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온달은 바보가 아니었다"

2025-08-16     강진규 기자

‘바보온달과 평강공주’ 이야기를 북한에서는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까?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 오늘의조국사가 발행하는 잡지 금수강산 2025년 8호에 온달 장군에 대한 내용이 수록됐다.

금수강산은 온달은 고구려시기인 6세기말 7세기초 역사에 이름을 남긴 평민출신 장군이었다고 설명했다.

온달은 비록 가난한 출신이었지만 눈먼 어머니를 위해 효성을 다했으며 외적을 물리치는 싸움에서 전사한 아버지의 뒤를 이어 무술을 부지런히 익혀 마침내 고구려 장군이 됐다는 것이다.

금수강산은 그는 나라가 위험에 처했을 때 싸움의 앞장서 고구려군의 승리를 이룩하는데 기여했다며 온달이 고구려의 애국명장으로 용맹을 떨칠 수 있었던 것은 그를 뒷받침해준 공주의 지성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소개했다.

금수강산은 고구려 30대왕 평원왕에게 딸이 있었는데 용모가 무척 아름답고 지혜가 남달랐으며 덕이 있는 성품이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공주는 어려서 자주 울었고 평원왕은 그런 공주에게 자꾸 울면 다음에 바보온달에게 시집을 보내겠다고 옷었다고 한다.

금수강산은 왕이 바보온달이 누구인지 잘 알지 못했다며 그저 소문만 듣고 공주가 울면 그렇게 말했다고 지적했다.

당시 온달은 평양성 밖의 어느 마을에서 눈먼 늙은 어머니를 모시고 어렵게 살고 있었는데 매일 산에서 느릅나무 껍질을 벗기거나 칡뿌리를 케고 성안에 들어가 집집마다 다니며 동냥을 했다다는 것이다. 얼굴은 여위고 옷차림이 남루해 우습게 보였으나 그의 마음은 그지없이 순박했다고 한다. 평양의 부자들은 그를 바보온달이라고 불렀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눈먼 어머니에 대한 정성이 지극한 그를 칭찬하며 도와줬다는 것이다.

금수강산은 온달이 바보가 아니었다며 그에게는 뛰어난 용맹과 지혜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후 평원왕이 공주를 위해 사위감을 물색했는데 공주는 온달에게 시집을 가겠다고 했고 왕이 노하여 공주는 궁중을 나왔다는 것이다.

이후 온달의 아내가 된 공주는 온달이 범상한 인물이 아님을 알게 됐다고 한다. 온달에게 검과 창, 활 등을 갖춰주고 말타기, 활쏘기 등 무술을 연마하도록 권했다는 것이다.

금수강산은 고구려에서 해마다 3월 3일 낙랑언덕에서 사냥경이를 크게 열었는데 온달은 큰 호랑이를 잡았고 이를 통해 고구려 장수가 됐다고 설명했다. 외적이 고구려땅을 침범하자 온달은 적과 싸워 큰 공을 세웠고 평원왕은 그 용맹에 감탄해 온달과 공주를 맞이했다는 것이다. 온달에게는 태형이라는 벼슬을 주어졌다고 한다.

북한에서도 한국에서처럼 바보온달과 평강공주의 이야기를 그대로 전하고 있다. 다만 북한에서는 온달이 전혀 바보가 아니었으며 부자들의 그의 어려운 처지를 조롱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또 북한은 온달이 고구려 장군으로 외적과 싸웠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