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 1000원권 지폐에 인물인 조선시대 철학자 퇴계 이황에 대해 북한은 반동적 사상가로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황의 사상이 봉건 지배와 노비 제도 등을 운영하는 사상적 기반이 됐다는 것이다. 

NK경제는 북한 과학백과사전출판사가 편찬한 조선대백과사전(스마트폰용) 중 '리황(이황)'에 관한 내용을 확인했다.

사전은 이황이 조선봉건왕조 시기 이일원론을 제창한 대표적인 관념론 철학자로 호가 퇴계이며 예문관 검열, 예조판서, 단양군수, 대사성 등의 벼슬을 지냈다고 소개했다. 사전은 이황이 1545년 을사사화를 계기로 고향에 돌아와 서원을 세우고 학문연구와 후대교육에 종사했다고 덧붙였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사전은 이황의 철학사상이 보수적인 양반지배 계급의 이해관계를 대변했으며, 그가 주자성리학에 의한 학술적 통일과 지배를 위해 주자성리학 이외의 모든 학문을 이단으로 배척했다고 비판했다. 사전은 그가 서경덕의 유물론도 반대하고 불교와 왕양명의 주관관련론도 반대했으며 오직 주자의 객관관념론을 숭상했다고 설명했다.

사전은 이황이 사람에게는 본견지성과 기질지성이 있으며 타고난 육체적 기질의 차이에 의해 사람은 상지(지혜로운 사람), 중인(보통사람), 하우(우둔한 사람)으로 나뉜다고 주장했다고 지적했다. 여기서 하우에 속하는 사람은 봉건사회의 최하층, 피지배계급으로 상지에 속하는 사람인 봉건지배계급의 통치를 받아야 한다고 이황이 주장했다는 것이다.

사전은 “봉건제도의 적극적인 옹호자인 이황이 임금을 두목으로 하는 봉건적 전제군주 제도를 합리화하고 노비법을 강화할 것을 주장했으며 자주성을 위한 농민들의 투쟁을 적대시하고 무자비하게 탄압할 것을 요구했다”고 비난했다. 또 “그의 반동적 사상과 이론은 300년 간 조선봉건왕조 지배 계급의 사상적 통치 수단으로 복무했으며 일본 주자학의 발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줬다”고 주장했다.

북한은 이황의 사상이 독선적이었으며 조선왕조의 봉건제도, 노비제도를 뒷받침하는 역할을 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북한에서 이황은 부정적인 인물로 인식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강진규 기자  maddog@nk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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