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8일 평양에 도착한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로동당 위원장과 환영행사를 위해 이동하고 있다.
9월 18일 평양에 도착한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로동당 위원장과 환영행사를 위해 이동하고 있다.

2018년은 뜨거웠습니다. 그해 4월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을 시작으로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이 열렸고 9월에는 평양 남북 정상회담이 개최됐습니다.

개인적으로 9월 평양 남북 정상회담 취재는 너무나 힘든 경험이었습니다. 제가 청와대 출입기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평양에 가서 취재를 하는 것은 애초에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평양에 취재를 가는 기자는 극소수였기 때문에 남한 정부는 서울 동대문에 남북 정상회담 프레스센터를 마련했습니다. 이 프레스센터에서 평양에 가지 못한 기자들에게 빠르고 신속하게 정보를 제공하고 브리핑도 하겠다는 설명이었습니다.

남한 정부는 평양 남북 정상회담 프레스센터 등록을 평등하고 공정하게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프레스센터 등록 홈페이지를 개설하고 신청을 받았습니다. 대형, 소형 언론사에 관계없이 매체당 등록 인원을 제한하고 공평하게 선착순으로 등록을 하겠다고 설명했습니다.

저는 신청이 시작되자 마자 바로 신청을 했고 확인까지 받았습니다. 전화로 재차 확인을 했고 무난하게 프레스센터 등록이 될 것이라는 답변을 받았지요.  

그런데 정상회담 날이 다가오면서 갑자기 저는 프레스센터 등록도 안 되고, 출입도 안 된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그쪽에서 신청도 받았고 확인까지 했는데 갑자기 저는 대상이 아니라고 하더군요. 프레스센터 관계자들은 묵묵부답이었습니다.

이와 관련해 당시 소문이 돌았습니다. 당초 1개 언론사에서 프레스센터에 출입할 수 있는 기자수를 몇명으로 정했는데 일부 메이저 언론사들이 더 많은 기자 출입을 요구했다는 것입니다. 1곳이 더 많은 기자 출입을 요구하자 다른 곳들도 연쇄적으로 등록 기자를 늘리겠다고 나섰다는 것입니다.

또 일부 대형 언론사에서는 선착순 신청과 관계 없이 나중에 무조건 등록을 더 해달라고 한 곳도 있다는 소문이 있었습니다.

저는 공정하게 프레스센터 등록이 이뤄진 것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대통령비서실, 문화체육관광부(프레스센터 운영 담당), 통일부(정상회담 주무부처)에 각각 프레스센터 등록 신청 정보를 알려달라고 정보공개 청구를 했습니다.

개인정보는 다 삭제하고 어느 매체의 A, B, C가 몇월, 몇일, 몇시, 몇분에 신청을 했는지 기록을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기록에서 저의 신청이 늦어서 탈락한 것이라면 수긍하겠다고 말이죠.

대통령비서실은 제 정보공개 청구 요구를 문화체육관광부로 이관했습니다. 그쪽에서 알아서 대응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언론사들이 평양 남북 정상회담 프레스센터 등록을 신청한 타임테이블 기록이 3급 국가기밀이라며 공개를 거부했습니다.

저는 언론사들이 프레스센터 등록 신청한 내용이 왜 국가기밀이냐고 항의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문체부는 계속 국가기밀이라며 오히려 제가 반복적으로 요청을 하고 있다고 대응을 거부했습니다. 

통일부에서는 전화가 왔습니다. 정상회담 프레스센터 관리는 문체부 소관으로 통일부는 정보, 기록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제 청구에 대해서 (다른 부처 담당자들과) 논의를 했는데 입장이 곤란하다고 읍소하더군요. 결국 저에게 청구를 취하해달라고 했습니다. 

국가적인 행사를 하는데 제가 소란을 일으켜서 곤란하다는 것이었죠. 국가와 민족이라는 대(大)를 위해 저라는 소(小)를 희생하라는 의미로 해석했습니다.

정부의 이야기처럼 공정하고 평등하게 프레스센터 등록이 진행됐다면 정부 기관들이 자료를 공개하지 않고 또 저렇게 민감하게 반응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입장에서는 부조리한 일을 당한 것으로 느껴지는데 진실을 확인할 방법도, 그것을 알릴 방법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국가적인 중대사에 누를 끼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서 청구를 다 취하했습니다. 또 이런 상황에 대해 잡음이 나오지 않도록 함구했습니다. 

다만 속으로는 원칙도, 정의도, 공정도 없는 현 정부가 통일 정책을 제대로 추진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됐습니다. 이런 식으로 일을 처리하는데 과연 남북 관계가 제대로 될 것인지 우려됐습니다. 

그때 제가 청구를 취하했다고 해서 통일부나 정부가 저의 편의를 봐준 것은 전혀 없었습니다. 프레스센터에 출입을 못하는 상황은 그대로였습니다. 저도 자존심이 있었기 때문에 구걸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어떻게 취재를 했을까요? 막막한 상황에서 동아줄이 내려왔습니다. 다른 언론사에 동료 기자가 제 사정을 듣고 도와주기로 한 것입니다.

동료 기자는 9월 평양 남북 정상회담 기간 내내 정보, 자료 등을 저에게 공유해 줬습니다. 언론사 기자가 다른 언론사 기자에게 취재 관련된 정보를 넘겨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위험을 감수하고 저를 도와준 것입니다. 저에게는 은인과 같은 분이었지요. 그분이 없었다면 저는 큰 곤경에 처했을지도 모릅니다. 아직도 감사하고 있습니다.

2018년 9월은 그렇게 정부 부처들과 티격태격하며 취재를 못할 뻔했고 간신히 다른 기자의 도움을 받아 기사를 쓸 수 있었습니다.

저는 2018년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취재를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해외에서 진행된 정상회담 취재보다 남한 서울에서의 취재가 더 힘들었습니다.

싱가포르와 베트남 정부는 언론사를 차별하지 않았고 작은 신생 언론사 소속인 저의 취재 역시 허용했습니다. 하노이 프레스센터에서 저는 CNN, 교도통신, BBC 등의 기자들과 동등한 대우를 받으며 프레스센터에서 함께 취재를 했습니다. 반면 고국인 남한에서는 차별과 무시를 당하며 곤욕을 치른 것입니다.

그 동안 이런 이야기는 하지 않았습니다. 부당함과 부조리함에 외치고 싶었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국가적 행사와 정부의 남북, 통일 정책에 제가 초를 치는 것 같았습니다.

억울함을 혼자 속으로 참고 또 참고 감내한 것이죠. 지금은 2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이야길 해도 상관없을 것 같습니다.

이런 사정을 모르는 분들은 제가 쉽게 취재를 한 것으로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 취재뒷담화를 통해 신생 언론사와 소속 기자들의 어려움이 얼마나 큰 것인지 기록으로 남기고자 합니다.   

강진규 기자  maddog@nkeconomy.com

* 독자님들의 뉴스레터 신청(<-여기를 눌러 주세요)이 NK경제에 큰 힘이 됩니다. 많은 신청 부탁드립니다.

 

저작권자 © NK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