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발칼럼] 길은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다
[도발칼럼] 길은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다
  • 강진규 기자
  • 승인 2019.11.06 16: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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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원을 통일했던 진나라가 망한 후 항우는 자신의 라이벌인 유방을 한중으로 몰아냈다. 한중은 산으로 둘러 쌓인 험지로 잔도를 통해서만 중원으로 나올 수 있었다.

유방의 한나라 장수들은 어떻게 잔도를 통해서 중원으로 나갈 수 있을까 고민했다. 유방을 막으려는 항우의 초나라 장수들 역시 잔도로 병력을 집중시켰다.

모두가 잔도라는 하나의 길만 생각했다. 그런데 유방을 찾아간 한신 장군은 완전히 새로운 길을 제시했다. 잊혀진 옛 길인 진창고도를 통해 중원으로 나가자는 것이었다. 

진창고도라는 새로운 길로 나아가는 것에 대해 의심하고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유방은 결단했고 한신이 이끄는 한나라 군대를 진창고도를 통해 중원으로 나아가 승승장구했다.

최근 남북 협력에 대한 회의론이 부상하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남북 협력이 탄력을 받을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북미 회담이 평행선을 달리고 남북 협력도 좀 처럼 풀리지 않고 있다. 급기야 금강산 관광 시설 철거 문제가 불거지면서 남북 협력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필자는 현 상황이 잔도만을 바라보며 해법을 찾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기존의 통일부, 외교부 중심 그리고 정치, 외교, 안보 중심의 남북 협력이 풀리지 않는다면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 통일부와 통일전선부, 외교부와 외무성 루트가 움직이지 않으면 다른 방도를 찾아야 할 것이 아닌가.

새로운 길은 남북 협력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이다. 정치, 외교, 안보로 남북이 협력하는 것은 당연히 중요하다. 하지만 이들 분야는 장기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정치적 접근은 자칫 논란만 가져올 수 있다.

새로운 방식으로 상대적으로 중립적인 과학기술, IT 분야에 눈을 돌려야 한다. 여기서 남북 과학기술, IT 협력은 기존처럼 일부 영역으로써의 협력이 아니라 남북 협력의 전면에서 주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뜻이다.

과거 정치, 외교, 경제 협력이 '주'가 되고 과학기술, IT 협력이 '부'가 됐다면 그것을 뒤집어 보자는 것이다. 과학기술, IT 협력이 '주'가 돼 남북 협력을 이끌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정치, 외교, 경제 협력도 추진하는 개념이다. 

북한은 과학기술중시 정책을 당의 정책, 국가 전략으로 추진하고 있다. 북한도 4차 산업혁명을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높은 관심을 갖고 있다. 북한 “암기식 교육으로 4차 산업혁명 대응 못 한다”  북한 IT기업 4대 전략은?...AI, AR, 자율조종, 정보보안

남녀가 소개팅에 나가서도 상대방의 성향을 고려해야 한다. 상대방이 껄끄러워 하는 이야기를 고집한다면 다음부터는 전화 조차 받지 않을 것이다. 싫다는 이야길 하기 위해 만나자고 계속 고집을 부린다면 상대방은 스토커로 생각할 것이다. 필자가 많이 차여 봐서 잘 안다.

상대방이 영화를 좋아한다면 영화 이야기부터 하면 된다. 좋아하는 것에 대해 우선 이야길 하고 점차 대화의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 

예를 들어 남북이 인공지능 분야에서 협력할 수 있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은 인공지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북한 역시 인공지능 분야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 

인공지능 분야에서 협력을 한다고 해서 남한이 북한에 일방적으로 인공지능 기술을 제공한다는 뜻이 아니다. 협력에는 여러 형태가 있다. 인공지능이 가져올 부작용에 대해서 함께 논의를 하고 나아가 남북이 인공지능의 평화적 사용을 협의하는 방안을 추진할 수 있다. 북한 “인공지능 살인로봇 국제적 우려”

또 딥러닝 등 인공지능 기술 연구에 대한 학술 교류를 진행할 수도 있다. 이런 논의는 대북 제재와 무관하게 진행이 가능하다. 나아가 향후에는 인공지능 인력 양성, 기술 교류, 스타트업 창업까지 생각해보자. 인공지능 이외에도 빅데이터 분석, 클라우드 컴퓨팅, 증강현실, 가상현실, 교육 정보화 등 다양한 분야로 협력을 확대할 수 있다.

과학기술과 IT 협력은 상대적으로 비정치적이면서도 북한도 많은 관심이 있고 필요성을 느끼는 부분이다. 북한이 충분히 응할 수 있다. 

이 세상에 완전히 분리된 분야는 없다. 과학기술, IT 협력은 그것을 활용한 경제 협력으로 나아갈 것이다. 다시 경제 협력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제도적 뒷받침이 돼야 하고 자연스럽게 정치, 사회적 협력이 이뤄질 것이다.  

남북 과학기술, IT 협력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남북 협력 체계로는 안 된다. 지금은 통일부가 주도하고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을 통일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문제는 통일부는 과학기술이나 IT를 모른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나 방송통신위원회, 산업부 등 여러 부처들이 각각 협력을 추진하는 것도 비효율적일 수 있다.

더구나 정부 관료 조직은 경직돼 있어 유연성 있는 남북 협력이 쉽지 않다.

필자는 남북 정상 또는 고위급 협의를 통해 남과 북에 각각 남북 과학기술, IT 협력을 위한 단체를 만들자고 건의하고 싶다. 이 단체는 기존 정부 조직과 별개이며 민, 관, 학, 연 등이 모두 참여하는 협회, 연합회 등 성격으로 만들 수 있다. 그리고 두 협회가 전담 파트너가 되고 남북 협력만 논의하는 것이다. 

두 기관은 정부, 공공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정치에서 한 발 물러서 협력을 논의할 수 있다. 민간 교류라는 점을 내세우면 남북의 정치적 부담을 덜 수 있다. 배후에서는 남북 협력의 특성상 정부가 지원을 해야 한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두 기관을 통해 공동 과학기술, IT 학술대회, 정보 공유, 인적 교류 등을 추진하자. 나아가 두 기관의 보증을 통해 남북 기업들이 협약을 맺고 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 

두 기관은 정치적 논란을 피하면서 남북의 민간 대표부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법과 규율은 당연히 지켜져야 한다. 남북 교류협력법 준수와 관련된 부분은 이 기관에 통일부가 회원으로 참여하고 전담 인력 또는 팀을 파견해 지원을 해주는 방식도 고려해볼만 하다. 

이같은 방안에 대해 반발이 클 것이다. 기존 정치, 외교 중심의 남북 협력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얼토당토하지 않다고 반대할 것이다. 통일부를 비롯한 정부 부처들 역시 반대할 것이다. 

때문에 만약 이같은 방법을 추진하려면 대통령의 결단이 필요하다. 한신이 진창고도로 군대를 이끌고 간다고 할 때 사람들은 중원으로 가지도 못하고 길을 잃은 병사들이 모두 죽게 될 것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유방은 한신을 대장군으로 임명하고 그의 계책을 지지했다. 비상시기에는 비상한 방법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이 정답이 아닐 수 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수많은 새로운 길들 중 하나일 것이다.

그 길이 정답인지 알기 위해서는 시도해 보는 방법 뿐이다. 실패한다고 해도 다른 새로운 길을 찾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기존 방식만 바라보는 것으로는 답을 찾을 수 없다.

남북 화해 협력은 이땅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선택이 아니고 운명이다. 때문에 회의론에 사로 잡혀 비관하고 포기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계속 제2, 제3의 진창고도를 찾아야 한다.      

강진규 기자  maddog@nk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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