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립니다] 북한 관련 일을 하는 사람들은 막 잡아다가 처단해도 되는 겁니까
지난 12월 3임 밤 윤석열 대통령이 위헌적인 비상계엄을 선포했습니다. 다행히 비상계엄은 국회 표결로 해제됐지만 여파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점차 윤석열 정부와 군이 준비했던 비상계엄의 내용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북한에 동조하는 종북, 친북 반국가세력을 척결하겠다고 주장했습니다. 그것이 비상계엄의 명분 중 하나였습니다.
저는 계엄군이 북한과 관련된 일을 하는 언론인, 학자, 시민단체 관계자 등에 대한 불법적 조치를 추진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추미애 의원이 공개한 계엄과 관련 군 문건을 봤습니다. 문건 중 과거 계엄 포고령을 예시로 넣고 그것을 참고한다는 내용도 있었습니다.
예시 중에서 "북괴와 동일한 주장 및 용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영장 없이 체포, 구금, 수색해 엄중 처단한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일반인들은 이것이 북한에 동조하는 친북 세력을 척결하려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북한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은 진보, 보수, 좌우를 떠나서 누구에게나 걸 수 있는 내용이라는 것을 알 것입니다.
지난 12월 11일 북한 선전매체들이 남한의 비상계엄 상황을 보도했습니다. 이 내용을 연합뉴스, 뉴시스 같은 통신사부터 조선일보, TV조선, 데일리안 같은 보수언론과 한겨레, 경향신문 등 진보언론 할 것 없이 수많은 매체가 인용 보도했습니다.
그런데 과거 제가 만났던 한 정부 관계자는 그렇게 북한 언론 보도를 전하거나 인용하는 것이 북한의 주장을 그대로 전달하고 동조하는 것이고 선전을 도와주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계엄이 유지되는 상황이었다면 조선일보 기자도 한겨레 기자도 모두 잡혀갈 수 있는 것입니다.
북한을 취재하고 담당하는 기자들 중 북한 언론 인용보도를 단 한 번이라도 안 한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통일부 뿐 아니라 국방부, 외교부, 국정원 출입기자도 북한 언론을 인용 보도하고 있습니다.
기자들이 그게 아니라고 해명을 할 수 있을까요? 영장도 없이 누구도 알지 못하는 곳에 체포, 구금이 되는 상황에서.
북한 연구자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보수, 진보 성향을 떠나서 북한 자료를 인용하지 않고 보고서, 논문을 쓴 경우는 거의 없을 것입니다. 북한을 분석하려면 당연히 북한 자료를 봐야하고 인용해야 하니까요.
더구나 연구자들의 경우 북한 용어를 사용하고 분석하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이것이 계엄군 입장에서는 체포, 처단 대상이 될 수 있겠지요.
대북 사업을 추진하는 기업 관계자들과 시민단체들 역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북한 자료를 보고 분석하고 인용하지 않고 어떻게 협력 방안을 만들 수 있을까요.
비상계엄이 유지됐다면 이런 행위들을 계엄군들이 자의적으로 해석했을 겁니다.
평화와 남북 교류 협력을 외치는 행위 그리고 윤석열 정부의 대북 정책을 비판하는 것도 북한에 동조하는 것이라며 처단하려 했겠지요.
저는 윤석열 정부에서 비상계엄의 명분을 내세우기 위해 북한 관련 언론인, 연구자, 시민단체 관계자 등을 체포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극우유튜버들이 남한에서 간첩 5만명 암약하고 있다고 했으니 그 숫자를 맞추려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면서 "봐라 남한에서 암약하던 수천 명의 간첩들을 소탕했다" 고 말했을 겁니다. 보수언론, 보수학자도 예외는 아니었겠지요. 오히려 조선일보 기자가 간첩이라고 하면 더 선전효과가 있을테니까요.
앞으로 북한 관련해서 누구를 체포하려고 했고 어떻게 조치하려 했는지 조사가 이뤄져야 할 것입니다.
저는 이런 상황들을 보면서 참담하고 슬펐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정부, 군 관계자들이 연락하고 찾아와서 자문도 구하면서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국방부 등에서 강연을 한 적도 있고 자문 회의에 참석하기도 했습니다.
필요할 때는 앞에서는 웃으면서 도와달라고 하고 뒤에서는 처단할 계획을 마련하고 있었다는 것이 황망합니다. 저 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이 비슷한 생각을 할 것입니다.
그들이 생각한 처단이 무엇인지도 소름이 끼칩니다. 아마도 책임을 면하기 위해 단순한 벌금이나 재판 등을 이야기했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국내외 과거 사례가 떠올랐습니다. 6.25 전쟁 전후로 좌익이라며 야산으로 끌고가서 총살 후 암매장하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과거 칠레에서는 언론인, 학자들이 좌익이라며 헬기로 바다 위에서 던져버렸다고 합니다. 일부 남미 국가들에서는 시신도 찾지 못하도록 고문 후 시신을 화장했다고 합니다. 진짜 무슨 짓을 하려고 했는지는 그들만이 알 것입니다.
보수, 진보를 떠나서 우리 사회가 북한 관련 일을 하는 사람들을 영장도 없이 체포, 구금하고 처단하는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 참담합니다. 물론 윤석열 대통령과 일부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들의 생각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비상계엄은 잘못됐지만 종북 척결을 하려고 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저는 묻고 싶습니다. 북한 관련 일을 하는 사람들은 그냥 막 잡아다가 개, 돼지처럼 죽여도 되는 것인가요?
앞으로 누가 북한 관련 기사를 쓰고 북한 관련 연구를 하려고 할까요? 앞으로 누가 정부의 요청에 북한 관련 자문을 하려고 할까요? 엉뚱한 소리하는 유튜버들을 데려다가 자문을 받고 대북 정책을 수립할 것인가요?
저부터 그 동안 바보 같은 짓을 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NK경제로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니고 무슨 명예가 있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부족한 부분을 개인 돈으로 충당해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취재의 어려움은 물론 손가락질을 당하면서도 묵묵히 일한 결과가 이렇게 돌아온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