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NK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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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부가 최근 '제4차 남북관계발전기본계획(2023~2027)'과 '제4차 남북관계발전기본계획 2023년도 시행계획'을 국회에 보고했다.

필자는 입수한 계획 원문을 보면서 통일부가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부조직법 제31조는 통일부의 역할에 대해 통일 및 남북대화, 교류, 협력에 관한 정책의 수립, 통일교육, 그 밖에 통일에 관한 사무를 관장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통일 및 남북대화, 교류, 협력이 통일부의 주요 업무다.

그런데 '제4차 남북관계발전기본계획(2023~2027)'과 '제4차 남북관계발전기본계획 2023년도 시행계획'을 보면 통일부는 자신을 국정원과 같은 정보기관으로 보고 있는 것 같다.

통일부는 계획의 과제별 소관 부처 현황에서 '북한 정보분석 강화' 업무를 통일부 단독 소관으로 명시해놨다.  

 

통일부가 통일과 남북 관련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대북 정보를 분석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통일부가 계획에 넣은 내용은 그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통일부는 유관기관들과 북한 관련 정보공유 네트워크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이미 통일부는 유관기관들과 협력하고 정보를 공유하고 있는데 상시적 정보공유 네트워크를 구축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관계자들에 따르면 통일부는 국정원, 국방부 등으로부터 북한 관련 정보를 실시간으로 더 많이 받는 방안을 추진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국정원, 국방부 등은 위성정보를 관리, 분석하고 있는데 통일부는 이를 자신들의 계획에 반영해놨다.

그러나 이에 대해 관계 기관 관계자들은 다른 이야길 하고 있다.

한 정보기관 관계자는 "북한 관련 주요 정보는 안보협력체계 내에서 공유가 된다. 안보협력체계에는 국가안보실, 국가정보원, 국방부, 경찰청 등이 포함된다"며 "그런데 통일부가 안보기관이냐? 정보기관이냐? 통일부는 통일을 준비하고 남북 대화 창구 역할을 하는 정부부처가 아니냐?"고 말했다.

더구나 통일부는 계획에 '해외 정보기관과 교류활성화', '국내외 정보기관 등 자문그룹 운영 및 연계 강화'라는 내용을 명시했다.

북한 정보를 다루는 연구소는 연구기관으로 지칭된다. 정보기관은 말 그대로 정보를 다루는 국정원과 같은 기관을 뜻한다. 해외 정보기관이라고 하면 미국 CIA, 일본 내각조사국, 영국 MI6, 이스라엘 모사드 등이다. 통일부는 이들 기관과 협력하고 정보 교류를 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일단 해외 정보기관들과 교류는 한국의 정보기관들의 소관이다. 통일부가 해외 정보기관들과 협력하는 것에 다른 기관들이 문제를 삼을 수 있다.

만약 통일부가 협력을 하게 된다고 해도 문제다. 해외 정보기관들은 타국의 정보를 입수하려고 하면서도 자신들의 핵심 정보는 제공하려 하지 않는다. 때문에 우방국 정보기관들 사이에서도 치열한 신경전, 첩보전이 이뤄진다.

과연 미국 CIA가 통일부에 북한 관련 핵심 정보를 줄까? 자칫 통일부의 정보만 해외로 넘어갈 수 있다.

통일부의 구상이 이뤄진다면 통일부는 국정원, 국방부, 경찰청 등과 정보를 공유하게 되고 다시 해외 정보기관과 교류를 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통일부가 브릿지 역할을 하게 돼 해외 정보기관으로 국내 기관들의 정보가 넘어갈지도 모른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통일부는 외교부 업무인 국제 협력에도 관심이 많다.

실제로 계획에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한 중국, 러시아의 건설적 역할 견인과 ▲주변국 뿐 아니라 EU, 아세안 등으로 협력 범위 확장 및 협력 분야 다변화를 통해 국제 사회와의 소통을 심화 발전 등 거창한 내용도 포함됐다. 그나마 이 내용은 통일부가 외교부와 함께 추진하겠다고 명시해 놨다.

정작 통일부의 실제 주관 업무와 관련해서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고 있다.

계획에서 통일부는 '원칙 있는 남북관계 정상화 추진', '원칙과 일관성에 기초한 북한 비핵화와 평화정착 추진' 등 그럴듯해 보이지만 모호한 내용을 반영했다. 해석에 따라서는 그 동안 역대 정부와 통일부가 원칙 없이 통일 정책을 추진했다는 뜻이 된다.  

그러면서 통일 주요 정책인 '담대한 구상'과 관련해서는 통일부가 외교부, 기재부, 과기정통부, 국방부, 농식품부, 산업부, 복지부, 국토부, 해수부 등 다른 부처들과의 공동 과제라고 표기했다.

남북 교류 협력 사업도 새로운 것은 없고 이미 예전부터 진행된 '겨레말큰사전 편찬'과 '개성만월대 발굴' 등을 내세웠다.

중국집 주방장이 자신의 본업인 짜장면은 다 함께 만들자고 하면서 옆집의 초밥을 자기 것이라고 자기가 만들겠다고 나서는 것처럼 느껴진다.  

통일부의 최근 움직임과 계획을 보면 외교, 안보, 정보 등을 다 총괄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한 유관 부처 관계자는 "통일부가 무슨 국가안보실이고 통일부 장관이 국가안보실장이냐"고 말하기도 했다.

권투선수 마이크 타이슨은 "누구나 그럴듯한 계획은 있다. 한 대 맞기 전까지는"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계획은 누구나 세울 수 있다. 또 계획이 거창할 수도 있다. 하지만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통일부가 정보기관이 되겠다고 해서, 국가안보실 역할을 하겠다고 떼를 쓴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더구나 해외 정보기관과 협력은 치열하고 냉혹한 현실을 모르는 소리다. 

통일부가 협조를 구한다고 해서 중국, 러시아 정부가 "네 알겠습니다"하고 들어줄 만큼 외교 역시 만만하지 않다.

통일부가 정보기관을 흉내낸다면 본업인 통일 준비, 남북 교류협력 추진을 망각하는 것으로 비춰질 것이다. 결국에는 모두가 통일부에 등을 돌릴 수 있다. 그 결과는 통일부 해체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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