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발칼럼] 정부 연구 근간을 흔드는 얼치기 의원과 언론

2024-10-17     강진규 기자

총을 제대로 다룰 수 없는 사람에게 총을 쥐어준다면 주변 사람들은 물론 자기 자신을 쏘게 될 것이다. 국회의원이 되면 안 되는 사람이 국회의원이 되고 기자를 하면 안 되는 사람이 기자를 하는 것이 그와 같다.

최근 황당한 기사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국민의힘 박정훈 의원의 정보 제공으로 중앙일보 손국희 기자가 쓴 기사다. 

기사는 북한이 개성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한 후 2달 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대북제재를 회피하는 연구를 했다는 것이다.

필자는 보안 서약으로 구체적인 내용을 밝힐 수는 없지만 오랜 기간 남북 및 북한 과학기술과 ICT 연구 등의 자문과 심사를 한 바 있다. 그런 경험으로 볼 때 박정훈 의원과 중앙일보의 주장에 실소가 나왔다.

근본적으로 박정훈 의원과 중앙일보는 정부의 연구 체계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모든 대통령과 정권은 국정 방향이 있다. 지금까지 모든 대통령과 정권이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대통령과 정권의 국정 방향에 따라 정부 부처들이 정책을 수립한다. 그리고 그 정책에 맞춰 정부 공공 연구가 진행되는 것이다. 연구는 공공, 민간 연구기관들이 수행하고 정부 부처 산하기관들이 하기도 한다.

당연히 그 시절 정부의 국정 방향과 정책에 맞춰서 연구가 진행된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당시 국정 방향에 맞춰 연구를 한 것이고, 현 윤석열 정부에서는 윤 정부의 국정 방향에  따라 연구가 이뤄진다.

문재인 정부 시절 국정 방향은 남북 협력이었고 이에 맞춰 각 부처가 정책을 수립했다. 그 정책에 맞춰 연구를 진행했다.

그런데 박정훈 의원과 중앙일보는 윤석열 정부의 시선으로 왜 문재인 정부 시절 남북 협력 연구를 했냐고 질책하는 것이다.

이는 좌우 이념을 떠나서 정부 연구 근간을 파괴하는 것이다.

박 의원의 논리대로면 현 정부 부처들과 연구기관들이 윤석열 정부의 국정 방향을 무시하고 반발해도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박 의원은 가만히 있을까? 핏대를 올려서 비난할 것이다.

더구나 박 의원과 중앙일보의 행태는 향후 정권이 교체되면 윤석열 정부에서 진행된 모든 연구를 난도질해도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렇게 이념으로 연구를 판단한다면 어느 연구자가 연구를 할 수 있겠는가? 정권이 바뀔 때 마다 연구기관들을 흔들고 연구자들을 인민 재판 할 것인가?

박정훈 의원과 중앙일보가 지적한 세부 내용을 보면 더 황당하다. 이들은 북한이 개성남북연락사무소를 2020년 6월 폭파했는데 두 달 뒤인 2020년 8월 ‘북한의 변화를 주도하는 고유기술 및 강점기술과 관련 인력 양성 등 협력방안 연구’ 보고서를 내놨다고 문제 삼았다. 

그러나 행정안전부 정책연구관리시스템에 따르면 해당 연구는 2019년 11월부터 진행됐다. 개성남북연락사무소 폭파가 이뤄지기 훨씬 전 시작된 것이다. 보고서는 연구 일정에 맞춰 최종 결과로 나왔다.  

오히려 외부 요인으로 인해 연구 최종 결과가 늦어지거나, 나오지 않았다면 그것이 진짜 문제다. 법규정을 위반했기 때문이다.

박정훈 의원과 중앙일보가 의도적으로 공개하지 않은 내용이 있다. 연구를 진행한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당시 상황을 고려해 2021년 11월까지 보고서를 비공개로 했다. 사실상 2021년 11월에 공개된 내용을 마치 2020년 8월 공개한 것처럼 오도한 것이다.

박정훈 의원과 중앙일보는 대북제재를 회피하기 위해 과기정통부가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를 통해 보고서를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이는 교묘한 말장난이다.

필자의 기억으로 당시 정부에서는 남북 협력 사업들을 발굴하려고 했다. 그러나 대다수 전문가들이 대북제재로 인해 남북 협력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에 정부에서는 남북 협력 사업들, 아이디어들 중 어떤 것이 대북제재 위반인지 또 어떤 것이 위반이 아닌지 분석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이는 남북 협력 과정에서 대북제재를 위반하기 않기 위해서였다.

필자가 직접 입수해 읽어본 과기정통부 보고서도 그와 같았다. 대북제재를 위반하지 않고 법을 지키면서 어떻게 남북 협력을 할 수 있는지 고민하고 분석한 자료다.

필자는 이 보고서가 오히려 당시 과기정통부가 대북제재를 위반하지 않으려고 했던 증거라고 생각한다. 대북제재를 신경쓰지 않거나 위반할 것이라면 이런 보고서를 만들 필요도 없었다.

박정훈 의원과 중앙일보는 보고서를 반대로 해석했다. 대북제재를 위반하지 않으려는 노력을 대북제재 회피라고 주장한다. 물론 색안경을 쓰고 보면 그렇게 보일 것이다.

박정훈 의원과 중앙일보는 다른 연구들도 지적했다. 통일부 통일교육원의 ‘북한 통신망 구축 단계별 고도화 계획 구축 비용’과 과기정통부가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에 의뢰해 발간한 ‘북한 통신망 구축 관련 협력 방안’ 보고서이다.

박정훈 의원과 중앙일보는 이런 연구가 엄청난 잘못을 한 것처럼 포장했다. 문재인 정부가 이동통신망 구축으로 북한에 퍼주기를 하려고 했다는 주장이다.

필자는 이 부분에서 박정훈 의원과 중앙일보의 수준을 알 수 있었다.

북한 이동통신 연구, 남북 통신연결 연구는 언급된 기관 뿐 아니라 한국 군, 미국 정부도 하고 있는 내용이다. 단발성 연구도 아니고 주기적으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다만 이를 비공개로 하고 있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알지 못할 뿐이다.

박정훈 의원과 중앙일보의 주장을 적용하면 한국 군과 미국 정부가 북한 퍼주기를 연구하고 있다. 당장 검찰이 국방부와 미국 대사관을 압수수색해야 하지 않을까?

북한 통신 관련 연구는 남북 협력 뿐 아니라 급변사태 및  유사시에 필요하기 때문에 진행된다. 그래서 과기정통부도 군도 미국도 하고 있는 것이다. 남북 간 어떤 일이 생겨도 기본이 바로 통신 연결이기 때문이다.

박정훈 의원과 중앙일보는 북한에 이동통신망을 깔고 LTE를 보급하는 것을 비난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는 북한이 극렬히 반대하고 한국, 미국 등이 원하는 방안이다. 북한은 보안 및 외부 정보유입 우려로 한국 등의 통신 지원, 협력을 꺼리고 있다. 반면 한국, 미국 일각에서는 이것이 북한으로 정보를 유입하는 방안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렇게 북한에 정보유입을 추진하는 것이 대북 퍼주기라면 윤석열 정부의 북한 정보유입이라는 통일 방안부터 폐기돼야 한다. 박정훈 의원과 중앙일보가 나서주길 바란다.

이런 내용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국회의원을 하고 대한민국 중앙일간지 기자를 하고 있다. 국가의 불행이다.

그렇다면 왜 이들은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일까? 무지해서 이런 내용을 몰랐거나 아니면 문재인 정부를 비난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정답은 그들이 알 것이다.

더 황당한 것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 의원들도 제대로 상황 파악을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모르니까 반박도 못하고 눈만 멀뚱멀뚱하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이렇게 무지와 정략적인 언행으로 대한민국의 정부 공공 연구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다. 왜곡된 내용을 갖고 정치적으로 연구기관들과 연구자들을 괴롭힌다면 앞으로 누가 정부 연구를 하겠는가?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고 했다. 박정훈 의원과 중앙일보가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앞으로 정부의 모든 연구를 박정훈 의원과 중앙일보가 수행하는 것도 방법이다. 다만 그럴 역량이 조금이라도 있을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