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 보는 정약용은 과학자?
북한에서 보는 정약용은 과학자?
  • 강진규 기자
  • 승인 2020.06.23 15: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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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은 조선 후기 대학자이자 대표적인 실학자로 알려져 있다. 북한에서도 정약용에 대해 과학, 정치, 경제, 문학 등 다방면에서 뛰어난 인물로 평가하고 있다. 북한은 정약용이 진보적 성향의 학자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봉건 지식인에서는 벗어나지 못했다고 한계를 지적하고 있다.

NK경제는 북한 과학백과사전출판사가 편찬한 조선대백과사전(스마트폰용) 중 '정약용'에 관한 내용을 확인했다. 

사전은 정약용을 19세기 초엽의 실학의 대표자라고 정의했다. 사전은 실학자들의 영향을 받으며 성장한 그는 실학 연구에 뜻을 두고 선진적인 사상과 과학기술연구에 힘썼다고 평가했다.

사전은 정약용의 삶에 대해 자세히 소개했다. 우선 그가 1789년 문과에 합격해 홍문관수찬, 승지, 병조참의, 형조참의 등의 벼슬을 지냈고 반대파로부터 카톨릭교 관계자로 지목돼 중앙 정계에서 밀려나 충청도 홍주의 금정찰방, 황해도 곡산부사 등도 지냈다는 것이다.

또 1801년 신유사옥 때 카톨릭교 연루자로 몰려 경상도 장기, 곤라도 강진 등에서 18년 동안 귀양살이를 했고 이 시기에 학문 연구에 힘쓰고 농촌생활을 직접 체험하는 과정에서 자기의 실학적 견해를 더욱 심화시킬 수 있었다고 사전은 지적했다. 1818년 귀양살이에서 풀려나온 뒤에는 벼슬을 단념하고 여러 부문의 학문연구와 저술사업에 더욱 힘썼다고 덧붙였다.

사전은 정약용에 대해 과학자, 기술자로써의 면모를 소개했다. 사전은 "그는 땅이 둥글고 자체로 운동한다는 설을 인정했으며 비, 눈, 우뢰, 밀물과 썰물 등 자연현상을 설명하고 그것이 신비스러운 현상이 아니라고 했다. 기술을 발전시킬 것을 강조하면서 직접 농업, 방직, 선박건조 및 교량건설, 성건축 등에 관한 연구사업도 했다. 수원성을 설계했고 이 성을 쌓는데 큰 역할을 한 거중기도 창안했다"고 설명했다.

사전은 "정약용이 1800년에는 실학자 박제가와 종두술을 실험연구해 성공했다"며 "자연과학 및 기술에 대한 그의 연구성과는 18세기말~19세기초 우리나라의 과학기술발전에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고 평가했다.

또 사전은 정약용이 역사, 지리, 언어에 대해서도 깊이 연구해 여러 면에서 상당한 높은 발전을 이룩했다고 지적했다. 이런 연구성과에 기초해 그는 당시로서는 매우 진보적인 사상을 가지게 됐다는 것이다.

사전은 정약용의 개혁과 관련해 "그는 나라의 경제발전을 저해하고 국방력을 약화시키는 썩어빠진 통치배들의 정치에 대해 비판하면서 당시 첨예한 사회정치적 문제로 되고 있던 봉건적 문벌제도의 폐지와 인재본위의 관리등용, 환곡제도의 폐지 등 일련의 제안을 내놓았다"며 "또 여전법을 실시해 동리 단위로 농사를 짓게하고 일역부에 따라 자기몫을 받고 세납과 병역의무를 지도록 하자는 의견도 내놓았다. 그는 여전법을 실시한다면 각계층의 이해관계를 조절할 수 있으며 국력도 강화될 것이라고 봤다"고 소개했다.

사전은 정약용의 한계도 지적했다. 사전은 정약용이 내놓은 사회경제적 문제들에 대한 일련의 견해들이 당시로서는 매우 진보적인 것이지만 그도 다른 실학자들과 마찬가지로 결코 인민의 이익을 대변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사전은 "목민심서, 경세유표 등에서 그가 제기한 정치개혁안들에는 당시 타락한 봉건통치배들이 인민들을 가혹하게 착취하고 있던 사실을 비교적 예리하게 폭로한 부분도 있으나 그것은 봉건유교정치관에 기초해 어지러워진 통치제도를 정리하고 봉건제로를 강화하기 위한 것이었다"며 "여전법도 봉건유교사상에 기초한 제안이었으므로 현실성이 없는 공상적인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또한 노비 문제와 같이 봉건통치계급의 근본이익에 직접 저촉되는 제도에 대해서는 변경을 반대하는 입장에 있었으며 농민 폭동에 대해서도 적대적으로 대했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사전은 정약용이 봉건 말기에 진보적 양반 계층의 입장에서 극도록 부패타락한 봉건통치배들의 죄행을 폭로하고 당시로서는 진보적인 견해를 내놓았다고 전했다.

북한 사전은 정약용에 대해 과학, 기술은 물론 다방면에 유능한 인물이었으며 개혁 방안을 내놨다고 평가했다. 그럼에도 봉건사회에 속한 한계를 넘어서지는 못했다고 지적했다.

강진규 기자  maddog@nk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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