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최상목 권한대행, 북한 금융 개혁 조언 논문 작성...윤 정부 눈에는 종북 반국가세력?
윤석열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장관 등이 종북 반국가세력을 처단하겠다며 비상계엄을 일으킨 가운데 최상목 권한대행이 북한에 우호적인 논문을 발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8년 북한연구학회에 ‘북한의 현금 달러라이제이션 현황과 정상화 방안’이라는 논문을 투고했다.
최 권한대행은 당시 울산대학교 사회과학부 초빙교수로 근무하면서 북한연구학회에 가입하고 북한 경제, 금융 관련 연구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 권한대행은 논문에서 “최근 남북과 북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남북 교류의 활성화와 북한 경제의 본격적인 개혁과 개방에 대한 기대가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아지고 있다”며 “해외의 탈달러라이 제이션 사례와 한국의 금융과 외환제도 개혁 경험 등을 바탕으로 북한의 현금 달러라이제이션을 정상화할 수 있는 바람직한 정책 대응 방향과 구체적인 정책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실제로 논문은 북한의 금융 현황과 해외 사례 등을 분석해 북한이 금융 개혁을 추진할 수 있도록 조언하는 형식으로 구성돼 있다.
논문이 투고된 2018년은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총비서가 만난 남북정상회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총비서가 만난 북미 정상회담이 열렸던 때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소 최 권한대행은 남북 교류 확대 등을 염두에 두고 논문을 쓴 것으로 추정된다.
논문의 주제가 된 달러라이제이션(dollarization)은 미국 달러를 다른 나라가 자국의 통화로 사용하는 것을 뜻한다. 북한 내에서는 달러 등 외화 사용 비중이 매우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 권한대학은 북한 달러라이제이션의 가장 큰 특징이 현금 달러라이제이션이라고 설명했다. 북한의 달러라이제이션은 사회주의 진영의 붕괴와 자연재해로 인한 1990년대 경제 위기 이후 무역과 외화에 대한 국가 통제가 약화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고 한다. 특히 2000년대 들어 중국과의 소비재 무역 확대로 위안화의 영향력이 대폭 커졌고 2003년 종합시장이 합법화됨에 따라 북한의 시장화와 달러라이제이션이 동시에 가속화됐다는 것이다. 북한 원화가 결정적으로 신뢰를 잃게 된 계기는 2009년에 실시된 화폐개혁이었다고 한다.
최 권한대행은 북한의 현금 달러라이제이션이 사금융 시장 활성화와 밀접한 관련성을 가지며 서로 증폭시키는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공식 금융 시스템의 불신에서 비롯된 북한의 사금융시장이 주로 외화를 매개로 움직이고 핵심주체인 ‘돈주’는 외화로 자산을 축적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 권한대학은 달러라이제이션이 다른 국가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북한 경제에도 부정적 영향과 긍정적 영향을 동시에 미치는 것으로 관찰된다고 지적했다. 부정적 영향으로는 화폐 발행 이익의 축소, 환율의 불안정 심화, 소득격차 확대 등이라는 것이다.
반면에 위축된 북한 원화의 기능을 외화가 보완해 경제활동을 부분적으로 정상화하는데 기여하는 측면도 있다고 긍정적 영향도 설명했다.
최 권한대행은 북한의 달러라이제이션 비율이 80~90%로 추정되므로 캄보디아, 니카라과, 콩고, 라이베리아 등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국가들과 비슷하다고 분석했다.
그는 북한의 현금 달러라이제이션에 대한 대응 방안으로 현 상황을 그대로 유지하는 방안, 달러라이제이션을 공식화하는 방안, 탈달러라이제이션을 추진하는 방안 등 세 가지를 꼽았다.
북한의 현금 달러라이제이션을 그대로 방치할 경우 북한의 비공식 경제를 더욱 확대시켜 법 제도 전반에 대한 신뢰와 북한 당국의 관리 능력만 약화시킬 것이라고 예상했다.
또 북한의 달러라이제이션 공식화는 비경제적인 측면를 제외하고 경제적으로만 보아도 북한 경제의 중장기 발전에 바람직하지 않은 측면이 크다고 주장했다. 북한의 달러라이제이션의 공식화는 정치적으로 선택 가능하지도 경제적으로 바람직하지도 않은 대안이라는 것이다.
해법으로 최 권한대행은 단계적인 접근 방안을 제시했다. 1단계는 비정상적인 현금 선호를 줄여 현금 달러라이제이션을 축소하고 예금 달러라이제이션으로 전환하는데 역점을 두고, 2단계는 예금 달러라이제이션을 축소해 나가는 방안이다.
1단계를 위해서는 북한의 금융기관과 외환관리 시스템에 대한 신뢰 회복이 필요하다고 최 권한대행을 설명했다. 금융 시스템이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고객이 맡긴 돈과 계좌 정보를 철저히 보호해 주고 이를 바탕으로 고객의 수요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또 2단계를 위해서는 해외의 탈달러라이제이션 성공 사례와 같이 거시안정 정책과 환율 제도 개편을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최 권한대행은 현금 달러라이제이션이 어려운 과제이지만 북한의 화폐와 금융 시스템의 정상화를 위해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주장했다. 금융 시스템 개혁으로 출발해 거시경제 안정과 북한 원화의 매력도를 높이는 정책을 추진하는 단계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 최고 권력층의 확고한 의지와 비전 그리고 정교한 정책 패키지가 제시되고 일관성 있게 추진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결론에서 최 권한대행은 현금 달러라이제이션의 정상화 과정이 북한 경제의 개혁과 개방이라는 긴 여정에서 유용한 나침반의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처럼 논문은 북한의 금융 시스템을 무조건 비난하거나 폄하하지 않고 현실적인 개선 방안을 제시하는 것이 특징이다.
전문가들은 최상목 권한대행의 논문과 그의 생각을 현 상황에서 아이러니하게 보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후 북한을 적대했으며 북한과 교류, 협력 등을 주장하는 전문가, 단체 등을 배척해왔다. 보수매체들과 윤석열 정부 지지자들은 남북 협력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종북, 친북이라고 비난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지속적으로 북한의 위협을 거론하고 종북 세력, 반국가 세력을 성토했다. 그 절정에 이른 것이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였다.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말했다.
계엄사령부 체포 계획에는 친북, 종북 반국가세력을 체포 구금하겠다는 내용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친북, 종북의 기준이 없다는 것이다. 극우세력의 관점에서는 북한을 비판하지 않는 모든 사람이 친북이다. 북한에 조언을 하는 것은 북한을 이롭게 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한 정부 관계자는 “계엄군의 포고령과 계획 등이 매우 모호하고 포괄적이어서 비상계엄이 유지됐다면 북한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 북한 관련 언급한 사람들 누구나 체포 대상이 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만약 비상계엄이 유지됐다면 최상목 권한대행도 논문 내용으로 인해 종복 반국가세력으로 몰려 체포, 구금돼 조사를 받는 상황에 직면했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