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삼국시대 신라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지만 신라 경제, 문화에 대해서도 민족 문화를 빛낸 업적으로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 오늘의조국사가 발행한 잡지 금수강산 2023년 3호에 신라를 소개하는 글이 게재됐다.

금수강산은 “신라는 1세기 초중엽부터 935년까지 존재한 봉건 국가로 고구려, 백제 등과 함께 삼국시기의 대표적인 나라들 중의 하나이며 첫 통일국가였던 고려가 성립하기 이전시기 발해와 병존한 나라이다”라며 “신라봉건국가가 성립된 때로부터 7세기중엽까지 고구려, 백제와 함께 존재하던 시기의 신라를 전기신라라고 하며 그 후 대동강 남쪽 지역을 판도로 삼고 그 이북의 발해와 병존한 신라를 후기신라라고 한다”고 설명했다.

금수강산은 신라가 사로봉건소국을 모체로 성립된 나라였다며 건국 이래로 고정된 나라이름이 없이 사로, 사라, 서라(나)벌, 계림, 신라 등으로 불리다가 503년 국호가 정식으로 신라로 고착됐다고 전했다.

금수강산은 삼국 중 신라를 가장 낮게 평가했다. 금수강산은 “고구려, 백제보다 뒤늦게 세워진 신라는 두 나라에 비하여 경제 문화적으로 뒤떨어지고 국력이 상대적으로 약했다”며 “그리해 신라는 고구려를 대국으로 받들면서 그의 정치군사적 지지와 비호를 받는 한편 선진적인 문화와 제도를 적극 받아들이면서 자체의 힘을 키워나가게 됐다. 그러나 전기신라시기부터 신라 통치배들은 외세와 야합해 동족의 나라들을 해치려는 야망 밑에 군대를 대대적으로 늘여 동족대결에 나섰다”고 비판했다.

금수강산은 660년 당나라가 백제를 침공했을 때 그에 맞춰 5만의 군대를 동원시켰으며 668년에는 무려 20만에 달하는 무력을 편성해 외세와 함께 고구려를 침공했다고 전했다. 또 732년에는 발해에 대한 적대시 정책을 추구하던 나머지 외세에 추종해 동족의 나라인 발해를 반대해 신라군을 출동시키는 망동도 부렸다고 주장했다.

북한은 이처럼 신라 정치를 비판했지만 경제와 문화는 비교적 높은 수준에서 발전했다고 소개했다.

신라에서는 6~7세기에 벼와 보리 2모작 재배를 적극 도입했으며 기상학, 천문학, 의학을 비롯한 과학 분야와 건축술, 금속가공기술 등 여러 분야에서 당시로서는 높은 수준의 발전을 이뤘다고 전했다.

또 신라에서는 7세기 전반기에 천문대인 첨성대를 건설해 기상학, 천문학을 발전시켰고 645년 에 완공된 황룡사는 신라의 절들 중 제일 큰 절로 고구려의 금강사, 백제의 미륵사와 더불어 삼국시기 가장 웅장하고 화려한 절 중 하나였다고 설명했다.

또 천수백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도 변치 않고 그대로 보존돼 있는 불국사의 다보탑과 석가탑은 후기 신라의 건축술의 발전 면모를 보여주고 있으며 경주석굴암의 조각상들은 고구려 고분의 벽화와 함께 당시 우리 민족의 미술 발전 수준을 잘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또 신라에서는 여러 주제의 설화와 시가, 향가를 비롯한 많은 문학작품들이 창작됐으며 특히 그 후기에는 혜초의 왕오천축국전과 같은 여행기와 수이전체문학과 관극시 등 새로운 문학형태들이 나타났다고 소개했다.

금수강산은 “신라 인민들은 자연과 사회의 구속에서 벗어나기 위한 투쟁을 쉼 없이 벌림으로써 우리 민족 창조의 역사를 빛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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