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북한과 IT 협력을 해야 합니까? 차라리 아프리카 국가와 IT 협력을 추진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지 않습니까?"

"북한과 IT 협력할 돈과 시간을 동남아 국가에 투자하는 것이 ROI(투자대비 효과)가 나옵니다. 남북 협력을 꼭 해야합니까?"

이는 필자가 IT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만나서 직접 들은 이야기다.

이런 주장이 나온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IT 분야에서 일하는 개발자, 박사, 교수들 중에서도 이와 같은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심지어 남북 협력을 추진, 담당하는 관계자들 중에서도 이런 이야길 한다. 

남북 관계가 어렵고 남북 협력이 잘 되지 않기 때문에 이런 주장(또는 푸념)이 나온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답답한 심정은 이해하지만 이런 주장은 옳지 않다.

이같은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논리는 지금이 세계화의 시대인데 민족을 앞세우는 것은 고루하다는 주장이다. 

필자 역시 지금이 세계화의 시대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남북 협력을 주장하는 사람들 중에서 남한이 북한하고만 협력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당연히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남미 등 세계 다양한 나라와 협력을 해야 한다. 

남북 협력을 하자는 주장은 다른 나라들과 협력하는 것처럼 북한과도 협력을 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좀 더 긴밀한 협력하자는 의미다.    

북한과 더 긴밀히 협력을 해야 하는 이유는 같은 민족이며 문화적 공동체이고 지정학적 이웃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민족, 인종, 종교, 국가 등을 넘어선 세계화의 시대와 세계인에 긍정적이다. 그런데 세계화, 세계인이라는 것은 우리 한국만 주장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세계화가 되려면 모든 국가와 민족, 시민들이 그렇게 생각해야 한다.

그렇다면 민족의 중요성이 사라지고 정말 세계화 시대가 도래했을까?

중국, 일본, 러시아 등을 보면 여전히 자국, 자민족 중심주의가 적용되고 있다. 아직도 일본에서는 재일동포가 차별받고 있으며 중국은 한족 중심의 민족주의, 애국주의를 드러내고 있다. 중국은 고구려, 발해 역사를 자국의 역사라고 주장하는 것은 넘어 한글, 김치, 한복 등도 중국의 것이라고 주장한다.

다민족, 다문화 국가인 미국은 어떨까? 미국에서도 여전히 인종차별이 나타나고 있다. 미국 뿐 아니라 호주, 유럽에서도 민족주의, 인종차별이 나타나고 있다. 민족 국가가 없는 중동의 쿠르드족은 다른 민족과 국가들로부터 차별과 탄압으로 고통받고 있다.

다양한 국가에 한국인들이 진출하고 정착하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은 민족 국가가 건실하게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민족의 개념이 유전적, 인종적 특성으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생활, 문화, 언어, 사회적 공통체라고 생각한다. 민족을 지킨다는 것은 우리가 한글을 쓰고 밥과 김치를 먹고 아리랑 노래를 부르고 한복을 입는 것을 지키는 것이다.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내가 살아가고 자식들이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민족이고 문화다. 지금처럼 앞으로도 살아갈 권리 이것을 지키지 위해 우리 조상들은 임진왜란, 병자호란에서 싸웠고 일제 시대 독립을 위해 투쟁했다.

과거 일제 시대 일본은 '대동아', '내선일체' 등을 주장했다. 주장은 아시아인이 동등하고 일본인과 조선인이 하나가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우리글과 문화를 말살하고 일본 문화에 동화시키려고 했다.

앞서 언급한 중국도 세계주의를 표방하고 있지만 그 세계주의는 중국 중심의 세계화다. 바로 김치를 중국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세계화다.

우리가 민족의 개념을 버린다면 우리의 아이들은 어쩌면 중국이나 일본 또는 러시아, 미국 등에 동화돼 살아갈지도 모른다. 그들은 한글 대신 중국어, 일본어를 쓰고 이름도 중국식, 일본식으로 바꿔 살아야 할 것이다. 우리 민족의 글과 문화, 역사, 음식, 생활도 사라질 수 있다.  

남과 북 모두 험난한 세계 속에서 민족적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최소한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협력해야 한다. 둘이 하나가 될 때 민족 문화를 지키고 발전시킬 수 있는 힘은 더욱 커질 것이다. 

남북의 지정학적 위치를 보면 협력과 통일은 운명이다. 이웃한 남과 북이 협력을 할 경우 다른 어느 나라보다 시너지가 크다. 반면 서로 적대할 경우 가장 위험한 비수가 된다. 좋은 이웃, 친구, 형제가 돼야 서로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다른 나라보다 더 긴밀히 협력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남과 북 모두가 관심이 있고 시너지를 낼 수 있는 IT, 과학기술로 우선 협력을 하자는 뜻이다.

남북이 협력을 하면 어떤 이득이 있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다. 아프리카, 동남아 국가와 협력하는 것이 더 이득이라는 것이다.

필자는 남북 협력으로 당장 돈이 되는 분야도 있을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분야도 있다고 냉정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남북 협력을 단순히 당장의 돈으로만 계산할 수는 없다. 남북 협력의 가장 큰 이익은 미래 세대에 가능성을 2배로 키워준다는 점이다.

지금처럼 남북이 대립한다면 남한의 아이들은 미래에도 한반도 남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곳을 터전으로 살아갈 것이다.

북한의 아이들 역시 한반도 북부를 터전으로 살아갈 것이다. 더구나 서로 총을 겨누고 계속 싸우며 시간과 돈을 낭비할지도 모른다.

남북이 상호왕래하고 협력하고 통일이 된다고 생각해보자. 남과 북 아이들의 터전과 가능성은 2배 이상이 될 것이다.

남한의 청년이 개마고원에 트레킹(산책여행) 코스를 만들고, 북한의 청년이 거제도에서 해양 연구를 할 수 있다. 남한의 과학자가 북한의 광산지역에서 광물 연구를 하고 북한의 과학자가 제주도에서 생물학 연구를 할 수도 있다.

남한에서 역사학자를 꿈꾸며 경주, 부여 등만 찾아갔던 아이가 고려의 수도 개성, 고구려의 수도 평양도 돌아볼 수 있다. 북한의 아이가 제주도에서 감귤 연구를 하며 새로운 품종을 만들어낼지도 모른다. 

남북 냉면 맛집을 소개하는 앱을 만드는 스타트업이 등장하고, 남북 청년들의 힘으로 개성에 동아시아 실리콘밸리가 탄생할 수도 있다.

남북 화해 협력은 남과 북 모두 미래 세대에게 적이 아니라 친구를 만들어주는 효과도 있다. 남과 북이 8000만명의 경제권을 형성한다면 이땅에 더 많은 경제적 기회가 생길 것이다.

이와 별개로 아프리카, 동남아 국가와 협력을 비교하는 사람들에게 스스로를 돌아볼 것도 제안하고 싶다. 그들의 말에는 북한과 다른 나라 양쪽 모두를 무시하고 낮춰보는 인식이 있다고 본다. 또 남한이 다른 나라를 가르치고 호의를 베푼다는 선민의식이 자리잡고 있다. 정작 세계화 주장과는 모순된 내용이다.

남한은 북한은 물론 다른 나라와도 동등하다. 남한이 다른 국가와 협력하는 것은 친구, 동지의 관점에서 진행돼야 한다. 어려운 친구를 도와줄 수 있다. 그런데 돕는 행위의 동기가 우정이 아니라 무시하고 잘난 척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오만함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협력을 생각한다면 안하는 것이 맞다.  

과거 남한도 동남아 국가들보다 못살았던 적이 있으며 북한이 남한보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웠던 시절도 있었다. 개구리는 올챙이 시절을 생각해야 한다.

남북 IT, 과학기술 협력은 단순히 비지니스가 아니라 미래를 만들어 가는 작업이다.

IT 개발자로 연구자로 자신을 위해 이익을 챙기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이땅에 태어난 운명으로 미래에 대해서도 고민해봐야하지 않을까?

새로운 세대가 나아갈 길을 만들어 주는 것이 구 세대의 책임, 임무이기도 하다. IT인들이 IT를 기반으로 남북 협력과 통일을 주도하고 미래 세대에 길을 열어준다면 우리 사회를 더 풍요롭고 행복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이런 주장을 강요할 생각도 없고 이것이 100% 진리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다만 단순히 남북 협력과 통일을 반대하지 말고 우리가 왜 남북 협력을 하고 통일을 해야하는지, 왜 남북 IT 협력을 해야하는지 더 많은 고민과 논의가 진행되길 바란다.   

강진규 기자  maddog@nk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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