있습니다.

즉 문재인 정부 이전에도 남북 원자력에 관한 구상이 있었고 산자부 뿐 아니라 다른 부처에서도 아이디어가 나온 것입니다. 

이같은 논의가 나온 배경은 19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가 이뤄졌습니다. 합의 내용은 북한이 핵시설을 폐지하고 대신 미국, 한국 등이 북한에 경수로를 건설해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건설이 진행됐습니다. 물론 합의가 파기되면서 경수로 건설도 중단됐습니다.

이런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북한 비핵화를 위한 방안으로 원자력 발전 등을 교환하는 구상이 관련 업계, 학계 등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된 바 있습니다. 

즉 최근에 문제가 된 산자부의 북한 원전 지원 방안이 갑자기 뚝 떨어진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번 사안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산자부 공무원들이 내용을 비공개해왔고 자료를 삭제했기 때문입니다.

앞서 한국원자력통제기술원와 과기정통부가 추진한 구상은 공개된 것입니다. 한국원자력통제기술원은 나라장터에 내용을 공개했고 과기정통부는 공고를 했습니다. 찾아보면 누구나 확인이 가능합니다.

만약 산자부가 북한 원전 지원 구상을 공개하고 자료도 삭제하지 않았다면 지금과 같은 혼란은 없었을 지도 모릅니다. 숨기고, 감추고, 삭제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의혹을 갖는 것입니다. 필자 역시 왜 자료를 삭제했는지 궁금합니다.

산자부 뿐 아니라 다른 부처 공무원들 중 남북, 통일에 관련된 사안을 비밀로 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보안이 필요한 내용은 그렇게 해야겠지요.

그러나 남북 협력에 관한 내용은 공개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내용에 대해 공청회도 하고 국민, 전문가 의견도 수렴해야 문제점을 수정하고 더 좋은 협력 방안이 나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산자부 공무원들이 말과 행동이 달랐던 것도 문제입니다. 정부는 원전이 위험하다고 남한에서 탈원전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위험한 원전은 북한에 건설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산자부가 친환경 재생 에너지 사업에 매진한다면 남북 친환경 재생 에너지 협력 방안을 구상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정부 관계자들의 말과 뒤에서 하는 행동이 달랐기 때문에 국민들이 불신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필자는 이번 사안에 대해서 좀 더 냉정하게 바라보고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생각해보길 제안하고 싶습니다.

강진규 기자  maddog@nk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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