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발칼럼] 전쟁 하자던 사람들에게 평화를 맡길 수 있나?
대한민국 역사의 과오 중 하나는 친일파 인사들을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것이다. 친일파를 청산하기는 커녕 그들이 건국과 국가 재건 과정에 참여함으로써 수많은 부작용이 발생했다.
친일파들이 득세하며 자신의 이득을 챙기면서 "나라 팔아먹으면 3대가 잘 살고 독립운동 하면 3대가 망한다"는 말까지 나왔다. 뿐만 아니라 친일파로 인해 식민사관을 뿌리 뽑지 못하고 아직도 우리 민족을 부정하고 일본 제국주의를 찬양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능력이 중요하기 때문에 능력만 봐야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필자는 능력에 앞서 마음, 정신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올바른 마음과 정신에서 올바른 생각이 나오고 올바른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마음과 정신이 타락한 사람은 자신의 출세와 이익만을 생각하게 된다. 타락한 정신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주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때문에 오히려 능력은 있지만 나쁜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배척해야 한다.
필자가 갑자기 친일파 청산 이야길 꺼낸 것은 통일, 남북, 평화와 관련해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지는 것이 아닌지 우려하기 때문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2022년 집권 후 남북 대결 정책을 추구했다. 물론 이명박, 박근혜 보수 정부도 북한과 대립했다. 정부의 정책 기조를 대화 추구로 할 수도 있고 북한에 대한 경계 강화로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필자는 윤석열 정부의 대북 정책이 이전 보수 정부가 추구했던 것과 완전히 다르다고 생각한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남북이 군사 충돌을 하고 긴장이 고조됐지만 그럼에도 대화를 추구했다. 예를 들어 DMZ 목함 지뢰 사건 때 남과 북의 군사 당국자들은 언성을 높이면서도 판문점에서 만나서 회담을 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는 남북 국지전을 유도하지 않았고 북한과 전쟁을 추구하지 않았다.
반면 12.3 비상계엄 내란 사태 후 쏟아진 폭로와 최근 내란 특검 조사 과정을 보면 윤석열 정부는 남북 충돌을 넘어 전쟁까지도 기도한 것이 아닌지 의심된다. 더구나 그 목적은 비상계엄을 정당화하고 정적들을 제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한마디로 선을 넘은 것이다.
이런 윤석열 정부의 행태에 앞장서고 동조한 공무원들, 연구자들이 있다. 공무원들의 경우 지시받은 일을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공무원의 충성의 대상은 정권이 아니라 국민이며 헌법에 위배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또 공무원은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에 따라서 일을 해야 한다. 자신의 역할도 아닌 일을 한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군, 경찰, 국정원 등에서 안보 업무를 하는 공무원이 북한을 경계하고 강경 발언을 하는 것은 그들의 역할을 한 것이다.
필자가 문제를 삼는 것은 남북 화해 협력과 평화를 추구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남북 대결과 전쟁을 부채질했다는 점이다.
북한 관련 사안에서 각자의 역할이 있다. 북한에 대한 비판은 국방부가 하면 되고 통일부는 그래도 대화를 하자고 제안해야 한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 시절 통일부는 연일 북한을 규탄하고 비난하며 대결 수위를 높이고자 했다. 대북 전단 살포에 반발해 북한이 오물풍선을 보내면서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보수 전문가들 조차 대북 전단 살포를 긴장이 완화될 때까지 중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통일부는 대북 전단 살포가 무엇이 잘못됐냐고 했다. 마치 긴장을 더 고조시켜서 충돌이라도 발생하라고 하는 분위기였다.
통일부는 남북 화해, 평화 등과 관련된 사업들을 축소하고 북한을 비난하는 사업에 초점을 맞췄다. 뿐만 아니라 대학과 연구자들의 성향에 따라 남북 화해, 평화를 주장하는 쪽은 좌파라며 배척했다. 언론에도 북한을 비난하는데 활용될 수 있는 소스를 제공해 반북 보도가 나올 수 있도록 한 것으로 알고 있다.
통일부가 제2의 국정원이 되겠다는 이야기도 나왔고 경찰 업무인 법적 조치를 통일부 관계자들이 떠들었다.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추진한 남북 국지전 음모와 통일부의 이같은 정책이 과연 별개 사안이었을까?
통일부 뿐만 아니다. 일반 정부 부처들, 지자체들에서는 지난 수십년 간 통일 대비를 위해 북한, 남북 협력 관련 연구와 사업들이 진행돼 왔다. 윤석열 정부 기간 각 부처들에서는 북한, 남북 협력 관련 사업을 없애거나 축소하고 심한 경우 과거 사례까지 끄집어내 감사했다. 해당 분야 전문가들을 배척하고 모욕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새 정부가 들어선 후 통일부와 각 부처들 그리고 공무원들은 아무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남북 협력, 통일을 논의하겠다고 한다. 남북 대결에 앞장서며 충돌을 부추겼던 통일부는 아무런 반성도 없이 자신들이 남북 화해 협력과 통일의 주도 기관이라고 하고 있다.
각 부처에서도 반성 없이 갑자기 전문가들을 찾고 다시 남북 협력 과제를 찾으며 연구를 하겠다고 한다.
필자는 이것이 친일파들에게 민족 정기를 바로 세우는 업무를 준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과거 반북, 북진 통일의 완장이 평화, 남북 화해의 완장으로 바뀌는 것 뿐이다.
어떻게 반북하던 사람들이 북한과 화해 협력을 할 수 있을까? 남북 대결과 충돌을 부추기던 사람들이 어떻게 평화 정책을 만들고 추진할 수 있을까?
만약 미래에 윤석열 정부 같은 보수 정권이 또 다시 집권한다면 그들이 계속 남북 화해 협력과 평화를 주장하고 추구할까?
이재명 정부가 제대로 남북 관계 복원과 평화를 추구하고 싶다면 영혼 없는 정부 부처와 공무원들 그리고 거기에 부화뇌동한 전문가들부터 배척, 단죄해야 한다. 최소한 국민들에게 사과하고 반성해야 한다.
이재명 정부 관계자들과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고 있다. 소위 북한 전문가들 중 일부도 그렇다.
남한이 어떤 이익만 제시한다면 북한이 돌아서고 남북 관계가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에 앞서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신뢰다. 아무리 이익이 있어도 신뢰가 없는 사람, 기업과는 거래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뒤통수를 맞고 사기당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신뢰가 기본이 되지 않으면 북한은 큰 이익이 있어도 쉽게 대화에 응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신뢰를 어떻게 쌓을 수 있을까? 신뢰는 한결같은 마음과 행동에서 나온다. 눈치보며 오락가락하는 사람들은 신뢰를 받을 수 없다.
윗사람들 눈치보고 소신없이 전쟁을 외치다가 갑자기 평화를 외치는 사람들과 고난과 핍박에도 굴하지 않고 남북 평화를 외친 사람들 중 북한이 누구를 신뢰할 수 있을까?
이재명 대통령과 정부 관계자들에게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