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발칼럼] 사람 목숨에 관심 없는 한국 언론들의 북한 보도
민주주의 사회에서 언론의 자유는 매우 중요한 가치이며 언론사와 기자는 자유롭게 취재하고 보도를 해야 한다.
하지만 언론의 자유를 주장하기 어려운 영역이 있다. 사람의 목숨과 관련된 보도이다. 언론사와 기자에게 언론의 자유가 있다고 해도 사람 목숨을 위험하게 하는 보도를 해서는 안 된다. 아무리 특종이라고 해도 사람 목숨 보다 중요할 수는 없다.
그런데 한국 언론들의 북한 관련 보도를 보면 그런 인식 자체가 붕괴됐다고 생각된다.
2023년 러시아에서 북한 모자 탈북 사건이 있었다. 필자는 관련 내용을 상세하게 확인했지만 전혀 보도하지 않았다.
북한 주민들의 실종, 탈북과 관련해서는 그들의 신변이 완전히 안전해질 때까지 보도하지 말아야 한다. 기사가 나갈 경우 기사를 통해 동선이나 행적이 노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한국 언론에 보도가 된 탈북과 보도 되지 않은 탈북은 북한 입장에서 경중이 달라진다. 보도 되지 않은 북한이탈주민의 경우 실종, 사망 등으로 처리되는 경우도 있다. 반면 한국 언론에서 탈북을 했다고 명확히 보도를 하면 북한 당국이 필사적으로 추적을 하게 된다.
탈북에 성공해서 북한 주민이 한국에 입국해도 보도에 신중해야 한다. 한국 언론에 귀순한 북한 주민이 언급될 경우 북한에 있는 그들의 가족, 친인척, 지인 등이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2023년 한국 언론들이 '단독'이라며 아직 러시아에 있는 북한 모자 탈북 소식을 전했디. 그들의 신상은 물론 경로까지 보도했다.
한국 언론들이 너도나도 자극적인 기사를 쏟아내고 북한을 비난하기 바빴다.
필자는 기사를 보면서 큰일이 났다고 이건 아니라고 생각을 했다. 지금도 필자는 한국 언론들이 북한 모자의 안전보다는 북한을 비난하기 위해 기사를 썼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대북 소식통으로부터 북한 모자가 러시아의 한 공항에서 러시아 당국 관계자들에 의해 체포됐다는 첩보를 들었다.
한국 언론의 보도 후 국제적 이슈가 되면서 북한 당국과 러시어 당국이 필사적인 추적에 나섰다는 것이다. 더 충격적인 것은 러시아 당국이 한국 언론 보도를 보고 독자적으로 움직여서 북한 모자를 체포해 북한에 인계했다는 이야기였다.
러시아 당국의 조치에 북한 관계자들 조차 당황했다고 한다. 과거 러시아는 한국과 친밀한 관계 때문에 탈북자가 발생했을 때 한국 정부를 도와주거나 최소한 방관하고 중립을 지켰다고 한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 집권 후 러시아와 관계가 파탄이 났고 한국 정부에 보란듯이 북한 모자를 북한에 넘겨버린 것이다.
이같은 소식은 해외에 체류하는 북한 관계자들 사이에 급속히 퍼졌고 그들은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러시아를 통한 탈북 경로가 완전히 사라졌으며 한국 정부가 탈북자를 구출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했다는 이유다.
이 내용은 북한 모자가 체포된 직후 들었다. 정부에 확인을 요청했지만 함구했다. 나중에서야 필자의 이야기가 맞다고 확인해 줬다.
필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북한 모자 탈북 소식도 경로도 그들의 체포 소식도 보도하지 않았다. 그들을 위험에 빠트릴 수도 없었고 사람 목숨이 걸린 일을 단독이라며 흥미 위주 기사로 쓸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필자는 여전히 100개, 1000개의 특종을 포기하더라고 한 사람의 목숨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
수개월이 지난 후 한국 언론들이 북한 모자 체포 소식을 전했다. 역시 단독, 특종을 주장했다.
북한 모자가 탈북을 하도록 부조리한 상황을 만들고 그들을 체포, 억압한 것은 북한이다. 그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근본적 책임이 북한에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 언론의 잘못은 없을까? 진짜 그들이 북한 모자의 목숨과 안전을 생각했는지 의문이다. 체포 소식까지 자극적으로 보도한 것을 보면 그들의 안전보다 북송으로 자극적인 기사가 나올 것을 기대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한국 정부도 마찬가지였다. 윤석열 정부가 북한을 규탄하고 북한 모자 탈북이 보장돼야 한다고 떠들었다.
하지만 필자가 들은 정보로는 사실상 제대로 역할을 못했다. 이미 러시아 당국과 관계는 단절 수준이었으며 러시아에서 북한 모자를 지원할 수 있는 전문 인력도 없었다. 러시아 정부에 경고(?)를 했다고 하는데 결과적으로 역효과가 난 것 같다.
너무나도 화가 나고 슬픈 이런 이야길 꺼낸 것은 한국 언론들이 똑같은 행동을 다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 언론들이 단독, 특종이라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포로가 된 북한 군인들의 소식을 전하고 있다. 그들의 신상, 얼굴까지 공개하면서 한국으로 귀순을 원한다는 것이다.
이런 보도를 하면 북한에 있는 그들의 가족, 친인척들이 어떻게 될까? 또 만약 북한 군인 포로들이 북한으로 송환될 경우 그들은 어떻게 될까?
어쩌면 포로들이 실종 또는 전사했다고 알고 있던 북한 당국이 한국 언론 보도를 보고 그들의 생사와 행보를 확인할 수도 있다.
때문에 북한 군인 귀순과 송환이 논의되고 진행되더라도 절대로 보안이 지켜져야 하는 사안이다.
지금 상황은 북한 모자 탈북 때와 똑같다. 언론들은 단독이라며 자극적인 보도를 하고 한국 정부는 북한 군인 포로들의 귀순 요청 내용을 심리전과 선전으로 흐뭇하게 이용하고 있다. 북한 청년들의 안전을 걱정하는 사람들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들을 이용하려는 사람들만 있다.
진짜 북한 청년들을 생각한다면 당장 관련 보도를 멈추고 관련 내용에 대해 철저한 보안을 유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