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백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북한은 백제를 우리 역사에서 중요한 국가 중 하나로 인식하면서도 고구려의 영향을 크게 받은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북한 오늘의조국사가 발간한 금수강산 2023년 2호가 백제를 소개했다.

금수강산은 “조선민족사의 첫 봉건국가이며 동방의 천년강국이였던 고구려와 동시대에 존재한 백제는 삼국시기 봉건국가들 중 하나”라며 “백제는 기원전 1세기말엽부터 기원후 660년까지 지금의 한반도서남부 일대를 자기의 활동 무대로 삼고 역사 발전에서 큰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금수강산은 백제의 시조 온조가 고구려 건국시조 동명왕의 아들이었다며 고구려의 왕위를 물려받을 수 없었던 그는 여러 신하들과 많은 백성들을 거느리고 고구려를 떠나 한강 유역에 정착해 새 나라를 세웠는데 그것이 백제라고 지적했다.

금수강산은 온조에 의해 세워진 백제가 당시 고대국가인 진국의 구성 부분이였던 마한에 종속돼 있는 자그마한 소국에 불과했지만 물산이 풍부한 한강 유역의 유리한 자연지리적 조건을 가지고 있고 고구려의 선진적인 정치제도를 그대로 받아들여 마한의 어느 지역보다 빠르게 발전했다고 주장했다.

이후 백제는 국력이 강화됨에 따라 마한의 여러 소국들을 병합해 기원전 1세기말엽에는 예성강이남, 금강이북지역을 차지하고 마한의 통제에서 벗어난 독자적인 봉건국가로 됐다고 설명했다. 또 기원후 1세기초에는 종주국 마한(진국)을 멸망시키고 오늘의 전라북도 지역을 다 차지했으며 4세기 중엽에 이르러서는 오늘의 경기도와 충청남도, 전라남북도의 전체 지역과 충청북도, 강원도, 황해남도의 일부 지역을 차지하는 등 최강성기를 맞이하게 됐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끊임없는 전쟁과 인민 대중에 대한 착취와 억압의 강화로 사회계급적 모순이 심화되고 국력은 약화돼 660년 멸망했다고 지적했다.

북한은 백제가 고구려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금수강산은 “백제는 고구려의 선진적인 정치, 경제, 문화제도의 영향 아래 사회생활 전반에서 다방면적인 발전을 이룩한 강력한 봉건국가였다”고 밝혔다.

또 일찍부터 농업이 발전했던 백제에서는 쇠보습, 쇠괭이, 쇠낫과 같은 철제농기구들이 농업에 광범히 이용됐으며 같은 땅에서 물을 대여 논농사도 하고 밭작물도 재배하는 수륙겸종법을 널리 실시했다고 전했다. 벼, 보리, 밀 등 5곡과 갖가지 과일들, 여러 채소들도 많이 재배했으며 축산업과 잠업도 발전했다는 것이다.

또 백제에서의 수공업은 봉건국가의 관청에서 운영하는 관영수공업과 개별적인 상공인들이 경영하는 민간수공업 등 여러 형태로 존재했는데 이것은 제철제강과 금속공예, 기와 및 벽돌제작과 돌가공, 목조업, 직조업 등 수공업 분야의 다방면적인 발전을 추동했다고 밝혔다.

이 시기 백제의 칼이 유명했는데 백제칠지도로 불리운 칼과 명광개라는 갑옷은 다른 나라들에서 가장 귀중한 보물로 여겼다고 전했다.

또 백제의 교통운수와 상업도 당시로서는 높은 수준에 있었고 천문학과 의학을 비롯한 문화 분야에서도 다방면적인 발전을 이룩했다고 소개했다.

금수강산은 백제 인민들이 생활풍습에서도 민족의 고유한 풍습을 적극 계승하면서도 고구려의 선진적인 복식제도와 장례풍습 등을 적극 받아들여 조선민족의 단일성을 공고화하는데 이바지했다고 평가했다. 

금수강산은 백제가 삼국시기 역사 발전에서 지울 수 없는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 나라들 중 하나였다고 전했다.

북한은 백제의 문화를 높이 평가하면서도 백제가 고구려의 영향을 받았다며 고구려를 더 우위에 두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북한은 삼국시대 고구려, 백제, 신라 중 고구려에 정통성을 강조하고 있다. 북한은 신라의 삼국통일 역시 인정하지 않으며 최초의 민족 통일국가를 고려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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