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지하철 1호선을 타고 남영역과 서울역 사이를 지날 때 지하철 전원이 꺼지는 것을 경험한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 이유는 같은 1호선임에도 남영역 쪽과 서울역 쪽의 시스템이 다르기 때문이다. 기술적으로 해결할 방안이 있을 수 있지만 문제는 막대한 비용이 소모된다는 점이다. 이는 시스템이 다른 경우 통합에 큰 불편과 막대한 비용을 초래하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필자는 북한과 러시아의 최근 조약 체결로 한국과 북한 사이에 각종 시스템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난 6월 19일 김정은 총비서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북한과 러시아 사이의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에 서명했다.
이 조약은 23개 조항으로 구성됐으며 9조, 10조, 18조에 IT와 과학기술 협력을 추진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국가 정상 간 조약에 이렇게 자세하게 IT, 과학기술 협력에 관한 내용이 담긴 것은 이례적이다. 그만큼 북한과 러시아가 이를 중요하게 보고 있고 긴밀한 협력을 논의하고 있다는 의미다.
그런데 한국 정부 관계자들은 그 의미와 향후 파장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필자가 만난 한국 정부 관계자들, 전문가들은 상당수가 북한과 러시아의 정치, 군사 관련 협력에만 주목하고 있었다. 일부 IT 협력에 주목하고 있는 정부 관계자, 전문가들도 북한과 러시아의 사이버공격, 북한 IT 인력 파견 제재 등만 신경쓰고 있다.
필자가 생각하는 정말 중요한 의미는 러시아가 주도하고 있는 IT 생태계에 북한이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소식통에 따르면 러시아 디지털 개발, 통신 및 매스미디어부는 중앙아시아,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등 제3세계 국가들과 활발한 IT 협력을 진행하고 있다. 러시아는 미국과 유럽 등이 주도하고 있는 IT 체계, 인공지능(AI) 개발 등에 대응해 연합체를 구성 중이다. 거기에 북한도 참여할 가능성이 있다.
만약 북한이 IT 시스템을 러시아를 기준으로 맞출 경우 향후 남한이 북한과 시스템을 연계하기 어려워질도 수 있다.
필자는 군복무 시절 남한의 항공, 헬기, 방공 시스템에 관한 일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당시 러시아에서 들여온 소방 헬기가 문제였다.
완전히 다른 통신, IT 시스템이 적용됐던 러시아 헬기는 국내 시스템에 접목할 수 없었다. 기술적 문제도 있지만 비용 문제가 컸다. 결국 러시아 헬기의 운행 상황을 사람들이 육안으로 확인하고 전화 통화를 하면서 관리해야 했다.
러시아는 1950년대부터 미국과 냉전을 하면서 독자적인 시스템을 개발, 운영해왔다. 때문에 미국, 유럽 중심으로 시스템을 벤치마킹해 개발, 운영해 온 한국의 체계와는 다른 부분이 매우 많은 것이다.
문제는 현재 IT, 과학기술이 적용되지 않는 것이 없다는 점이다. 단순히 컴퓨터를 운영하는 문제가 아니다.
예를 들어 철도 노선과 체계를 새로 부설할 때 상당 부분은 통신과 IT이다. 중앙에서 IT 시스템으로 열차 운행을 관리하고 통신으로 상호작용을 하게 된다.
한국의 철도와 북한의 철도 시스템, 통신 등이 완전히 달라지면 이를 연결, 통합하는데 막대한 자금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철도 뿐 아니라 항공, 항만, 통신, 전기 등 산업 인프라 전반에서 남북 시스템이 완전히 상이해질 수도 있다.
보수세력은 북한과 남남으로 살면된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향후 남북 관계가 개선돼 상호 교류가 필요해질 수도 있고 나아가 갑작스럽게 통일이 될 수도 있다.
그 때 가장 기본적으로 남한의 체계들과 북한의 체계들을 연결해야 한다. 이런 점 때문에 그동안 역대 정부에서 북한의 IT, 통신, 인프라, 과학기술 등을 연구하고 교류, 협력 방안을 고민해 왔던 것이다. 남북 통합, 통일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미래를 위한 조치였다.
그러나 현재 윤석열 정부는 매우 걱정되는 상황이다.
우선 북한과 러시아의 IT 협력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러시아가 북한과 IT 협력을 하는 것에 대해서 비난만 하고 있다. 과거 정부였다면 러시아와 채널을 통해 양국이 어떤 협력을 하려고 하는지 정보를 파악할 것이다. 또 북한, 러시아와 물밑 협상으로 북한이 러시아 IT 생태계로 완전히 밀착하는 것을 막으려 했을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윤석열 정부가 북한 IT에 대한 정확한 분석, 남북 IT 교류, 협력, 시스템 통합 준비를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윤 정부는 북한 IT를 해킹, 외화벌이 관점에서만 바라보고 그런 정보만 수집하고 있다. 반면 북한 IT에 대한 일반적인 정보는 북한의 선전이라고 무시하고, 남북 시스템 통합에 대한 연구를 외면하고 있다. 그동안 지속돼 온 북한 IT, 과학기술, 남북 협력에 대한 연구 지원을 축소하고 관계자, 연구자들을 보이지 않는 손을 통해 압박하고 있다.
북한과 러시아의 IT 밀착에 대한 윤석열 정부의 대책은 러시아와 북한을 욕하는 것 뿐이다.
윤석열 정부의 이같은 방침은 향후 대한민국에 막대한 청구서로 돌아올 것이다. 어쩌면 윤석열 정부 관계자들 때문에 수천 억원이 소요될 남북 시스템 통합에 수조원이 들게 되고, 수조원이 소요될 인프라 통합에 수십조원이 들어갈 수 있다.
그때가 되면 윤석열 정부 관계자들과 보수세력은 남북 시스템 통합에 왜 막대한 자금을 쓰느냐며 미래 정부를 욕하고 있을 것이다.
필자는 이런 미래가 현실화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