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자는 증오와 공포를 통해 국민들을 통제하려 한다. 국민들이 증오와 공포에 굴복하게 되면 자신의 자유와 권리를 독재자에게 헌납하게 되는 것이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영국 작가 월리엄 골딩의 소설 파리대왕은 이를 우화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소년들이 탄 비행기가 무인도에 불시착한다. 소년들은 처음 서로 협력하며 무인도에서 살아가려고 한다. 그런데 숲에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이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소년들은 공포에 떨게 된다.
소년 중 한 명인 잭은 공포에 떠는 소년들을 선동해 폭력을 조장하고 살인까지 저지른다. 그러나 애초에 괴물 존재하지 않았다. 추락한 비행기의 조종사 시체를 착각한 것이었다.
소설의 주인공 랄프는 이성과 문명을 지키려고 호소하지만 잭과 그의 추종자들은 랄프까지 죽이려 했다.
파리대왕의 이같은 내용은 나치 독일의 히틀러가 집권하는 과정과 일맥상통한다.
히틀러는 공산주의자, 유태인들 때문에 독일이 망할 것이라며 증오와 공포를 조장했다. 뮌헨 폭동이 실패한 후에도 히틀러는 공산주의자, 유태인들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한 불가피한 행동이었다고 떠들었다.
선동에 넘어간 사람들은 쿠데타를 일으킨 히틀러를 찬양하고 그가 솜방망이 처벌을 받도록 만들었다. 오죽했으면 쿠데타를 했겠느냐고 그를 옹호했다.
정계로 복귀한 히틀러는 증오의 정치, 공포의 정치를 멈추지 않았다.
1933년 2월 27일 베를린 국회의사당이 네덜란드 출신의 정신질환 환자의 방화로 불타는 사건이 벌어졌다.
히틀러는 방화범이 공산주의자라며 공산주의자들이 국가를 전복하려는 음모를 꾸몄다고 주장했다. 히틀러는 당장 나라가 망할 것처럼 선전하며 국민들의 공포심을 자극했다.
그리고 행정부가 국회 즉 입법부의 권한을 모두 가지는 수권법을 발표했다. 수권법의 명분은 반국가세력으로부터 국민과 국가를 보호하겠다는 것이었다.
히틀러는 총칼로 수권법을 통과시키지 않았다. 뮌헨 폭동을 일으키고 가짜뉴스로 증오와 공포를 조장하는 나치당은 당시 44.5%의 지지를 받았다. 히틀러는 반대 정당 의원들을 무력화하고 다른 당과 연합하는 방식으로 수권법을 통과시켰다.
많은 독일 국민들이 히틀러와 나치를 지지하며 자신들의 자유와 권리를 자진해서 헌납했고 독일 민주주의는 무너졌다.
히틀러는 수권법을 통과시킨 후 바로 나치당 이외에 모든 정당을 해산시켰다. 그리고 다시 국회 전체를 해산하고 히틀러 마음대로 새로운 국회를 만들었다.
이후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는 모두가 알 것이다. 히틀러는 자신에게 반대하는 사람들은 모두 공산당으로 몰아세웠고 모든 문제는 남탓 유태인 때문이라고 했다. 유태인들은 추방되거나 학살당했다. 급기야 히틀러는 독일의 영광을 외치며 전쟁을 일으켰다.
필자는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포고문을 보고 증오와 공포의 정치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산주의와 반국가세력 때문에 나라가 위태롭다며 공포를 조장한 것이 뮌헨 폭동, 수권법 발표 때 히틀러와 무엇이 다를까? 비상계엄 후 국회의원들을 체포하고 야당을 해산하려고 한 것 역시 수권법을 추진할 때와 유사하다. 아마도 윤석열 대통령은 부정선거를 주장하며 히틀러처럼 새로운 국회를 만들었을 것이다.
의료진을 처단하겠다는 포고문 문구에서는 유태인 탄압이 떠올랐다. 또 비상계엄이 그대로 유지됐다면 히틀러가 그랬던 것처럼 전쟁을 일으켰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증오와 공포의 정치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극우세력들은 여전히 공포와 증오, 폭력을 조장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실체 없는 괴물에 대한 공포 때문에 자유와 권리를 독재자에게 헌납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정치인들과 선동꾼들 그리고 그들의 말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괴물도 없다. 괴물이 없으면 독재자도 존재할 수 없다.
국민들이 대통령을 두려워 할 것이 아니라 대통령이 국민들을 두려워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