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는 고대국가인 가야가 마지막까지 중앙집권제를 실현하지 못한 한계성을 지닌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 민족 국가 중 하나로 문화를 발전시켰다고 지적했다.

북한 선전사이트 내나라는 김명일 사회과학원 력사연구소 연구사 명의로 가야를 소개하는 글을 4월 23일 게재했다.

내나라는 “가야는 고구려, 백제, 신라와 함께 우리나라 삼국시기에 존재했던 봉건국가들 중 하나이다”라며 “가야봉건국가의 존재방식에서 특징적인 것은 6개의 봉건소국들이 연합해 이루어진 연합체적인 봉건국가였다는 것이다. 이것은 통일적인 국가권력구조를 갖추고 있던 고구려, 백제, 신라와는 구별되는 것이였다”고 설명했다.

내나라는 원래 한반도 중남부 지역에는 B.C. 12세기경부터 노예소유자국가인 진국이 존재했으며 그후 B.C. 2세기~B.C. 1세기경 진국의 한 구성 부분인 변한의 12개 소국들 중 구야국과 안야국 등에서 봉건적 요소들이 싹트고 발전했다고 전했다. 이에 기초해 B.C. 1세기경에는 가야봉건소국이 출현했다는 것이다.

내나라는 가야건국 전설에 의하면 가야에는 9명의 우두머리들이 다스리는 9개의 정치세력이 있었으며 1세기 중엽 북방에서 남하한 김수로의 집단이 현지의 토착세력과 결탁해 금관가야국을 맹주로 하는 6개의 가야소국(금관가야, 아라가야, 고령가야, 대가야, 성산가야, 소가야)들의 연합체인 가야봉건국가를 세우게 됐다고 설명했다.

내나라는 당시 고구려나 백제, 신라는 일찍부터 중앙집권적 통치 체제를 확립했으나 가야만은 마지막까지 중앙집권제를 실현하지 못하고 지방분권적인 소국연합체 단계에 머물러 있었다고 지적했다. 결국 가야연합체를 이루고 있던 소국들은 6세기에 들어서면서 신라에 의해 하나하나 각개 격파되는 운명을 면할 수 없었고 562년에는 대가야의 멸망과 함께 가야도 끝이 났다고 설명했다.

내나라는 “가야는 민족에 의해 세워진 나라로서 동족 국가들인 고구려, 백제, 신라와 평화적 관계를 맺고 있던 시기도 많았다. 이러한 시기에는 고구려, 백제의 선진적인 문화를 받아들여 경제와 문화의 여러 분야들을 발전시켰으며 바다건너 일본 열도에도 진출해 자기의 문화를 전파시켰다”며 “가야는 음악과 무용을 비롯한 문학예술 분야에서도 발전을 이룩했다”고 소개했다.

내나라는 가야가 특이한 국가존재방식을 가진 봉건국가로서 삼국시기 우리 역사에 자기의 뚜렷한 자욱을 남겼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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