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뒷담화] 여친이 없어서 홍콩에서 살아 돌아왔습니다
[취재뒷담화] 여친이 없어서 홍콩에서 살아 돌아왔습니다
  • 강진규 기자
  • 승인 2020.03.30 16: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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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홍콩 시위 현장에 취재를 다녀왔습니다. 그러나 부족함, 아쉬움이 있었고 2019년 12월 8일 홍콩에서 대규모 시위가 진행될 예정이라는 소식을 듣고 홍콩으로 날아갔습니다.

홍콩에 도착한 것은 12월 6일 오후였습니다. 카오롱 반도 조던에 숙소를 잡고 주변을 살펴보기 위해 나갔습니다.

11월 시위대가 점거했던 홍콩 폴리텍 대학교로 향했습니다. 대학교는 완전히 폐쇄된 상태였고 곳곳에 시위의 흔적이 남아있었습니다.

 

대학교와 홍콩 정부는 학교로 시위대가 다시 진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 대학교로 통하는 모든 문을 막고 있었습니다. 경찰들도 경계를 했지만 고용된 경비인력들이 주로 출입구를 지켰습니다. 한 학생은 학교에 들어가려다가 산처럼 덩치가 큰 경비원들에게 잡히기도 했습니다. 경비원들은 홍콩 주민이라기보다 외국인들로 고용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렇게 홍콩 폴리텍 대학교 주변을 서성이며 사진을 찍고 기록을 하는데 한 무리의 경비원들이 달려왔습니다. 3명의 경비원은 아랍인으로 보였는데 건강한 체격이었지요.

그들은 저를 큰 소리로 불렀습니다. 말은 'sir'이라며 공손하게 하는 듯 했지만 실제로는 읍박을 지르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러더니 한 명이 저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습니다. "여보세요. 당신 누군데 여기서 사진을 찍는 겁니까? 당신 뭐하는 사람이야?"

저는 순간 얼어붙었습니다. 거기서 기자라고 하면 카메라를 뺏기거나 조사를 받을 수도 있었기 때문에 조심히 이야길 했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온 관광객입니다."

"아 코리아? 근데 관광객이 여기에 왜 와서 돌아디니고 사진을 찍는 거죠?"

"제가 숙소가 이 근처라서 나와서 산책을 하다가 여기에 왔습니다."

그럼에도 경비원들은 의심의 눈초리로 저를 보더군요.

"그런데 이 시기에 홍콩에 여행을 왔어요?"

"예 제 휴가가 지금이라서. 그리고 제가 홍콩을 좋아합니다(I love HongKong)."

"여행을 혼자서 왔다고요? 왜 혼자서 홍콩에 왔어요?"

뭐라고 대답할지 고민하다가 말했습니다. "왜 혼자 왔냐면 여자친구가 없어서요. 그래서 혼자 왔어요."

"에?" 하더니 경비원이 빵 터지며 웃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경비원들에게 이야길하자 3명이 함께 웃기 시작한.

"진짜요? 설마 와이프는 있고 여자친구는 없어서 이런거 아니에요?"

"저 결혼 안했구요. 여자친구도 없습니다. 여행을 함께 올 사람이 없어서 혼자 왔어요."

"근데 여자친구가 왜 없어요?"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요(I don't know). 그냥 여자들이 저를 싫어해요.ㅠㅠ"

안습인 표정으로 "미안합니다. 근데 여기는 사실 뉴스를 봤는지 모르지만 큰 사건이 있었어요. 민감하게 통제하고 있으니 사진찍지 마세요. 즐거운 여행 되시고 여자친구도 생기길 바라겠습니다."

"예..."

그렇게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습니다. 솔로에 대한 측은지심은 만국 공통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만약 여자친구가 있었다면 그 덩치들에게 무슨 봉변을 당했을지 모릅니다. 

7일에는 12월 8일 시위 현장에 대한 사전 답사를 진행했습니다. 수많은 인파가 모이는 만큼 요소요소를 잘 파악해 놓기 위해서 였습니다. 시위가 예정된 공원에는 소풍을 나온 사람들이 가득했습니다.

7일 홍콩 시내를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북한 미술품 전시회를 알게 됐습니다. 정말 우연히 방문을 하게 된 것입니다.

홍콩에서 열린 북한 미술품 전시회에는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제가 유일한 방문객이었고 나올 때 쯤 1~2명의 사람들이 들어왔습니다.

그림을 사려는 사람처럼 직원에게 물어보니 판매되는 북한 그림은 한국 돈으로 수십만원에서 100만원 또 어떤 작품은 1000만원에 달하는 것도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는 사고 싶은 것도 있었지만 돈이 없었기 때문에 눈으로만 감상했습니다. 

12월 8일 시위의 날이 밝았습니다. 시위가 시작되기 1시간 전에 도착을 했는데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모인 사람들은 정말 일반 시민들이었습니다. 가족, 연인, 친구들끼리 마치 공연장에 모여든 것처럼 있었습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모였지만 모두 질서정연했고 사고는 없었습니다.

 

 

시위 행사 진행 중 갑자기 한국인들이 등장했습니다. 한국에서 홍콩 시위 지지를 위해 방문한 시민단체 관계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홍콩 시민들에 대한 지지 의사를 표명하고 구호와 노래를 함께 부르기도 했습니다.

한국인들이 등장하자 시민들 사이에서 한국말이 터져나왔습니다. '안녕하세요' '사랑해요' '감사합니다' 홍콩에서도 한류 열풍으로 한국 드라마, 노래 등이 인기를 끌고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한국 단어를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한국 이외에 다른 나라에서 이렇게 행사에 참여해 지지를 한 것은 없었습니다. 한국 시민단체가 유일했습니다. 저는 그들이 연단에서 내려온 후 달려가서 인사를 했습니다. 그분들은 홍대입구에서 홍콩 시위 지지 행사를 했던 분이라고 하더군요.

이국 땅에서 한국인을 본 것이 너무나 반가웠습니다.

행사가 끝나고 시위대의 행진이 진행됐습니다. 어디서 쏟아져나오는지 엄청난 인파가 모여들었습니다.

 

이날 시위에는 50~60만명의 홍콩 시민들이 참여했다고 합니다.

저는 시위대를 따라 함께 행진을 했습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 때문에 종종 걸음으로 나라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동을 하던 중 골목길로 잘 못 들어가서 인파에 끼어서 거의 1시간을 그렇게 있어야 했습니다.

 

시위는 대체적으로 평화롭게 진행됐지만 일부 검은 복면의 시위대들이 중국 은행에 낙서를 하기도 했습니다.

 

버스 정류장 위에 올라가서 메시지를 전달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시위 현장에는 어린 아이의 손을 잡고 나온 부모도 있었고, 중학생쯤 돼 보이는 자녀가 걱정돼 뒤를 따라다니는 아버지, 어머니의 모습도 보였습니다. 연인들이 손을 잡고 구호를 외치기도 했습니다. 행진을 하다가 맛집이 나타나면 줄을 서서 먹는 모습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날 이들이 외친 것은 홍콩의 독립이 아니라 경찰 폭력에 대한 진상조사와 체포된 사람들의 석방 등이었습니다.

행진은 야간에도 계속됐습니다. 스마트폰 불빛을 비추며 사람들이 행진을 했습니다.

 

 

홍콩 섬 센트럴에 시위대가 도착한 후 공식적인 시위가 종료됐습니다. 시위는 대체적으로 평화롭게 진행됐고 홍콩 경찰도 시위대와 충돌하지 않았습니다.

저녁 8시가 넘은 시간 평화롭게 시위가 끝났다고 생각해서 지하철을 타고 홍콩 섬에서 카오룽 반도의 숙소로 이동했습니다. 너무나 지쳐서 호텔에 들어와서 침대에 누워있는데 TV와 인터넷에서 속보가 뜨기 시작했습니다. 센트럴에서 시위대와 경찰이 대치하고 있고 시민들이 바리케이트를 치며 일촉즉발의 상황이 벌어졌다는 것입니다.

그 때 고민했습니다. 그대로 호텔에 있을 것인지 아니면 현장으로 가야할지. 

다시 언제 이런 취재 기회가 올지 장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짐을 챙겨서 홍콩 섬 센트럴로 향했습니다. 

센트럴에 도착해보니 아찔했습니다. 정말 경찰과 시위대가 바리케이트를 사이로 대치하고 있었습니다.

머리가 아찔한 상황에서 소란이 벌어져서 가보니 홍콩 지하철 당국이 역을 폐쇄하고 운행을 중지하기로 했습니다. 교통이 끊긴다는 것에 심리적 압박감이 들었습니다. 숙소가 카오롱 반도인데 홍콩 섬에서 빠져나가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걱정이 됐습니다. 하지만 이미 늦은 상태였습니다.

시내 사거리가 경찰에 의해 봉쇄됐습니다. 지하철역도 문을 닫았구요. 사거리 중 3곳을 경찰이 막고 있었습니다. 한 곳은 열려있었지만 경찰이 매복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었습니다.

사거리 중앙에 일부 시위대와 기자들만 모여 있었습니다. 시위대 사이에서는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일부 시위대는 해산하고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을 했습니다. 경찰이 약속한 시위 허용 시간이 지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일부 시위대는 계속 투쟁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자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밤 10시가 넘어가는 시간까지 대치는 계속됐습니다. 시위대 몇명이 골목을 통해서 집으로 돌아가고 또 돌아가는 기자들도 있었습니다. 만약 경찰이 강경진압에 나설 경우 무슨일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시위대는 경찰 진입에 대비해 벽돌, 짱돌을 모으고 쇠파이프 등 준비했습니다. 긴장감이 현장에 감돌았습니다.

 

현장에 한글로 된 시위 문구도 있었습니다. 한국인이 쓴 것인지 아니면 유학생이 홍콩 학생이 쓴 것인지 확인되지는 않았습니다.

늦은 시간 침묵을 깨고 한 시위대가 경찰을 향해 비난을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조롱을 담은 비난에 기자들이 몰려들었습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됐을 때 갑자기 저 멀리서 엄첨나게 빠른 속도록 차량이 돌진했습니다. 경찰들이었습니다.

 

경찰 차량이 순식간에 나타났고 거기서 완전 무장한 경찰들이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한 할머니가 십자가를 들고 경찰차를 막아섰습니다. 경찰은 비키라고 경고를 했고 아슬아슬한 상황에서 기자, 시위대들이 할머니를 말렸습니다.

경찰들은 헬멧에 방독면, 방패, 곤봉은 물론 권총을 다 차고 있었고 최루탄 발사기, 고무탄 발사기, 장총 등을 든 경찰도 있었습니다. 경찰은 도로에서 시위대와 기자들을 몰라냈습니다. 확성기로 경고를 하고 실제 경찰들이 위협을 가했습니다.

 

 

위압적인 상황에 모두들 침묵하고 얼어붙은 듯 했습니다. 경찰들이 소리를 지르고 곤봉으로 위협을 하는데 다들 조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 역시 경찰이 다가오면 물러섰다가 다시 경찰이 돌아서면 다가갔습니다.

이날 경찰들은 사거리의 곳곳을 돌면서 바리케이트를 제거하고 시위대를 해산시켰습니다. 어느새 시위대는 흩어졌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골목에서 마스크를 벗고 옷을 바꿔입은 후 저녁을 즐기러 나온 청년으로 변신했습니다. 그 사람들이 방금까지 시위대였는지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지요. 그렇게 깊은 밤 모든 상황이 끝났습니다.

그러나 아직 경찰들은 곳곳에 남아있었지요. 저는 헬멧과 형광 조끼를 벗어서 가방에 넣고 관광객인 것처럼 행동하며 유유히 경찰들 사이를 빠져나왔습니다.  

그리고 몇 블럭을 걸어가서 택시를 잡을 수 있었고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이미 밤 11시가 넘어가는 시간이었고 당시 홍콩 술집, 식당들은 빨리 문을 닫고 있었기 때문에 저녁을 먹을 곳이 없었습니다. 점심을 먹은 후 시위 현장을 쫓아다니느라 아무것도 못 먹었습니다. 당초 8시 30분쯤 숙소에 왔을 때는 맛집을 찾아 가보자고 생각했지만 다 물거품이 됐습니다.

결국 맥도널드를 찾아서 햄버거로 저녁을 떼워야 했습니다. 너무나 피곤한데 기사도 써야하고 사진도 정리를 해야하고 소주를 가져가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주에 뻔데기 통조리, 김치를 먹으며 기사를 썼습니다.

그렇게 홍콩 시위 현장 취재는 마무리가 됐습니다.

 

홍콩에 가서 흥미로웠던 점은 홍콩에서는 남북, 북미 관계의 위기를 거론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홍콩이 위험하다고 하는데 홍콩은 남한이 위험하다고 일촉즉발이라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2019년 12월 홍콩 취재는 위험한 일이 두 번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현장을 경험했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출장이었습니다.

강진규 기자  maddog@nk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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