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3년 1월 일제 식민지 치하 경성에서 홀로 1000여명의 일본 군경과 총격전을 벌인 사람이 있었다. 바로 독립운동가 김상옥 의사다.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는 김상옥 의사의 의거를 기념하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전시회는 12월 1일 시작됐으며 오는 3월 10일까지 열릴 예정이다. 전시회 관람은 무료다.

김상옥 의사의 투쟁의 의미를 되돌아보고자 전시회를 직접 방문했다.

전쟁기념관 곳곳에는 김상옥 의사의 전시회를 알리는 포스터들이 붙어있었다. 

전시장 앞에는 '김상옥, 겨레를 깨우다'라는 문구와 관람객을 바라보는 김상옥 의사의 모습을 담은 그림이 걸려있었다.    

전시회에는 김상옥 의사가 태어났을 때 부터 순국할 때까지 삶을 돌아보는 방식으로 구성됐다.  

김상옥 의사는 1890년 1월 5일 태어났다. 그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 공장을 다니면서도 야간 학교를 다니는 등 공부에 매진하며 서구 문물과 국제 정세 등을 깨우치게 된다. 이후 김 의사는 철물점을 설립했는데 사업 수완이 좋아서 직원이 50여명에 이르렀다.

김상옥 의사는 편안하고 풍족한 삶을 살 수 있었지만 민족 문제와 독립에 항상 마음을 기울였다. 그는 결국 중국 상하이로 망명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들과 독립운동 방안에 대해 논의했으며 의열단에 가입했다.

김상옥 의사는 조선총독 사이토 마코토를 암살하기 위해 경성으로 돌아왔다. 

전시회는 이같은 김 의사의 여정과 가족들을 소개했다. 또 그가 남긴 유품들도 곳곳에 전시했다. 

김 의사는 1923년 1월 12일 밤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졌으며 일본 군경을 피해 은거했다. 그리고 1923년 1월 22일 새벽 은신처에서 일본 군경 1000여명과 총격전을 벌이며 대치하다가 10여발의 총탄을 맞고 순국했다.

전시회에는 김 의사가 의거에 사용한 것과 같은 종류의 총기 그리고 당시 언론 보도 등을 보여주며 당시 현장을 알려줬다.

360도 영상 장치로 김 의사와 그를 포위한 일본 군경들의 대치 장면을 실감나게 표현했다.

 

 

당시 신문 기사를 바탕으로 한 김상옥 의사의 최후의 모습도 자세히 묘사했다.

전시장 마지막에는 김상옥 의사의 뒷짐을 진 전신 사진이 마련됐다. 사진을 찍을 당시 김 의사는 왜 뒷짐을 지고 사진을 찍느냐는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이에 김 의사는 "나라를 빼앗이고 아무것도 못하고 가만히 있는 두 손이 부끄럽네"라고 답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당시 그의 심경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김상옥 의사의 전시회가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것 자체로 큰 의미가 있다. 김 의사의 총격전, 전투가 결국 민족의 독립전쟁의 일환이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편안한 삶을 살아갈 수도 있었지만 그는 독립전쟁에 투신했다. 전시회는 100년 전 김상옥 의사가 우리에게 묻고 있는 것 같다. 우리는 과연 어떤 삶을 살아야할지 말이다.

김상옥 의사 전시회가 열린 전쟁기념관에서는 선사시대부터 삼국시대, 고려, 조선, 일제 강점기, 6.25 까지 전쟁의 역사를 상시 소개하고 있다. 또 6.25 전쟁 등과 관련된 특별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김상옥 의사 전시회와 함께 둘러보는 것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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