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코로나19 시대 돌파구로서 남북경협 2.0

글 박영민 씨트로닉스 팀장

코로나19로 온 국민이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전 세계적인 경제 불황까지 겹치면서 기업인들의 고민 또한 점차 늘어가고 있다. 코로나19 유행기 시대의 특징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가능하겠지만, 기업인에게 가장 큰 어려움은 ‘예측 불가능성’이다. 

경제가 호황을 누려도 향후 경기 변동을 정확히 예측하는 것이 쉽지 않은데, 전대미문의 전염병으로 닥친 불황 앞에서 속수무책을 절감하는 때이다. 최근 들어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가 유행처럼 온갖 분야들에서 예측 도구로서 각광을 받고 있다. 그렇지만, 코로나19로 다가올 경제적 충격과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을 잠재우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지난 9월에 발표된 OECD의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OECD 1위를 차지했으므로, 코로나19 시대를 맞아 K 방역이 각광받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한국과 달리 방역망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했던 소위 선진 국가들의 경제적 피해는 심각했다. 일례로 유럽에서 확진자가 가장 많이 발생했던 프랑스의 경우, 방역 마스크의 해외 수입선이 끊겨 막대한 사회경제적 비용을 치를 수 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생산기지의 해외 이전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던 서구 선진국들이 이번 코로나19 유행으로 국내 제조업의 중요성을 절실히 깨달았을 것이다. 사실 K 방역의 성공요인으로 철저한 검사체계와 함께 방역물품을 국내 조달할 수 있는 생산능력을 빼놓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계적 유행이 지속되는 현 상황은 이전보다 장기적이고 거시적인 관점에서 글로벌 무역 시스템을 새롭게 구축할 필요를 제기하고 있다. 올해 초 코로나19 발생으로 국가 간 교역이 봉쇄되자, 국내 제조업이 단 몇 달치 물량확보를 위해 사활을 걸었던 장면들이 낯설지 않다. 치료제나 백신 개발이 단 기간에 완료될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주기적으로 도래할 코로나19 유행에 임기응변으로 대처하는 것은 현명한 선택이 아닐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해결의 실마리는 의외로 우리 가까이에 와 있다는 역설적 진리를 떠올려 보는 것은 어떨까?

그러나 제조업 생산기지의 해외 이전 문제와 관련해 한국이 예외적인 상황에 놓인 것은 아니다. 국내 기업들의 해외 생산 거점이 중국과 베트남에 이어 동남아시아 인근 국가들로  점차 확대되는 가장 큰 이유는, 저렴한 노동력의 확보를 위해서였다. 

그러나 코로나19와 공존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글로벌 무역망을 유지하려면, 방역 능력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창고에 수출품이 쌓여 있어도 방역망이 무너지면, 세계 어느 곳으로도 유통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오히려 해외와의 무역 거래가 전무했던 국가들이 코로나19의 피해를 덜 받는다는 아이러니한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그러한 국가들 중의 하나가 바로 북한이다.

물론 국가통제의 삼엄함으로 코로나19가 북한에서 창궐하지 못한 이유일 수도 있지만, 코로나19 유행 전 중국과의 인적, 물적 교류가 중단된 대만이 아시아에서 피해정도가 가장 적었던 것을 떠올려 볼 필요가 있다.

국경을 접하고 있음에도 심리적으로 먼 나라 북한과의 공존을 위해 남북경협을 추진하는 것은 이제 집권 여당과 정부의 화두가 된 지 오래다. 북한에 대한 남한 기업인들의 복잡한 속내를 모르는 바가 아니기에 남북경협이라는 화두가 멀고 먼 얘기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업인의 진면목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마치 무에서 유를 창조하듯이 일반의 상식과 통념을 뛰어넘는 선구자적인 면모를 보일 때 빛을 발하는 법이다. 그렇다면 코로나로 전 세계적 경제 불황이 닥쳐온 지금이야말로 북한과의 경협을 진지하게 고민해 볼 때가 아닐까? 

100여개의 남한 기업이 약 5만명의 북한 노동자들을 고용하고 5억 달러 이상의 매출을 올리면서 남북경협의 실질적 성과를 대변했던 개성공단이 조성된 지도 벌써 10년이 훌쩍 넘었다. 남한의 자본과 기술 그리고 북한의 노동력이 만났을 때 이뤄낸 결실을 우리는 이미 경험했던 것이다. 

남북경협 2.0 모델로 새로운 단계로 도약

그렇다면, 과거의 개성공단을 복구하는 것으로 남북한이 처한 경제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10여년 전 남북한이 지금과 같을 수 없듯이, 남북경협 2.0 모델은 과거의 성공을 토대로 이제 새로운 단계로의 도약을 필요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한 첫 걸음은 북한을 제대로 알고자 하는 노력이 될 것이다.

정치적 대립과 과거의 타성에 젖어 분단 이후 변화 없이 정체된 체제로 북한을 보는 관점을 벗어나야 한다. 마찬가지로 과거의 개성공단 모델에서 추구했던 북한의 저렴한 노동력을 활용하려는 방식도 극복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는 변화된 북한 내부의 경제적 수요와 새로운 시장으로서 북한을 바라보는 발상의 전환에 방해가 될 뿐이다.

이미 북한은 김정은 집권 초반부터 과학기술 강국을 표방하면서 산업적으로 활용 가능한 기술의 발굴에 국가적 역량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북한이 어떤 정책방향을 설정했는지를 알기 위한 노력이 있어야 한다. 국내외 언론뿐만 아니라 북한 내부에서 공개적으로 내놓는 자료들을 직접 살펴보려는 일이 선행하지 않고서는 장님 코끼리 만지기식의 북한 이해만이 계속될 것이다. 

예를 들어, 국립중앙도서관의 통일부 산하 북한자료센터에 가면, 3일전까지의 북한 내 일간지, 북한 연구 저널들을 비롯해 북한이 출간한 각종 자료를 직접 열람하거나 대출할 수 있다. 만일 북한 내 발표된 연구 자료들로 충분치 않아 해외에서 발표한 북한의 과학기술을 살펴보고자 한다면 어렵기는 해도 불가능하지만은 않다. 

실제로 세계지적재산권협회(WIPO)를 통해 북한이 자체 출원한 특허기술만 검색해 보아도 다양한 분야에서 지속적인 연구를 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절대량에서는 남한과 비교할 수 없을지 몰라도 북한의 기술 수준에 대한 객관적 지표로서는 활용해 볼 여지가 있다. 미국의 대북제재로 북한의 대외교류가 제약받는 상황에서 이런 자료를 통해 북한 내부의 산업적 수요를 가늠해 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개성공단과 관련한 행정적 지원업무를 맡고 있는 통일부 산하 개성공단지원재단과 경기도를 비롯한 남북교류에 적극적인 지자체 등을 통해 남북경협의 실제적 단계들에 대한 사전조사를 해 볼 수도 있다.

마침 올해 8월부터 재단에서 진행하는 남북경협 전문가 양성과정이 전국 권역별로 온라인으로 진행 중에 있다. 남북한의 평화적 공존을 통해야 가능한 남북경협의 거대한 조류를 혼자서의 힘으로 이끌어 갈 수는 없다. 남한 기업인들이 조금만 관심을 갖는다면 남북경협에 관련된 국가 기관과 민간 조직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얼마든지 가까운 곳에 있다.

경제란 결국 민간의 꿈틀거리는 힘이 실질적인 흐름을 만들어 낼 때 선순환을 이룰 수 있다. 정권이 아무리 평화경제를 내걸고 남북경협을 추진한다 해도 민간 기업인들이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는다면 실질적 효과는 미미할 것임에 틀림없다.

비상한 시절에는 과감한 발상의 전환 필요

비상한 시절에는 이전과는 다른 과감한 발상의 전환과 시도가 있어야 한다. 남한 제조업의 고사와 위기에 대한 말들이 십수 년 전부터 유행하고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한 적이 있었는지 의문이 든다.

인구의 고령화, 출산율 급감, 경제성장과 소득 수준이 상승함에 따라 자연스레 국내 인건비의 상승은 피할 수 없었다. 선진국과의 기술격차는 여전하고 쫓아오는 중국의 추격세는 무시 못할 상황을 맞이한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일본의 반도체 관련 수출규제 사태가 1년을 넘어서는 지금 어떻게 되었는가? 일본과의 격차는 어쩔 수 없다면서 굴욕적인 협상을 주장하던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지금은 어디로 사라졌는지도 모를 지경이다.

생태계에서는 급변하는 환경 변화로 예기치 못한 신종이 나타나듯이, 세계 무역 생태계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코로나19로 닥칠 국내 산업 생태계의 변화 또한 현재로선 예측 불가능할 정도의 파급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따라서 개성공단을 뛰어넘는 남북경협 2.0 모델을 기업인들이 만들어 가려는 노력을 통해 평화와 방역을 기반으로 남북한을 아우르는 글로벌 무역 시스템의 새로운 모델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남북경협이 선택이 아니라 필연이라 여긴다면, 구체적으로 실천해 나가는 것이 불확실한 코로나 시대를 헤쳐 나가는 돌파구가 될 것이다. 준비된 자에게 기회가 오듯이, 한국의 기업인들이 이제 남북경협을 우연히 닥쳐올 변수가 아니라 필연적으로 맞이할 상수로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그 실천의 첫걸음은 바로 북한을 올바로 이해할 정보 획득을 위해 직접 발로 뛰며 찾아보려는 실천에서부터 비롯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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