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데이터로 북한을 봐야 한다. 데이터 없이 북한에 대한 소설을 쓰지 말자”
20여년 북한 과학기술 수집한 최현규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전문위원 인터뷰
“데이터로 북한을 봐야 합니다. 북한에 대해서 소설을 쓰지 말아야 하며 데이터 기반으로 분석하고 연구하고 이야길 해야 한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앞으로 북한과 통일 연구에 필요한 데이터 기반을 만드는 일로 우리가 통일을 준비하는데 기여하고 싶습니다.”
지식경제시대에 데이터는 21세기 원유(原油)를 넘어 보석으로 불리고 있다. AI시대가 되면서 데이터는 더 중요해지고, 다량의 양질 데이터를 얼마나 보유했는지 여부가 조직의 역량은 물론 국력을 좌우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북한 연구, 남북 교류협력에서도 역시 데이터의 중요성은 말할 나위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선구적으로 4반세기 가까이 북한 관련 과학기술 자료, 데이터를 축적하는데 역할을 한 인물이 있다. 최현규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전문위원이 그 주인공이다.
최 전문위원은 대학에서 공학과 기술경영을 수학하였고, 산업연구원과 산업기술정보원을 거쳐 지금의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에서 정보전문가로서 과학기술 지식 유통과 정보분석, 정책연구 등 다양한 연구 과제와 주요 보직을 맡아 수행하기도 했다. 특히 북한 연구자로서 북한 데이터 분야에서 많은 업적들을 남겼다.
이렇게 정부출연연구기관에서 37년간 봉직한 후 최근 시즌1의 정년을 달성하고, 시즌2의 새로운 활동을 준비하고 시작하는 최현규 전문위원을 만나봤다.
최현규 전문위원은 “정년을 맞이할 수 있는 게 정말 감사한다”며 “데이터를 전문으로 하는 기관 KISTI에서 이 시대에 맞는 일을 하는 것이 내게 복이다”고 말했다. 그는 그 중에서도 북한 과학기술 부문에 특별한 애정과 역량을 갖고 있다.
그는 “지난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을 한 이후 당시 과학기술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과학기술 분야에서 어떤 남북 협력을 할 수 있을지 제안을 해보라고 했다”며 “그 전에 중국에 출장을 갔을 때 구한 자료중에 북한에서 만든 다국어 과학기술 용어집이 있었다. 그것을 보면서 과학기술용어를 이 정도 정리할 정도면 북한의 과학기술에 뭔가 있지 않겠냐는 생각을 했다”고 설명했다.
최 전문위원은 이런 정부의 계획과 의견에 따라 거의 불모지였던 북한 과학기술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업무를 KISTI에서 전담하게 됐다. “먼저 북한 자료를 수집하여 데이터베이스화하고 웹사이트를 만드는 작업을 했다”고 소개했다. 이런 노력으로 2002년 8월에 ‘북한과학기술네트워크(NK테크)’ 웹서비스를 시작해 지금까지 운영되고 있다. ‘NK테크’는 북한 과학기술 자료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사이트로 알려져 있다.
그는 데이터전문가로서 KISTI에서 북한 과학기술 자료를 축적, 관리하는데 큰 역할을 한 동시에 북한 연구자이다. 과학기술 분야를 중심으로 동향분석, 교류협력 전략 및 정책 연구를 해온 그는 “데이터로 북한을 보자고 생각했다. 북한에 대해서 우리가 소설을 쓰면 되겠느냐. 데이터로 이야기를 해야 한다”며 데이터 기반 연구를 강조하고 있고, 작년에 “NK-DIA”라는 북한 데이터분석시스템을 개발하기도 했다.
최 전문위원은 2000년대 중반에는 KISTI와 북한 중앙과학기술통보사가 기관 대 기관으로 직접 교류하는 첫 사례를 만들기도 했고, 중국에서 수차례 공동 학술회의를 개최하고 남북 공동의 디지털 콘텐츠를 만들어 모범적 남북 협력 사례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북한 과학기술 자료를 축적하면서 시련의 시기도 있었다. 최 전문위원은 “정부 지원으로 계속 사업을 하다가 예산 지원이 중단되면서 힘들었다”며 “자료를 수집하는 것은 계속 유지가 중요하다. 그것이 중단되면 이후 자료 수집도 어려워진다. 그 점이 제일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그는 “어떻게 든 북한 과학기술 자료 수집이 끊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주위의 도움을 받기도 해서 간신히 이어질 수 있었다”며 “그 후 정부와 연구원 내에서 남북 협력이나 북한 연구를 위해 북한 과학기술 정보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다시 높아졌다. 이후 계속 자료를 모으고 연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 전문위원은 “해외에서도 NK테크를 보고 영어로 서비스를 해줄 수 없는지 문의가 오기도 했다. 북한 과학기술 관련 연구나 남북협력을 하려면 ‘NK테크’를 무조건 봐야 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며 “북한 과학기술 정보를 체계적으로 집대성하여 전문 포털로 어느 정도 이룬 것이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더 발전시켜 북한을 연구하는 전문 인력들이 지식과 자료를 공유하고 소통하는 공간을 만드는 것을 꿈꿔왔다. 그것을 다 이루지 못한 것은 못내 아쉽다”고 덧붙였다.
최 전문위원은 연구자들의 교류, 협력을 위한 노력으로 북한, 통일 관련 과학기술자들의 모임인 '통일과학기술연구협의회' 초대회장을 역임하기도 했고, 지금도 북한ICT연구회와 남북표준품질연구회의 회장으로 과학기술 분야의 북한 연구 커뮤니티를 이끌고 있다.
최 전문위원은 KISTI에서의 정년 퇴직 이후에도 데이터 중심의 북한 연구로 시즌2 활동을 계속해 나갈 계획이다.
그는 “전부터 염두에 둔 것이 남북 협력을 활발히 했던 세대가 은퇴하는 시기가 도래했다는 점이다. 이들의 경험과 지식을 전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그래서 제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후배들을 돕는 일이다. 지금까지 축적한 데이터와 관련된 역량이 후배들에게 이어지고 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 싶다.”고 말했다.
최 전문위원은 북한 데이터에 대한 연구도 계속하면서 AI 활용 분석적 연구성과물도 내놓겠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그는 “북한을 연구하고 통일을 준비하는데 역할을 할 수 있는 인프라인 데이터 기반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며 “예를 들어 북한의 기관과 인물 자료는 정부나 전문기관에서 만들지만 부족하고 부정확한 것들이 많다. 보다 정확한 조사분석이 가능하도록 쉽지 않겠지만 데이터를 기초로 한 디렉토리를 만들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최 전문위원은 향후 남북 교류협력이 다시 이뤄질 경우 하고 싶은 일들도 있다고 한다.
그는 “북한 보유 기술 중에서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이 있을 것이다. 모든 기술에서 우리가 우위에 있는 것만은 아니다. 북한이 자력갱생으로 자체 개발을 한 기술들 중에서 활용도가 높은 것들이 있다”며 “그런 기술들을 충분히 사전 검토하여 북한으로부터 이전을 받아 우리가 활용할 수 있다면 그게 상생 아니겠가”라고 설명했다.
그는 “현재는 남북 교류협력 활동이 거의 불가능하고, 제약이 심한 상황이라 언제 가능할지 모르겠다”며 “하지만 꿈을 갖고 있으면 젊게 살 수 있지 않겠느냐”며 그날이 오길 기다린다고 밝혔다.
최 전문위원은 정년 퇴직을 하면서 몇몇 지인들에게 양초를 선물했다. “양초는 어둠 가운데서 주위를 밝히고, 그 향으로 냄새를 없앤다. 그리고 스스로를 녹여서 빛을 낸다.”라며 “북한을 연구하고 관련된 일을 하는 것이 그와 같다고 생각한다. 헌신하면서 세상에 빛을 밝히고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역할이고 내가 해야 할 역할인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