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건국의 설계자로 알려진 정도전. 남한에서는 정도전을 노련한 정치인, 이성계의 책사, 혁명가, 개혁가 등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렇다면 북한에서는 정도전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정도전이 추진한 정책을 어느 정도 인정하면서도 그가 봉건계급의 이익을 대변했고 자신들의 정치적 야욕을 위해 움직인 인물로 보고 있다. 정도전에 대해 부정적 평가가 강한 것이다. 

NK경제는 북한 과학백과사전출판사가 편찬한 조선대백과사전(스마트폰용) 중 '정도전'에 관한 내용을 확인했다. 

사전은 정도전이 고려말, 조선봉건왕조 초의 관료, 학자라고 설명했다.

사전은 정도전이 고려 경효왕 때 과거시험에 합격해 성균관 대사성, 판의홍부사, 3도도통사 등의 벼슬을 지냈으며 고려말 극도로 혼란된 봉건통치제도를 재편성하지 않고서는 봉건정권을 계속 유지할 수 없다고 인식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정도전이 봉건 왕정 안의 세습귀족들을 반대하고 새 왕조를 세우는데 앞장섰다는 것이다.

사전은 정도전의 행보에 대해서도 자세히 소개했다. 사전은 그가 1375년 몰락해 가고 있던 북원과 외교관계를 유지하려고 하던 염흥방 일파의 대외정책을 반대하고 새로 들어선 명나라와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이 정세에 맞는다고 주장하다가 반대파에 의해 전라도 회진현으로 귀양갔다고 소개했다. 이후 1383년 귀양살이에서 풀려난 뒤 왜구와 여진침략자들을 물리치는 싸움에 여러 번 참가했다고 사전은 전했다.

사전은 정도전이 1388년 위화도 회군 이후 이성계 일파에 가담해 정치, 경제적 실권을 잡고 무너져 가는 고려 왕조를 전복하는데 주동적 역할을 했다고 밝혔다.  또 그가 조선왕조 수립 후 높은 벼슬자리에 있으면서 제반 통치 제도를 자신들의 이익에 맞게 고쳐 편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이로 인해 정도전이 개국 1등 공신이 됐다는 것이다.

사전은 정도전이 명나라와의 대외관계에서도 보다 강경한 입장을 취할 것을 주장하면서 부병 제도를 정비하고 군사들에 대한 훈련을 강화하는 등 일련의 조치들을 취했다고 소개했다. 또 봉건유학자로서 불교에 대해 누구보다도 강한 비판을 가했는데 이것은 유교성리학을 통치사상으로 내세움으로써 봉건통치제도를 공고히 하고 불교의 세력을 꺾으며 성리학을 퍼트리기 위한 이유였다고 해석했다.

사전은 정도전이 1398년 봉건국가의 중앙집권력을 강화하며 자기의 정치적 지위를 더욱 튼튼히 다지려는 목적으로 이성계의 여덟째 아들을 세자로 정하고 왕자들과 귀족들이 가지고 있던 사병을 없앨 것에 대한 의견을 제기했다고 전했다. 그가 이를 추진시키려다가 왕위 계승자가 되지 못한데 불만을 품은 이방원에 의해 살해됐다는 것이다.

사전은 "정도전이 고려말의 대토지 소유를 반대한 점에서는 일정하게 긍정적 역할을 했다"면서도 "그러나 그는 봉건지주계급의 이익을 철저하게 웅호하고 대변했으며 자기의 정치적 야욕을 위해 활동했다는 점에서 당시 다른 봉건관리들과 다를 바 없다"고 평가했다. 북한 사전은 정도전에 대해 평가절하한 것이다.

북한에서는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에 대해서도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가 고려 왕조를 배신하고 친명사대주의 정책을 표방하는 등 매국행위를 했다는 것이다. 이성계에 대해서 부정적인 북한은 그의 측근인 정도전에 대해서도 부정적으로 보는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은 엄중한 매국행위"

강진규 기자  maddog@nkeconomy.com

* 독자님들의 뉴스레터 신청(<-여기를 눌러 주세요)이 NK경제에 큰 힘이 됩니다. 많은 신청 부탁드립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NK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