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극장] 붉은돼지 "파시스트가 되느니 돼지가 되는 것이 나아"

2025-01-26     강진규 기자
출처: 네이버 영화

* 이 리뷰는 영화 붉은돼지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만화영화(애니메이션) 붉은돼지는 이탈리아 아드리아해를 배경으로 공중해적을 잡는 현상금 사냥꾼 포르코 로소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주인공 포르코 로소는 제목에도 언급된 것처럼 사람이 아니라 돼지의 얼굴을 하고 있다. 주인공을 제외한 모든 인물은 사람이다. 주인공도 과거에는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붉은돼지는 포르코 로소가 공중해적들과 싸우고, 비행기가 격추되고, 새로운 비행기를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그가 왜 돼지가 됐는지 보여준다.

아름다운 작화와 서정적인 음악으로 붉은돼지는 동화처럼 느껴진다. 마법에 걸려 야수가 된 왕자의 이야기를 다룬 미녀와 야수를 보는 느낌도 들게 한다.

하지만 붉은돼지는 매우 심각하고 슬픈 이야기를 담고 있다.

주인공과 친구들은 비행을 사랑하는 청년들이었다. 그러나 전쟁이 발발하고 청년들은 전투기 조종사로 착출된다.

친구들은 하나둘씩 전사하고 주인공은 죽음의 공포에 고통스러워 한다. 수천명, 수만명의 전투기 조종사들이 하늘 나라로 떠나가고 홀로 남겨진 주인공은 자신도 데려가라고 울며 소리친다.

이런 비극적인 상황에서 군국주의 파시스트들은 또 다른 전쟁을 준비한다. 전쟁을 위한 돈 갈취를 애국채권이라고 포장하고 사람들을 전쟁터로 몰아간다. 전쟁에 반대하는 사람들, 자신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 사람들은 체포하려고 한다.

주인공은 다시 전투기 조종사가 돼 전쟁에 참전하라는 자신의 친구에게 말한다.

"파시스트가 되느니 돼지가 되는 것이 낫다." 

어쩌면 주인공은 파시즘에 물들어 전쟁에 미친 세상이 싫어서 스스로 돼지가 된 것인지도 모른다.         

붉은돼지는 이탈리아 파시스트 무솔리니 정권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를 통해 우회적으로 1930~1940년대 군국주의, 파시즘, 극우에 빠졌던 일본의 모습을 비판하는 것으로 보인다. 

붉은돼지에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살아오면서 느낀 내적 갈등도 담겨있다고 느껴진다. 감독의 아버지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비행기 부품을 만드는 공장을 운영했고 이로 인해 감독은 비행와 비행기를 매우 애정한다. 그의 작품에는 매번 멋진 비행 장면이 등장한다. 그런데 한편으로 자신의 아버지가 전쟁에 부역했다는 점에 반감과 죄책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비행을 좋아하지만 전쟁을 싫어하는 주인공의 모습과 유사하다. 어쩌면 주인공이 감독 자신일지도 모른다.   

붉은돼지에는 주인공과 대립하는 공중해적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나쁜 짓을 하지만 인간성을 포기하지는 않는다.

반면 파시즘 정치인들과 파시스트들은 사람들이 죽거나 말거나 자신들의 권력과 영광을 위해 인간을 도구로 생각한다. 어쩌면 이 영화의 감독은 파시스트들이 돼지 즉 짐승만도 못하다는 이야길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붉은돼지에도 단점은 존재한다. 이야기가 산만하다. 영화 중반 갑작스럽게 등장한 비행기를 설계하는 소녀, 그녀를 납치(?)하는 공중해적들, 그녀를 놓고 벌이는 결투 등이 의아하게 느껴진다. 여기에 더해 갑작스러운 결말을 보면 진짜 영화가 끝난 것인가 생각이 든다.

이런 문제로 붉은돼지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작품 중에서 상당히 호불호가 갈리는 작품이다.    

그럼에도 멋진 장면들과 음악 그리고 선명한 메시지는 이 영화를 빛나게 한다.

최근 한국에서 극우 파시즘이 고개를 들고 있다. 극우 청년들이 법원을 때려 부수고 괴벨스 같은 파시스트 지식인들이 선동에 나섰다.

그들에게 붉은돼지는 말할 것이다. "파시스트가 되느니 돼지가 되는 것이 낫다."   

아리랑극장 평점: 4/5 ★★★★☆

제작국: 일본

개봉일: 2003년 12월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 

*  이 리뷰는 NK경제가 직접 비용을 지불해서 진행한 것입니다. NK경제는 광고나 협찬 시 분명히 그 사실을 명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