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IT개발자들 어떻게 글로벌 스타트업 만들었나?

북한 IT기업 야리테마, SW 1800개 판매했다

2020-04-20     강진규 기자

 

북한의 소프트웨어(SW) 개발, 판매 사업이 진화하고 있다. 과거 북한 IT기업임을 선전했던 것과 달리 북한 IT개발자들은 글로벌 IT기업을 만들고 영어로 의사소통하며 SW를 판매하고 있다. 이런 변화가 상당한 성과로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NK경제는 수년 동안 인도에서 활동하는 북한 IT개발자들을 조사, 분석했다.

과거 북한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시로 인도에 IT인재들을 파견해 유학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수십명의 북한 개발자들이 인도에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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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인도에서 최신 IT기술을 배우고 습득하는 것 뿐만 아니아 다양한 IT 비지니스를 시도했다. 프리랜서 개발자 사이트, SW개발 경매 서비스에도 참여했다.

북한 개발자들은 다른 프리랜서 개발자, 개발팀 등과 경쟁에서 밀리며 고전하기도 했다. 인도 등의 개발자들이 저가 수주로 경쟁에 나섰기 때문이다.

또 일부 개발자들은 주문이 오기를 기다리는 방식을 취하기도 했다. 다양한 인터넷 사이트와 서비스 등을 활용하며 비지니스 기회를 만들기 위해 시도했다.

그러던 중 일부 북한 IT개발자들은 팀을 구성해 코드캐니언(CodeCanyon)에서 사업을 진행했다. 코드캐니언(CodeCanyon)은 SW 소스코드와 기술 등을 판매하는 글로벌 장터다.

처음 북한 개발자들은 하나테마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하나테마는 워드프레스 테마와 소스를 개발, 판매했다. '하나'라는 이름은 북한식이고 '테마'는 워드프레스 테마를 판매한다는 의미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 개발자들은 사업이 잘 안 되자 기업명인 하나테마를 야리테마(Yaritheme)로 바꿨다. 야리(Yari)는 힌디어로 우정, 동맹을 뜻한다. 정확히 어떤 뜻으로 북한이 하나테마를 야리테마로 바꿨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이국적인 이름으로 변경한 것은 분명하다.

북한 개발자들이 하나테마를 야리테마로 바꾼 것은 몇 가지 증거로 확인할 수 있었다. 야리테마는 코드캐니언에서 과거 하나테마라는 이름을 사용했다고 명시했다. 또 야리테마의 트위터 계정은 하나테마가 사용하던 계정이다.

야리테마의 트위터 계정

특히 하나테마가 사용하던 웹사이트인 hanatemplate.com은 야리테마의 트위터에서 회사 사이트 주소로 돼 있었다. 

바로 이 hanatemplate.com은 인도 뉴델리에 북한 개발자가 등록한 사이트다. NK경제는 북한 개발자를 조사하면서 하나테마를 확인했고, 다시 하나테마가 야리테마로 바뀐 것을 알게 됐다. 

재차 확인을 위해 hanatemplate.com를 등록한 인물이 북한 사람인지도 확인했다. 상당한 시일이 소요됐지만 복수의 대북 소식통을 통해 북한의 개발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북한 개발자들은 하나테마를 야리테마로 바꾼 후 회사 소개는 물론 제품 소개, 상담 등도 모두 영어로 진행했다. 초기에는 야리테마가 인도 IT기업이라고 했지만 나중에는 인도라는 것도 삭제하고 글로벌 IT기업을 표방했다.

과거 북한 개발자와 기업들은 북한 IT기업이라고 설명했다. 대표적인 것인 말레이시아 등에서 활동한 조선엑스포다. 35장의 사진으로 보는 북한 IT기업 조선엑스포 그러나 조선엑스포는 북한 IT기업이라는 점 때문에 많은 규제와 조사를 받았고 결국 활동을 중지한 바 있다. 

그런데 이들은 북한 회사라는 것을 나타내지 않고 완전히 글로벌 IT 스타트업을 표방한 것이다. 야리테마라는 이름과 설명, 그들의 활동을 보면 북한 IT기업이라는 것을 알 수 없다. 북한 개발자->하나테마->야리테마를 확인하지 못했다면 NK경제 역시 야리테마가 북한 IT기업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야리테마의 전략은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기존에 수주를 받아서 하고 입찰에 참가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솔루션 사업을 진행했다. 시스템통합(SI) 방식으로 시스템을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시장에서 팔릴 가능성이 있는 패키지 SW와 기술을 만들어서 판매를 진행했다.

이 방식은 양복을 고객 개인에 맞춤형으로 만들어주느냐 또는 기성복 형식으로 양복을 만들어 놓고 판매하느냐의 차이다. 후자가 적은 노력으로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SW 개발 이전에 고객들의 수요를 잘 파악해야 한다. 사려는 사람이 별로 없는 제품을 만들면 헛 고생을 하게 될 수 있다. 

야리테마는 코드캐니언에서만 솔루션을 1839개 판매했다. 야리테마의 가장 성공적인 제품은 e-커머스(전자상거래) 사이트를 위한 워드프레스 테마였다. 

미국, 유럽 등에서 만든 것처럼 세련된 이 테마는 VintageStyle을 표방하며 492개나 팔렸다. 야리테마는 자신들이 만든 테마를 사용하는 고객 사이트들을 소개하기도 했다. 북한이 만든 워드프레스 테마로 전 세계 수백 개의 전자상거래 사이트가 운영되고 있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야리테마는 또 8개의 솔루션도 개발해 판매했다. 그중에는 웹사이트에서 시각 효과를 제공하는 이미지 슬라이더 플러그인도 있었고, 안드로이드 및 iOS용 게임도 있었다. 게임의 경우 게임 앱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소스코드 자체를 판매했다. 

야리테마가 판매한 솔루션들의 공통된 특징은 세련된 디자인에 영어로 소개되고 있다는 점이다. 야리테마 제품만 봤을 때 과거 북한이 만들었던 SW를 생각할 수 없다. 

야리테마 관계자들은 제품과 관련된 질문에 모두 능숙한 영어로 응답했다. e-커머스용 테마에는 수백개의 댓글이 달렸는데 이에 영어로 모두 답해줬다.

야리테마의 사례를 통해 북한이 과거와 달리 디자인, 마케팅, 애프터서비스 등에 능숙해지고 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야리테마는 과거 방식의 북한 IT기업의 활동과 새로운 글로벌 스타트업 방식이 변모하는 중간에 위치한 것으로 보인다.

야리테마는 수년 간 활동한 후 활동을 중단했다. 야리테마 이후 북한 IT기업들과 개발자들은 비지니스에 더 최적화되고 마케팅, 비지니스 역량도 더 강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야리테마 사례를 경험으로 또 다른 글로벌 IT기업을 새로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리고 있다. 

과거 일부 전문가들은 북한이 SW를 개발할 수는 있지만 판매 즉 마케팅과 비지니스를 잘 하지 못해 중국, 일본, 한국 기업 또는 관계자들과 협력을 한다는 시각이 많았다.

그런데 북한 개발자들이 실패를 경험으로 자생적으로 스타트업으로 성장해가는 경험을 한 것이다. 

북한 개발자들의 이런 활동은 대북 제재와도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엑스포 등 북한 IT기업들은 해킹에 관련됐다는 의혹을 받았다. 또 북한 IT기업이 버는 돈이 무기개발에 쓰일 수 있다는 의혹으로 금융거래와 비지니스도 규제를 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 개발자들이 해외 또는 온라인에서 영어를 사용해 해외 IT기업을 표방하며 사업을 할 경우 제약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북한 개발자들은 글로벌 비지니스가 가능한 IT기업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미 북한 개발자들이 과거의 개발자가 아니고, 북한 IT기업이 과거의 북한 IT기업이 아닌 것이다. 

한편 야리테마 사업을 진행했던 개발자들 중 일부는 북한으로 귀국하거나 다른 국가로 이동해 계속 활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NK경제는 야리테마에 수차례 이메일을 보내 야리테마가 북한 기업인지 북한 개발자들이 활동하고 있는 것인지 문의했다. 하지만 수차례 이메일 문의에 야리테마 측은 아무런 답장도 하지 않았다.

PS: NK경제의 야리테마 취재는 수 년 전부터 진행이 됐습니다. 뒤늦게 내용을 소개하는 이유는 북한 취재의 특수성과 취재원 안전, 보안 때문이라는 점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강진규 기자  maddog@nk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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