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3년 조선시대 발행된 최초의 근대신문인 한성순보를 북한에서도 최초의 신문으로 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11월 15일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김일성종합대학 홈페이지에 ‘한성순보를 통해 본 조선신문’이라는 글이 게재됐다.

글은 “조선에서도 보도기사는 신문의 원종으로 출현했다”며 “그것은 조선의 첫 신문인 한성순보의 창간호에 20여건의 보도기사가 실려 있는 것에서 잘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성순보는 당시 해외를 시찰했던 사람들의 건의로 고종의 지시에 따라 한성부(서울시)의 주도로 발행된 근대적 신문이다. 북한도 한성순보를 첫 신문의 시작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북한 연구원들은 한성순보에 수록된 기사 형태 등에 대해서 분석했다.

글은 “조선의 첫 신문에 실린 기사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몫을 차지한 것은 우선 보도기사다”라며 “기사는 신문에 실리는 것을 목적으로 쓰려지는 글로서 그 목적과 내용, 형식에 따라 여러 가지로 구분된다”라고 소개했다.

이어 글은 “보도기사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을 기본으로 하는 기사”라며 “보도기사에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왜 했는가 하는 사실 전달의 요목만 갖추어지면 사실을 원만히 알려주는 것이 된다. 이런 속성으로 인해 세계적으로 볼 때 보도기사는 신문과 함께 출현한 기사의 원종이다”라고 지적했다. 글은 한성순보 창간호에 보도기사가 주로 수록됐다고 분석했다.

또 글은 한성순보에 보도기사의 한 형태로서 별보 즉 특별보도라는 고정표식을 가진 글들도 가끔 실렸다고 전했다. 별보는 보통의 관보나 외보, 잡보에 비해 보다 중요한 문제들에 대한 보도 즉 특별한 비중을 가진 보도를 의미한다고 한다. 이것은 새로운 기사 형태가 아니라 특종기사라고 불리는 특별히 중요한 소식 보도를 의미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이런 기사를 작성하는 사람을 탐보원(전문적으로 보도자료를 수집하는 기자)으로 불렀다고 한다.

글은 한성순보에 실린 기사들 중 보도기사와 함께 중요한 몫을 차지한 것이 논설이었다고 설명했다. 한성순보에는 보도기사와 함께 정치인들과 문필가들의 견해와 주장을 반영한 글들이 적지 않게 실렸다는 것이다.

글은 첫 신문 한성순보가 발생 초기부터 보도기사와 함께 논설을 중요한 기사종류로 게재했다고 분석했다.

강진규 기자  maddog@nk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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