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레오나르도 다빈치 종교 미술 전통 타파 못해"
북한 "레오나르도 다빈치 종교 미술 전통 타파 못해"
  • 강진규 기자
  • 승인 2020.11.07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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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시대 대표적인 화가, 조각가, 과학자로 알려진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대해 북한은 어떻게 보고 있을까? 북한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재능에 대해서는 인정하면서도 그에게도 한계가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NK경제는 북한 과학백과사전출판사가 편찬한 조선대백과사전(스마트폰용) 중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관한 내용을 확인했다.

사전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이탈리아 화가, 조각가, 건축가, 과학자로 문예부흥기(르네상스) 이탈리아 미술의 대표자라고 소개했다.

사전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생애를 자세히 소개했다. 그가 어려서 그림 그리기를 즐겨했으며 14살 때부터 당시의 이름있는 화가이며 조각가인 베르키요의 화실에서 미술공부를 했다는 것이다. 이후 1472년 화가조합에 등록됐으며 1476년 스승의 조수로 공동창작에 참가했는데 그의 남다른 예술적 재능이 스승을 능가했기에 스승은 그림 그리기를 단념했다고 전해진다고 설명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자화상  출처: 위키백과

사전은 1480년 화가로서 독립한 그는 당시의 이름난 화가로 공인됐으며 피렌체와 밀라노, 로마에서 적극적인 창작활동을 했고 1518년 프랑스 왕의 초청을 받고 프랑스 궁전에서 여생을 보냈다고 소개했다.

사전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이탈리아의 정치, 경제적 위기가 심각해지면서 반동적 카톨릭교회의 공세가 시작되고 종교적이고 귀족적이며 형식주의적 미술인 기교주의가 대두하던 시기에 문예부흥기 예술의 진보적 경향을 대표하는 미술가였다고 지적했다. 이는 긍정적인 평가다.

사전은 그가 초기 작품들에서 문예부흥기 인문주의 이상과 함께 명암에 의해 입체감과 공간을 표현하고 빛과 같은 음영의 대조로 강한 입체감을 부여함으로써 물체를 어두운 공간에서 떠오르게 하는 방법 등을 잘 구현했다고 전했다.

또 그가 주로 종교주제화와 초상화를 창작했다며 그가 그린 종교주제화들에는 현실적인 인간 생활의 측면들이 반영돼 있으며 부르주아 인도주의에 기초한 화가의 이상이 표현돼 있다고 설명했다.

사전은 다빈치의 대표작으로 벽화 최후의 만찬이 있으며 또한 피렌체에서 창작한 초상화 몬나리자(모나리자)에서 평범한 이탈리아 여성의 사실적 형상을 통해 인간에 대한 부르주아 인도주의적 이상을 표명했다고 소개했다.

사전은 그가 과학자이기도 했다며 수학, 역학, 물리학, 지리학, 생리학 등 자연과학 분야의 많은 수기를 남겼다고 전했다.

그러나 사전은 종합적인 평가에서는 다빈치의 한계를 지적했다. 사전은 "화가는 자기의 계급적 제한성과 유럽 문예부흥기 인문주의의 역사적 제한성으로 인해 종교미술의 낡은 전통을 완전히 타파하지 못했다"며 "따라서 그는 근로하는 대중이 아니라 귀족들의 생활에서 예술의 아름다움, 인간의 희망과 미래를 찾으려고 했다"고 비판했다. 앞서 언급한 긍정적인 평가와는 대비되는 부분이다.

사전은 다빈치의 창작이 중세기 종교적 금욕주의를 반대하고 사실주의로의 지향과 높은 예술적 기교로 인해 문예부흥기 사실주의 미술발전에 이바지했다고 평가했다.

강진규 기자  maddog@nk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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