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일성종합대학은 7월 25일 홈페이지를 통해 고려-조선왕조 시기 궁중에 설치한 학문연구기관으로서 집현전이 있었다고 소개했다.
대학은 집현전이란 이름이 1136년(고려 인종 14년)에 연영전(延英殿)을 집현전으로 개칭한데서 처음으로 생겨났으며 13세기말~14세기초에 진현관을 두면서 폐지된 일이 있었고 14세기 중엽에 두 차례의 개편사업이 있었다는 것이다. 집현전에는 문반들 가운데서 학식과 재능이 있는 자들이 겸임직으로 소속돼 있었다고 설명했다.
대학은 대학사, 학사(때로는 대제학, 제학이라고도 하였음) 등의 벼슬이 있었다며 학사(學士)들을 두고 강론을 하는 것 외 조선왕조초까지는 별다른 활동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조선왕조 1420년(세종 2년)에 와서 이미 존재하던 집현전을 궁중에 설치해 겸직으로 영전사(정1품), 대제학(정2품), 제학(종2품), 부제학(정3품), 직제학(종3품), 직전(정4품), 응교(종4품), 교리(정5품), 부교리(종5품), 수찬(정6품), 부수찬(종6품), 박사(정7품), 저작(정8품), 정자(정9품) 등의 기구직제를 제정해 두면서 전임학사 10명을 두었던 것을 1436년(세종 18년)에 전임학사를 20명으로 늘임으로써 기구가 확장되고 기능이 커졌다고 대학은 전했다.
대학은 집현전에 많은 도서를 구입해 비치했고 벼슬아치들로는 이른바 학문이 깊고 덕행이 있는 자들을 뽑았다고 소개했다. 그들은 왕 앞에서 경서를 강론하는 임무와 사관의 역할, 왕이 내릴 명령의 내용을 대신 짓거나 옛 제도와 유교학문의 연구 등의 일을 수행하면서 봉건통치에 필요한 책을 저술, 편찬해 봉건통치를 학술적으로 뒷받침했으며 국왕의 고문역할도 했다는 것이다.
15세기 전반기 이름있는 학자인 성삼문, 박팽년, 정린지, 신숙주, 최항, 강희안 등 집현전학자집단은 훈민정음창제에 참가했고 어학책인 동국정운, 고려시기 역사책인 고려사, 고려사절요, 지리책인 팔도지리지, 농사관계책인 농사직설 등 각이한 분야의 책을 편찬 출판했으며 여러 천문관측기구를 만드는 사업도 진행했다고 한다. 이를 통해 집현전이 문화발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세조가 왕이 된 후 집현전은 세조를 반대하는 세력의 중심 인물들이었고 후세에 사육신으로 이름을 남긴 성삼문, 박팽년 등의 집결처로 됐기 때문에 1456년에 폐지됐다고 대학은 지적했다.
대학은 조선봉건왕시기의 집현전이 학문연구기관으로서 봉건 국왕의 고문역할도 했지만 그 존재를 마칠 때까지 문화발전에 일정한 기여를 했다고 평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