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8일 빅토리아 파크에서 열린 홍콩 시민들의 집회 모습

범죄인 송환법 반대 시위 6개월과 '세계 인권의 날'을 기념해 12월 8일 홍콩 시민 수십 만 명이 시위에 나섰다. 홍콩 시민들은 행정장관 직선제 등 5가지 요구 사항을 수용할 것을 촉구했다.

NK경제는 11월 24일 구의원 선거에서 야권의 승리한 후 최대 규모로 준비된 12월 8일 홍콩 시위 취재에 나섰다.

이날 시위는 이례적으로 홍콩 정부가 집회와 행진을 허락했다. 대신 홍콩 정부는 평화적으로 시위와 행진을 할 것으로 요구했다. 이에 과연 시위가 평화적으로 진행될 것인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일 것인지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결과적으로 주최측은 이날 80만 명의 시민들이 참여했다고 주장했으며 경찰은 18만3000명이 참여한 것으로 추산했다.

행진에 앞서 집회가 열린 빅토리아 파크를 찾았다. 행사 시작이 오후 3시(현지시각)였지만 오후 1시경부터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빅토리아 파크 주변 상가, 커피숍, 식당 등에는 집회에 참가하려는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북적였다. 빅토리아 파크에 미리 도착한 사람들은 벤치 또는 잔디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오후 2시경 이미 수천 명 이상의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주최측은 다양한 음악을 방송하고 구호를 외치며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이날 행사에 취재열기도 뜨거웠다. AP통신, 로이터, 교도통신, CNN 등 전 세계 언론사 기자들이 취재에 나섰다. 

12월 8일 빅토리아 파크에서 열린 홍콩 시민들의 집회 모습

오후 2시반이 넘어가면서 빅토리아 파크에는 수만 명의 인파가 몰렸다. 이들은 광복홍콩, 프리덤홍콩 등 구호를 함께 외쳤다. 시민들이 가장 목소리를 높인 것은 5대 요구사항을 들어달라는 것이었다.

5대 요구 사항은 행정장관 직선제 실시, 송환법 공식 철회, 경찰의 강경 진압에 관한 독립적 조사, 시위대 폭도 규정 철회, 체포된 시위대의 조건 없는 석방 및 불기소 등이었다. 이중 1개도 빼놓을 수 없다고 시민들은 외쳤다.

시민들은 그동안 경찰 폭력에 희생된 사람들을 추모하는 묵념의 시간을 갖기도 했다.

12월 8일 빅토리아 파크에서 열린 홍콩 시민들의 집회에 한국인들이 참여해 발언하고 있다.

행사장에는 국제적인 연대와 지지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미국, 영국, 대만, 캐나다, 일본, 독일 등의 국기를 흔들기도 했다.

그러나 실제로 연대를 표명한 것은 한국 시민들이었다. 한국의 인권, 시민단체 대표단이 집회 현장을 방문해 단상에 올랐다. 이들은 영어로 홍콩 시민들의 요구를 지지하며 많은 한국인들이 뜻을 함께 하고 있다고 밝혔다.

짧은 발표를 끝내고 내려가려는 순간 홍콩 시민들이 한국어로 '사랑해요 한국', '감사해요 한국'을 외치기 시작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수만 명의 홍콩인들이 하나가 돼 '사랑해요 한국'을 외쳤다. 홍콩에 한류 열풍이 불면서 간단한 한국어를 홍콩인들이 많이 알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홍콩 시민들은 한국인들이 자신들을 지지해준다는 소식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들은 많은 한국인들이 자신들을 지지해주고 있다고 믿는 듯 했다.

단상에서 내려온 한국 시민들을 바로 찾아가 문의했다. 단상에 내려온 그들을 찾아간 기자는 혼자뿐이었다.

한국의 인권, 시민단체 관계자들이라고 밝힌 그들은 한국에서도 홍콩을 지지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집회가 끝나고 오후 3시가 조금 넘은 시간 행진이 시작됐다. 행진이 시작되면서 참여 인파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빅토리아 파크에서 출발한 사람들 뿐 아니라 중간에 합류하는 시민들도 많았다. 수십 만 명의 인파로 대로가 가득찼다. 

 

너무 많은 인파로 인해 행진이 예정된 대로로 시민들의 진입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이에 시민들은 주변 도로로 우회하려 했지만 주변에 도로들도 전부 인파로 가득했다. 불과 수십미터를 이동하는데 수십분이 걸렸다. 골목마다 사람들로 가득했다.

행진이 진행되는 곳곳에는 홍콩 야당과 재야단체들의 부스와 발언대가 마련돼 있었다. 홍콩 야당들은 5대 요구사항 수용을 촉구하면서도 시위가 폭력적으로 진행되지 않도록 신경쓰고 있었다. 

시위가 진행되는 내내 공중에서는 경찰 헬기들이 날아다녔다. 헬기 소리에 홍콩 시민들이 욕설을 하기도 했다. 일부 야당 관계자들은 욕설 대신 5대 요구를 들어달라는 뜻으로 헬기를 향해 5 손가락을 들어보이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이날 시위에는 남녀노소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다. 70~80대 노인은 물론 휠체어를 탄 장애인도 시위에 참여했다. 초등학생, 중학생 정도 자녀와 함께 나온 부모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유모차를 끌고 온 사람, 유치원생 손을 잡고 온 사람 등 전 세대가 시위에 참여했다. 연인이 손을 붙잡고, 어머니가 딸을 손을 잡고 시위에 나섰다.

또 일부 시민들은 시위대에게 물과 과자, 마스크 등을 나눠주며 서로를 격려하기도 했다.

집회와 행진이 진행되는 동안 자신의 주장을 나타내려는 사람들도 있었다. 교회를 믿으라고 찬송가를 부르는 사람도 있었고 시위와 무관한 종교, 정치적인 주장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과거 중국 상점과 은행 등을 공격했던 시위와 비교해 이날 시위는 평화적으로 이뤄졌다. 다만 일부 시위대가 스프레이 등으로 낙서를 하거나 포스커, 스티커 등을 붙였다. 검은 옷을 입은 청소년, 청년들이 이를 주도했다. 중고등학생, 대학생들이었다. 이들은 검은 옷을 입고 스프레이 등을 들고 다니며 활동했다.

그러나 과거처럼 중국계 은행과 상점의 집기나 창문을 부수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 중국계 상점을 보고도 모른 척하고 지나갔다. 물론 심하게 낙서를 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애드미럴티의 스타벅스가 대표적인 사례다. 홍콩의 스타벅스 소유주가 시위대를 비판하는 발언을 하면서 스타벅스도 덩달아 미움을 받고 있었다.

일부 상점들이 시위를 경계해 문을 닫기도 했지만 많은 상점들이 그대로 영업을 했다. 한 찻집은 시위대를 대상으로 활발하게 장사를 했다. 또 미슐랭에 나온 빵집에 시위대 중 일부가 줄을 서서 빵을 사기도 했다.   

시위에 참여했던 시민들이 식사를 하러가기도 하고 또 식사를 마친 사람들이 행진에 참여하기도 했다.

해가 지면서 홍콩 시민들은 휴대폰 불빛을 비추며 시위를 진행했다. 어둠 속에서도 전혀 인파가 줄어들지 않았다.

 

완차이 경찰 본부를 지날 때는 경찰들에게 소리치고 레이저빔을 쏘며 신경전을 벌였다. 경찰들은 충돌을 피하려는 듯 보였다.

 

이날 행진은 빅토리아 파크가 있는 코즈웨이베이를 시작으로 완차이를 지나 애드미럴티, 센트럴까지 이어졌다. 

시위대는 홍콩 금융 중심가인 센트럴에 도착한 후 자연스럽게 해산을 하게 됐다. 많은 시민들이 귀가를 하거나 자신들의 갈 길을 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일부 시위대는 센트럴 주변에 남아 휴식을 취했다. 

이날 시위에 수십 만 명이 참여했지만 비교적 평화적으로 진행됐다. 시민들의 요구는 명확했다. 직선제와 체포된 시위대 석방 등 5대 요구를 수용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 정부의 지침을 받는 홍콩 정부가 이를 수용하기란 사실상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홍콩 시민들의 뜻이 구의원 선거로 표출됐고 시위에서도 나타났지만 여전히 홍콩의 앞날은 안개 속인 상황이다.  

PS: 이날 평화적으로 끝날 것 같았던 시위에는 반전이 있었다. [홍콩 르포3] 일촉즉발 12월 8일 홍콩의 밤

홍콩 = 강진규 기자  maddog@nk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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