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IT를 강조하는 이유는? 

글 변학문 북한과학기술연구센터 연구위원


과학기술과 IT에 기초한 발전을 시도 중인 북한 

김정은 시대 북한은 경제, 교육, 체육, 의료 등 국가 전 영역에서 과학기술에 기초한 빠른 발전을 꾀하고 있다. 2016년 노동당 제7차 당 대회에서 ‘과학기술 강국 건설’을 자신들의 '선차적 과제'로 규정한 건 이 때문이다. 북한은 특히 ‘경제의 정보화’, ‘교육의 정보화’, ‘체육의 정보화’ 등 구호를 내걸면서 정보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북한하면 으레 3대 세습, 핵, 미사일, 숙청, 경제난 같은 말들이 따라붙어야지 ‘과학기술’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 집권 초기 일부 전문가들 조차 ‘김정은이 과학기술을 강조하는 건 아버지와 자신을 차별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여 마치 북한이 김정일 시대에는 과학기술을 육성하지 않았던 것처럼 얘기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김정일 시대부터 이어져온 과학기술 중시, IT 중시 

하지만 IT를 필두로 한 과학기술의 힘으로 국가를 발전시키겠다는 정책 기조는 김정은 위원장이 집권한 이후가 아니라 김정일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과학기술의 힘으로 경제 강국을 건설하기 위해 과학기술 중시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것부터 1998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천명했다. 

나아가 김정일 위원장은 2001년 3월 발표한 담화에서 21세기를 ‘정보산업 시대’로 규정했다. 경제를 포함한 인간의 모든 활동 영역에서 컴퓨터를 핵심으로 한 정보기술, 지능노동의 비중이 급격히 높아졌다는 의미다. 그는 이러한 시대 특성에 따라 말 그대로 나라의 ‘모든 것’을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보산업 시대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사회주의 이론, 경제 정책, 경제 구조, 교육 내용, 과학기술 정책, 간부 선발 기준 등이 다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김정일 위원장의 담화 이후 북한에서는 ‘경제의 정보화’ 생산과 경영 전반에서 컴퓨터 이용 확대를 통한 산업구조 개선, IT 등 첨단 과학기술 육성, 과학기술 인재와 지능 노동자 양성 확대, 전국적인 통신망 등 IT 인프라 확충 등이 중요한 정책 목표로 자리 잡았다. 초중등 컴퓨터 영재교육 강화, 대학 컴퓨터 학과 신설, 주요 대학에 순차적으로 전자도서관 건설, 과학기술 예산 증가 등 구체적인 조치들도 취해졌다. 독자적인 운영체제(OS)와 각종 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위해 당시 북한이 집중 육성했던 조선콤퓨터센터(KCC)가 남쪽에 잘 알려지기도 했다

물론 KCC를 중심으로 한 소프트웨어 개발만 부각돼 ‘북한이 경제난 속에서 대규모 자본이나 설비가 없어도 생산이 가능한 소프트웨어 개발에 치중한다’는 분석이 많았다. 

2000년대 초 중학생이었던 한 탈북자도 김정일 위원장의 담화가 발표된 이후 자기 또래들은 ‘이제 컴퓨터를 잘 하면 대접받을 수 있겠구나’ 생각하고 컴퓨터 공부를 열심히 했기 때문에 컴퓨터 전공이 아니어도 C 언어 정도는 할 줄 안다고 경험담을 전해줬다.

2009년, 후계자 김정은의 등장과 CNC  

2008년 8월 김정일 위원장이 뇌졸중으로 쓰러지자 2009년 초 북한은 그의 후계자로 김정은을 내정했다. 같은 해 4월 인공위성 ‘광명성 2호’를 쏘아올린 직후부터는 CNC(Computerized Numerical Control)를 “승리의 첫 포성”, “놀라운 사변”이라며 자국 과학기술 발전의 상징으로 부각시켰다. 컴퓨터로 기계를 자동 조종해 소재를 가공하는 기술인 CNC는 고도의 정밀도가 필요한 장거리 로켓 부품을 가공하는 데 필수적이다. 이 때문에 우주 발사체 기술을 보유한 나라들은 대부분 CNC 공작기계 기술도 갖고 있으니, 북한도 장거리 로켓을 제작할 정도의 CNC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이때부터 북한은 그간 국방 과학기술에만 쓰고 있던 CNC를 밑천으로 삼아 민간 경제의 성장을 시도했다. 컴퓨터를 이용해 기계와 설비를 정밀하게 제어하는 CNC를 민수용 생산 설비에 적용하는 것 자체가 2000년대 초부터 강조하던 ‘경제의 정보화’를 실현하는 길이었고 민간 경제는 이러한 선진 기술을 수혈 받음으로써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본보기 공장들의 현대화∙정보화 

김정은 시대의 북한은 김정일 집권기의 정책과 성과를 이어받아 경제의 정보화를 꾸준히 시도해왔다. 특히 경제 각 부문별 주요 공장들의 생산 공정을 자동화하고 이를 컴퓨터망으로 연결해 중앙에서 통제할 수 있는 통합생산체계를 만드는 데 많은 힘을 쏟았다. 김정은 위원장조차 “첨단수준에 올라선 부문이 있는가 하면 어떤 부문은 한심하게 뒤떨어져 있다”고 인정할 정도로 부문 간, 기업 간 격차가 큰 상황에서 일부 공장을 먼저 본보기로 만들려 한 것이다. 

북한은 주요 대학과 과학원의 연구진은 물론이고 필요에 따라 북한 인민군이 보유한 기술과 인력까지 투입해 공장의 현대화를 진행했다고 한다. 그 결과 최근 5~6년 간 식품, 의류, 신발, 가방, 화장품, 학용품, 비누, 농업, 양어, 양묘, 기계, 수산 등 여러 부문에서 수십 곳의 공장이 통합생산체계를 갖추었다. 북한은 이 과정에서 쌓은 기술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이 공장들을 표준으로 삼아 다른 사업장의 현대화를 진행하려 한다. 

‘전 국민의 이과화’

북한은 과학기술 강국을 건설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로 ‘우수 과학기술 인재 확보’를 꼽는다. 이를 위해 북한은 전문 과학기술 인력의 양과 질을 높이는 것은 물론이고, 전체 주민들이 4년제 이공계 대학 졸업 수준의 과학기술 지식을 갖추는 것을 목표로 한 ‘전민 과학기술 인재화’를 표방하고 있다. 한마디로 전 국민의 이과화를 추구하는 것이다. 

북한은 전민 과학기술 인재화를 실현하기 위해 새 세기 교육혁명이라는 이름으로 수년째 교육 체제와 내용을 개혁해왔다. 40년 간 유지했던 초중등 의무교육을 11년에서 12년으로 확대하면서 수학과 과학기술 수업의 비중을 높였으며, 대학 교육을 내실화하기 위해 지역별∙부문별 거점대학을 집중 육성하고 여타 중소규모 대학들은 이 거점대학을 중심으로 교육개혁과 연구를 진행하게 하고 있다. 이와 함께 노동자, 농민 등 정규교육을 마친 성인 대상의 과학기술 교육도 강화하고 있다. 

IT로 교육환경 개선 

북한은 교육개혁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교육의 정보화’라는 이름으로 IT를 이용한 교육환경 개선을 시도하고 있다. 예를 들어 노동자와 농민의 과학기술 수준을 높이기 위해 2016년 1월 개장한 평양의 과학기술전당과 각 지역이나 사업장의 과학기술보급실을 ‘국가망’(북한의 전국적인 전산망)으로 연결해 전국적인 과학기술보급망을 구축했다. 노동자, 농민을 포함한 주민들은 과학기술보급실에서 과학기술전당에 접속해 자신들에게 필요한 과학기술 자료를 이용하거나, 대학에 접속해 원격교육대학(사이버대학) 강의를 수강할 수도 있다. 

북한은 이뿐 아니라 모든 초중등학교 교실에 컴퓨터를 설치하고, 학교마다 전자도서관을 건설하고 국가망에 가입시키는 등 학교의 IT 인프라도 확충하였다. 이를 이용해 전자 강의안이나 전자 교과서의 제작 및 이용을 활성화하고, 원격강의와 원격시험도 확대하고 있다. 

김정은 시대 북한은 보건의료 체제를 강화하기 위해 제약공장과 의료기구공장의 현대화․ 정보화도 추진하고 있다. 또한 최근 부쩍 중시하고 있는 ‘체육 강국’을 실현하기 위해 훈련・경기・선수 육성・체육기자재 생산 등을 모두 컴퓨터와 현대 과학기술에 기초하여 진행하는 ‘체육의 과학화’를 강조한다.

남북관계에서도 과학기술 교류협력을 바라는 북한 

이처럼 북한은 십 수 년 전부터 IT를 중심으로 한 과학기술의 힘으로 국가의 모든 분야를 발전시키려 하고 있다. 남북관계가 단절된 지난 10년 간 가시적인 성과들도 적지 않게 거둔 것으로 보인다. 2~3년 전부터는 남쪽 인사들에게도 과거와 같은 인도적 지원 위주의 협력이 아니라 과학기술을 매개로 한 공동사업을 진행하자고 여러 번 제안했다. 

물론 북한의 과학기술 수준이 세계 최첨단이라거나 남쪽보다 전반적으로 뛰어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남쪽의 자본과 기술력, 북쪽의 자원과 노동력’과 같은 과거의 방식에만 머무를 때도 아니다. 2018년의 북한은 극심한 경제난에서 막 벗어난 2000년대 초의 북한이 아니기 때문이다. IT처럼 남북이 모두 중시하는 과학기술 분야에서 공통의 관심 주제를 찾고,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지원이 아니라 상호 보완하는 방식의 새로운 교류협력을 모색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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