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에서 '완벽한 인간', '지혜의 화신'으로 묘사되는 제갈량(제갈공명)에 대해 북한에서는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북한에서도 제갈량을 뛰어난 전략가로 소개하고 잇다. 

NK경제는 북한 과학백과사전출판사가 편찬한 조선대백과사전(스마트폰용) 중 '제갈량'에 관한 내용을 확인했다. 

조선대박과사전은 제갈량을 중국 3국 시대 촉한의 군사전략가이며 관료라고 소개했다. 사전은 제갈량의 주요 행적도 소개하고 있었다.

사전은 "제갈량이 어려서 아버지를 잃고 숙부를 따라 형주의 양양에 있었다"며 "이때 벌써 그의 재능이 널리 알려져 207년 위나라 조조에 쫓기던 유비(북한명 류비)가 세 번이나 찾아와 그의 조언을 애원하자 익주를 가로 타고 앉아 동쪽으로는 손권의 오나라와 연합하고 남쪽으로는 이족, 월족과 화의한 다음 북쪽의 위나라에 대항해 한왕실을 부흥할 책략을 내놓았다"고 밝혔다. 이는 삼고초려와 천하삼분지계를 소개한 것이다.

이어 사전은 "제갈량이 유비의 부하가 된 후 208년 오나라와 연합해 적벽에서 위나라 조조의 군대를 격파했으며 형주, 익주를 점령하고 221년 촉한을 세워 유비를 붕괴된 한왕실의 혈통을 이은 황제가 되게 했다"며 "이로 인해 중국에는 그가 예견한대로 위, 촉, 오 세 나라가 정립하는 형세가 조성됐다"고 지적했다. 삼국정립에서 제갈량의 기여도를 아주 높게 본 것이다.

사전은 "제갈량이 유비가 죽은 후 그의 아들을 보좌하면서 운남 지방에 군대를 진출시키고 뒤이어 위나라를 공격했다"며 "그러나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오장원에서 위나라 사마의의 군대와 대치 중 병으로 사망했다"고 전했다. 이는 제갈량의 남만 정벌과 북벌을 설명한 것이다.

이어 사전은 "후세에 제갈량은 유학자들로부터 봉건충의심이 높은 명신으로 찬양을 받았으며 삼국지, 삼국연의를 비롯한 역사책과 소설, 연극들에서 비범한 지략을 가진 군사전략가로 묘사됐다"고 밝혔다. 후세와 역사책을 내세워 제갈량이 충의로운 명신이며 비범한 군사전략가였다고 설명한 것이다.

이를 통해 북한에서 제갈량을 긍정적이고 높게 평가한다는 것을 추정할 수 있다. 

강진규 기자  maddog@nk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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