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13차 정치국 회의 내용에서 남북 대화 실마리를 찾자

* 이 글은 2020년 6월 24일 통일뉴스에서도 수록된 내용입니다. 필자의 투고 및 게재 요청과 통일뉴스 측의 동의에 따라 게재합니다. 

강호제 북한과학기술연구센터 소장, 겨레하나 평화연구센터 소장, Institut für Koreastudien Freie Universität Berlin, Affiliated Fellow

남북연락사무소가 폭파되어 사라졌다. 남북 정상 사이의 합의에 의해 만들어졌던 연락사무소는 지난 2년 간 거기서 어떤 논의를 했는지 거의 알려지지 않아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가, 역설적이게도 마지막 폭파 장면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또한 이것이 사라짐으로 인해 사사건건 남북 사이의 일을 발목잡아왔던 한미워킹그룹(실무그룹)이 주목을 끌게 되었다. 연락만 주고받다가 끝나버린 듯한 연락사무소보다 실무를 수행했던 한미워킹그룹이 사람들의 지탄을 받기 시작했다. 남북 사이의 일이 잘 되는 방향으로 실무를 수행한 것이 아니라 잘 되지 못하는 대부분의 순간에 한미워킹그룹이 있었기에 문제점이 두드러져 보이기 시작했다. 

사실 최근의 파열음은 일부 탈북단체의 삐라 살포 때문에 생긴 듯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남북 합의사항을 제대로 실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겨났다.

미국이 동의하지 않았고 UN에서 결정한 국제 제재가 여전히 작동하고 있기 때문에 실현 가능한 조건을 찾기 어려웠다는 점은 이해하지만 그래도 약속한 바를 실천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삐라를 살포하지 않겠다는 약속은 물론 개성공단 및 금강산 관광도 정상화하자고 했지만 제대로 된 논의조차 진행하지 못하였다. 산림 및 보건 의료 분야 협의도 거론되었지만 거의 답보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이런 상태에서, 금강산 전면 관광도 아닌 애매한 개념의 개별관광을 하겠다는 제안이나 보건 의료 전반에 대한 협력이 아니라 평양에 짓고 있는 병원에 약간 지원하겠다는 제안은 오히려 민망함만 되돌려 받을 수 있다. 큰 틀에서 남북 협력 체계를 만들겠다기보다 일회성, 면피성 제안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약속 이행의 의지가 없다는 비난을 넘어 거짓으로 약속했다는 의심을 사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제안은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6.15선언의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을 위한 ‘남북전략회의’를 제안하자

그렇다면 어떤 제안을 하고 어떤 약속을 다시 해야 할까? 아마도 얄팍한 임기응변식,  위기모면식 대응보다 근본적인 대응이 위기 상황을 돌파하는 데 좀 더 유효할 것이다. 20주년을 맞이한 6.15 선언의 근본 정신에 입각하여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에 입각한 교류협력 방안을 고민하는 ‘전략회의’를 제안하는 것이 어떨까? 단순한 연락사무는 버리고, 실무가 어떤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하는지 지정해주는 ‘전략’을 남북이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새로운 조직체계를 만들자고 제안하는 것이다. 

당연히 ‘전략’을 논의하는 조직이므로 대통령 직속 및 국무위원회 직속으로 설치하여 다양한 분야에서 깊이 있는 ‘전략’을 논의할 수 있는 회의체가 되어야 한다.

특히 남북의 공통 관심사인 미래 비전, 즉 미래의 경제번영을 위한 전략 수립을 위해 그나마 덜 민감한 부문부터 전략회의를 시작하는 것이다. 과연 북이 이런 제안에 호응을 하겠느냐는 의구심이 들 수도 있지만, 북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하여 진심을 담아 제안한다면 부정적이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아래에 자세히 이야기하겠지만 이런 취지의 제안을 북에서 먼저 한 적이 있기에 조금은 긍정적인 반응을 기대할 수도 있다. 

계획경제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는 북의 상황을 고려하면 2016년에 수립되어 올해 말까지를 기한으로 추진하고 있는 ‘5개년 발전전략’ 속에서 남북 협력 가능한 지점을 찾아서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민족경제’를 구성할 그들의 발전전략과 우리의 발전전략을 함께 토론 테이블에 올려 ‘균형’ 잡힌 발전을 위해 함께 고민하자고 제안하자. 가능한 범위 내에서 허심탄회하게 토론하자는 데에 대해서는 어떤 규정도 ‘제재’하지 못할 것이다. 상대에 대한 비방의 의미가 들어 있을 수도 있는 저렴한 노동력과 풍부한 자원의 북, 자본과 기술의 남을 합치자는 주장은 이제 내려놓자. 

만일 ‘5개년 발전전략’에 대한 연구가 부족하여 짧은 시간 안에 대화의 지점을 찾기 어렵다면, 지난 2020년 6월 7일에 진행된 정치국 회의 결과에서 새로운 협력지점을 찾아보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을 듯하다. 정치국 회의라고 정치, 외교와 관련한 내용만 다루는 게 아니라 경제발전을 위한 정책 등에 대해서도 다루는데 이번에는 특이하게도 첫번째 안건으로 ‘화학공업’ 발전을 위한 대책들이 논의되었다. 

2020년 6월 7일 제13차 정치국 회의 첫번째 안건 : 화학공업 관련

‘제13차 정치국 회의’에서는 모두 4개의 안건이 처리되었는데 가장 중요한, 첫번째 안건으로 화학공업 발전과 관련한 문제가 토론되었다.

구체적으로는 ‘탄소하나화학공업창설’ 및 ‘비료생산능력조성’과 관련한 문제가 상세하게 논의되었다고 한다. 이 두 가지 문제는 작년 말에 개최된 ‘5차 전원회의’ 핵심사항으로 거론되었던 것으로 구체적인 실행과정을 점검하기 위해 이번 정치국 회의에서 토의되었다.

‘석탄가스화에 의한 탄소하나화학공업창설’ 과제는 36년만에 개최된 2016년 7차 당대회에서 결정된 사항이었다. 즉 7차 당대회에서 결정된 ‘5개년전략’ 속에 ‘탄소하나화학공업창설' 과제가 들어 있었고, 이 과제가 13차 정치국 회의가 개최된 요즘 가장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었던 것이다.  

사실 화학공업은 현대 생활에 매우 밀접한 공업부문이라 어떤 정부든 이를 강조하기 마련이다. 플라스틱, 합성섬유, 의약품, 농약, 비료, 물감 등 일상 생활에서 쓰이는 대부분의 물질이 화학공업부문에 의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더욱이 각종 제재로 인해 외국으로부터 원료, 연료 등 자원을 쉽게 구하지 못하는 북한의 입장에서 자원의 자립은 경제적 타산, 이윤을 넘어선 생존과 직결된 것이어서 특히 중요하게 취급되었다.

그래서 북이 가지고 있지 않은 코크스 대신 풍부한 매장량을 자랑하는 무연탄만으로 철을 생산하는 ‘주체철’과 함께, 석탄을 기반으로 하는 ‘화학공업’ 체계 확립은 북한 역사 전반에 걸친 중요한 목표였다. 탄소하나화학공업은 석유가 아니라 석탄만으로도 화학물질 전반을 생산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 수 있는 공업체계 전반을  일컫는 것이다. 

화학공업, 그리고 탄소하나화학공업은 김정은 시기에 접어들어 특별히 중요하게 취급되고 있다. 이번 정치국 회의 결정문에서도 등장하는 ‘화학공업과 금속공업은 자립경제의 쌍기둥’이라는 표현은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김정일 위원장의 경제발전 전략을 정리하면서 처음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었다.(김정은, “김정일동지의 위대한 선군혁명사상과 업적을 길이 빛내여나가자”, 2013.08.25) 탄소하나화학공업은 2016년 7차당대회에서 처음 공식적으로 사용되었다. 

이번 13차 정치국 회의에서 특별히 주목해야 하는 부분은 다음 대목이다. 

“내각총리가 탄소하나화학공업창설의 과학기술적담보와 경제적효과성을 재검토심의한 과학그루빠의 사업정형과 화학공업부문의 현 실태에 대한 보고를 하였다.”

첨단 과학기술을 활용해야 하는 탄소하나화학공업의 특성에 따라 관련 과학기술자들로 구성한 ‘특별 그룹’이 계속해서 관련 정책을 점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과학적 검토 작업을 남북이 함께 할 수도 있었는데 아쉽게도 그런 기회를 놓쳐버렸다. 이런 작업을 함께 하자는 간접적인 제안을 이미 2017년 7월에 북이 했는데 우리가 이에 호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17년 7월 근로자 : 탄소하나화학공업과 정보기술분야에서 남북 공동연구 언급

문재인 정부가 구성되고 남북 대화에 대해 옥신각신하던 2017년 7월, 당 정책들에 대한 자세한 해설과 제안 등을 주로 다루는 월간 당기관지 ‘근로자’에는 “남조선에서 우리의 과학기술강국건설로선과 관련한 연구토론회가 진행된데 대하여"라는 글이 2쪽에 걸쳐 실렸다.

2017년 1월, 남에서 열린 북 과학기술 정책 및 동향에 대한 토론회 내용을 자세하게 소개한 글이었다. 각종 언론에 보도된 기사를 토대로 당시 토론회에서 발표되었던 내용과 질의응답을 정리한 이 글에서 북은 자신들의 정책을 간접화법으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1월에 있었던 토론회 내용을 7월에 게재한 것은, 고르고 골라 자신들의 전략적 방향과 부합하는 내용으로 우리 정부에 간접적으로 제안한 것이라 해석할 수 있다. 

당원들에게만 배포되어 외부에서는 구하기도 힘든 근로자는 글 내용에 대해 상당히 많은 기관들이 교차검증한 다음에서야 싣는다고 한다. 그만큼 여기 실리는 내용들은 자신들의 정책에 부합되는 것이라 추정할 수 있다. 그 글의 마지막 부분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었다. 

“(이전 생략) 남조선 전문가들은 북과 남의 과학자들이 협력하여 공동의 과학연구성과를 내놓으면 파국상태에 처한 북남관계를 개선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강조하면서 북과 남의 과학자들이 서로 만나 공동으로 과학연구사업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실례로 북이 특별한 관심을 돌리고 있는 탄소하나화학공업에 대한 연구사업도 북과 남이 이 분야에 대한 공동연구를 진행하거나 기초과학기술이 발전한 북과 남이 정보기술분야에서 협력하는 것을 통해 그 공간을 마련해볼 수 있다고 하였다. (이후 생략)”

새로 구성된 문재인 정부와 대화통로가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직접 제안하지는 못하지만 앞으로 과학기술을 통한 교류협력이 “파국상태에 처한” 남북 관계를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생각을 밝힌 것이었다. 특히 상당한 수준에 도달했다고 자타가 공인하는 분야인 ‘정보기술분야(IT)’와 2016년부터 집중하고 있는 ‘탄소하나화학공업’을 중심으로 공동연구를 수행하는 것이 좋겠다는 구체적인 제안을 했던 것이다.

일방적인 지원과 수혜 관계가 아니라 동등한 관계에서 함께 첨단 과학기술을 연구하고 이를 통해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는 구상을 내비쳤던 것이다. 지금도 당시 만큼 ‘파국상태’이니 이 당시 기사를 언급하면서 새로운 접점을 마련하자고 제안하면 북에서도 마냥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만일 이 글에 나온 것처럼 ‘탄소하나화학공업’에 대한 남북 공동연구가 진행되었다면 이번 13차 정치국 회의에서 발표했던 ‘과학그루빠'가 남북 공동연구 결과도 포함하여 보고하였을 수도 있다. 석유화학공업에서 세계적 수준에 올라 있는 남과 석탄화학공업에서 역시 상당한 수준에 도달한 북이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을 염두에 두고 전략적 차원에서 협력할 수 있는 기회는 먼 미래에도 오기 힘든 공상 속의 일이 아니라 과거에 살짝 열렸지만 우리가 놓쳤던 일이었다. 

남북연락사무소를 통해 북이 요구한 것

남북연락사무소가 만들어지고 남북의 담당자들이 상주하면서 매일 회의를 했다고 하지만 어떤 내용이 토론되었는지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특히 북이 요구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별로 공개된 것이 없다.

그나마 필자가 최근에서야 한 가지 들은 것은 북이 과학기술과 관련된 교류협력을 원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런 요청에 대해 남의 호응이 너무 없어서 그랬는지, 과학기술과 관련해서 뭐라도 해보자라는 이야기까지 있었다고 한다. 문서로 확인하지는 못하고 구두로 재차 확인한 정도라 부정확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만일 이런 요청이 있었다면 적극 호응하는게 좋을 것이다. 늦은 감이 많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북의 요구를 잊지 않고 논의 수준을 높여 남북 정상이 직접 주관하는 ‘전략회의’에서 진지하게 논의하자고 제안하면 나름 명분이 서는 일이 될 수 있다. 

과학기술을 통한 남북교류협력, 민족경제 전체를 바라보는 전략적 차원의 교류협력이 불가능했던 것은 북의 경제발전 전략, 특히 과학기술을 통한 경제발전 전략을 가볍게 취급했기 때문이다. 정부나 학계에서 이를 진지하게 분석하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문과’ 통일정책 속에 ‘이과’적 사고와 논리가 제대로 고려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항상 ‘기승전-실패’로 이어지는 미사일이나 핵시험에 대한 평가처럼 북의 정책과 발전전략은 대부분 실패에 준하는 부정적인 결론으로 끝맺음되어 가치있게 살펴볼 여지를 안 남겼기 때문이다.

일부 탈북자 단체의 무분별한 행동이 남북관계 전반에 어려움을 가져온 것처럼 불완전한 탈북자 인터뷰와 설문조사에 의지한 북 연구가 새로운 남북 교류협력의 가능성을 보지 못하게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이제는 바꾸어보자.

북이 즉자적 대응을 한다, 팃포탯(tit for tat)식 대응을 해야 한다고 비난하면서 도리어 우리가 그렇게 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북의 반응을 전략적 판단에 따른 것으로 바라보자. 그리고 우리는 더 큰 전략적 고민을 담아, 새로운 제안을 내놓는 모습을 보이면 좋겠다.

이 땅에서 더 이상 전쟁이 없게 하겠다는 판문점 선언의 문구처럼 군사적 대응보다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을 위한 전략을 함께 논의하여 6.15정신을 이어가자는 통 큰 대응을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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