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일성종합대학이 광개토왕릉비가 귀중한 민족 문화유산이라고 지적했다.

김일성종합대학은 9월 19일 고구려의 두 번째 수도였던 국내성(현재 중국 길림성 집안시)의 동쪽 언덕에는 광개토왕릉비가 있다고 소개했다.

대학은 광개토왕이라는 이름 자체에는 나라의 영토를 넓힌 왕이라는 뜻이 담겨져 있다며 광개토왕릉비는 고구려의 역사 발전에서 하나의 획기적인 계기를 열어 놓은 그의 공적을 찬양해 고구려 사람들이 그가 사망한 2년 후인 414년에 세운 기공비(공적을 기록하여 놓은 비석)이라고 설명했다.

대학은 광개토왕릉비가 우리 민족이 직접 자기의 손으로 써서 세워 놓은 금석문 유산으로 지금까지 남아있는 비 가운데서 가장 크고 제일 오랜 것이라고 소개했다. 웅장한 규모, 비문에 세 나라 관계, 대외 관계와 관련한 사료적 가치, 간결한 문장과 엄정하고도 원숙한 예서 글씨 등으로 인해 이 비가 세계적으로도 자랑할 역사 유적이라고 주장했다.

대학은 비의 글자수가 약 1800자로서 그중에서 알아볼 수 있는 글자는 1534자이고 애매하거나 전혀 보이지 않는 글자는 266자라고 설명했다.

비문 내용은 크게 3개의 문단으로 돼는데 제1문단은 서문으로서 고구려 시조 동명왕이 나라를 세운 경위와 그 후 역대 왕들의 계승관계, 광개토왕이 즉위해 고구려의 국가적 위력을 크게 떨친 공적, 그가 죽은 후에 산릉을 쌓고 비를 세우게 된 유래를 기록했다는 것이다.

또 제2문단은 비의 본문으로서 광개토왕의 업적을 연대별, 사건별로 서술돼 있다고 전했다. 북방으로는 비려, 식신, 동부여를 징벌해 영토를 크게 넓힌 사실, 남방으로는 백제, 가야의 많은 성들과 지역을 차지한 내용 그리고 신라를 위협하던 왜를 징벌하고 신라를 도와주는 동시에 더 강하게 끌어 당김으로써 삼국통일 위업을 크게 다그치고 세 나라 관계에서 주동적 역할을 한 것에 대해 기록했다는 것이다.

제3문단은 비문의 마지막 부문으로서 왕릉을 관리하고 지키는 수묘인들의 구성과 그와 관련한 여러 조치를 기록했다고 한다.

대학은 특히 비문 내용이 역사 기록에는 전혀 없는 많은 역사적 사실들이 기록돼 있기 때문에 고구려 역사는 물론 당시 주변 나라들의 역사를 정확히 이해하고 체계화하는데서 기본 사료가 되고 있는 귀중한 금석문 유산이라고 지적했다.

대학은 광개토왕릉비가 비문의 방대한 내용과 비석의 웅장성에 있어서 단연 으뜸가는 귀중한 우리 민족의 문화유산이며 고구려사와 삼국 역사, 초기 일본과의 관계사에 귀중한 역사적 자료를 제공해주는 금석문 유산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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