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는 공문을 받고 참여했을 뿐입니다. 주무 기관이 아닙니다."

"사실 저희도 자세한 내용을 알지 못합니다. 공문을 받고 참여한 것 뿐이라..."

"다른 기관이 주관하고 있어서 그쪽에 문의를 하시죠."

지난달 한국 정부가 부처 합동으로 북한 IT 인력 위장 취업에 대한 주의보를 발령했다. 하지만 정작 발령에 참여한 유관 부처 공무원들은 관련 내용을 잘 알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다. 

지난 12월 8일 외교부, 국가정보원,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통일부, 고용노동부, 경찰청, 공정거래위원회 등은 국내 기업들이 국적과 신분을 위장한 북한 IT 인력을 고용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며 정부 합동주의보를 발표했다.

정부는 북한 IT 인력들이 해외 각지에 체류하면서 자신들의 국적과 신분을 위장해 전 세계 IT 분야 기업들로부터 일감을 수주해 매년 수 억 달러에 달하는 외화를 벌어들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다.

A부처 관계자는 "사실 이번 사안은 B, C 기관이 주관을 했다. 우리는 공문을 받아서 참여했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을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B부처 관계자는 "우리가 이번 주의보에 주무 기관이라는 것은 금시초문이다"라며 "주무 기관이라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확인해 보니 우리도 공문을 받아서 내용을 알았다"고 해명했다.

D부처 관계자는 "솔직히 E부처가 주관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우리 역시 공문을 받았을 뿐이다"고 설명했다.

주무 기관 중 하나로 지목한 국가정보원 관계자는 위험이 있다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내용을 설명하지는 않았다.

지난해 12월 22일 국정원은 경기도 판교 제2테크노밸리 소재 국가사이버안보협력센터에서 해킹 동향과 내년 전망을 발표했다.

이 자리에서 기자의 북한 IT 인력 위장 취업 관련 질문에 국정원 관계자는 "북한 IT 인력들이 신분을 위장해 링크드인 같은 곳에 프리랜서로 활동했다”며 “국내에서도 위협이 있어서 경보를 발령했다”고 설명했다. 이 발언 이외에는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았다.

정부 관계자들이 이렇게 대응을 하면서 북한 IT 인력 위장 취업의 실체에 대해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 조차도 최근 새로운 위협이 있는 것인지, 과거 사례를 취합해서 발표한 것인지, 대북 선언적 의미인 것인지 의견이 분분하다. 

가장 먼저 지적되는 것은 정부 합동 주의보 발표가 충분히 논의됐냐는 점이다.

정부 합동 주의보가 발표되려면 위협 정보가 공유되고 각 부처의 전문가들이 모여 논의, 평가한 후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정부 관계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충분한 논의 없이 특정 부처가 주도하고 다른 부처들이 단순히 참여한 것으로 추정된다.

주의보가 발표된 이후 자세한 정보가 공유되지 않는 것도 문제다. 주의보의 의미는 많은 사람들과 기업들에게 주의를 하라는 뜻이다. 주의하기 위해서는 정보가 필요하다. 

그런데 공무원들 조차 자세히 모른다고 말하고 있다. 관련 정보가 보안사항이기 때문이라면 주의보 자체를 발령해서는 안됐다. 주의보를 발령했으면 정보를 공개하는 것이 맞다.

정부는 주의보를 발표하면서 붙임 자료를 통해 유의사항을 설명했지만 일부 내용에 대해서는 확인이 필요하다. 

필자가 각 부처들에 문의를 한 이유도 붙임 자료의 내용 중 일부가 약 5~10년 전 내용이거나 알려진 사안과 다른 점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번 사안의 또 다른 문제는 정부 부처와 공무원들이 북한 관련 이슈에 손사래를 치고 있다는 점이다.

보수, 진보 정권이 바뀔 때 마다 북한 관련 사안이 문제가 되고 있다. 윤석열 정부 집권 후에도 문재인 정부 시절 대북 관련 사안으로 각종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정권에 따라 정책 결정 사안이 적폐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들은 북한 IT 인력 위장 취업에 대해 각 부처와 공무원들이 거리를 두는 원인 중 하나가 이런 우려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아이러니 하게도 이번 주의보 발령은 앞서 설명한 것처럼 부처들의 상황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서로 미루고 모른다고 하는 민낯을 보여준 것이다.

아마도 주의보가 발령되지 않았다면 이런 촌극은 알려지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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