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뒷담화9] 홍콩에 가서 철물점을 찾아 헤맸습니다.
[취재뒷담화9] 홍콩에 가서 철물점을 찾아 헤맸습니다.
  • 강진규 기자
  • 승인 2019.10.21 01:1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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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시위를 취재하겠다고 생각한 것은 이미 1~2달 전입니다. 정말 홍콩이 어떤 상황인지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던 중 홍콩 정부가 복면시위를 금지하고 10월 2일 홍콩 경찰이 시위대에 총격을 가했으며 10월 3일에는 시위 현장을 취재하던 인도네시아 기자가 고무총탄에 눈을 맞아 한 쪽 눈을 크게 다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에 홍콩으로 취재를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하지만 항공편, 숙소 등을 예약해야 하고 취재 동선을 짜고 국내에 일도 처리해야 했기 때문에 당장 출발하기는 어려웠습니다. 

부랴부랴 취재 일정을 잡은 것이 10월 9일부터 13일까지였습니다. 하루하루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갔고 겁이 나는 상태였습니다. 계획대로 취재를 가야할지 말아야할지 혼자 수차례 고민했습니다.

출발에 앞서 여행자 보험도 들었습니다. 다쳤을 때 병원비는 물론 사망 시 3억 원을 받을 수 있는 보험이었습니다. 홍콩에 간다는 것을 정확히 명시하고 보험에 들었습니다.

현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비상 식량과 술도 준비하고 현지에서 비상 시 연락할 곳들도 확인을 했습니다.

그러나 인천공항에서 홍콩행 항공기를 탑승하는데 의외로 한국인들이 많았습니다. 대화 내용을 들으니 관광을 위해 홍콩을 방문하는 사람들도 꽤 있었습니다. 항공편은 만석으로 출발한. 

홍콩 국제 공항은 평온한 분위기 였습니다. 비교적 한산해보였지만 특별히 문제가 있는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공항과 시내를 연결하는 고속전철을 탔습니다. 위험을 무릎쓰고 취재를 해야한다고 다짐하고 있는데 뒤에서 들려온 것은 한국인들의 목소리였습니다.

"오빠, 오늘 저녁에는 무슨 딤섬 먹을까?"

제 스스로 혼자 너무 오바해서 긴장한 것이 아닐까 창피한 생각도 들었습니다.

홍콩 지하철도 시내도 시위가 없는 곳은 평온했습니다. 시민들은 갈 길을 가고 음식을 먹고 쇼핑을 하고 여느 도시의 모습과 다름 없었습니다.

 

물론 시내 곳곳에 시위의 흔적이 있었고 시위가 진행되는 곳의 상황은 치열했습니다. 평온한 곳들을 보면서 이러다가 취재 한 번 제대로 못하고 귀국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됐습니다. 

시위가 치열해 지면서 경찰 단속이 강화됐고 시위대는 경찰을 피해 게릴라식으로 집결하고 해산했습니다. 경찰에 체포된 시민이 2400여명에 달하고 폭력 진압이 이뤄지는 상황에서 당연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긴밀하게 진행되는 이같은 상황을 아무것도 모르는 외국인 기자가 쫓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고민 끝에 현지 정보 스마트폰 앱, 언론 등을 모니터링했습니다. 일부 앱은 서비스가 중지되기도 했고 TV 방송을 보고 현장으로 달려가기도 어려웠습니다. 현지 언론사 사이트와 앱들을 모니터링하다가 도움을 받은 것이 홍콩 명보 앱이었습니다.

명보는 신조협려, 의천도룡기, 소오강호를 쓴 김용 선생이 창간한 언론입니다. 명보 앱에 대해서는 한국에 있던 독자분이 제보를 해주셨습니다. 

명보는 실시간으로 시위 소식을 전하고 1보, 2보, 3보로 계속 업데이트했습니다. 물론 명보는 중국어로 제공이 됐기 때문에 이를 다시 구글 번역기로 해석해야했습니다. 이렇게 명보 속보를 보고 시위 현장으로 달려갈 수 있었습니다.

처음으로 시위 현장에 간 것은 10월 10일 저녁이었습니다. 그날 오후 홍콩 외곽 마오산 지역을 취재하고 있었는데 명보에서 속보가 올라왔습니다. 당초 오후 5시 침사추이 경찰서 앞에 시위대가 집결했다가 얼마 후 해산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2시간이 지난 후 다시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마오산에서 침사추이로 향했습니다. 현장에는 홍콩 시민들과 취재진들이 가득했고 경찰들의 모습도 간간히 보였습니다.

긴장된 상황이 수차례 지나갔습니다. [홍콩 르포4] 홍콩 시위 현장에 가다

그런데 시위 현장을 보니 취재진들이 형광 조끼에 헬멧을 쓰고 있었습니다. 물론 홍콩에 오기 전부터 그런 규정이 있다는 이야길 들었지만 실제로 그런지 여부는 미지수였습니다. 현장에서도 조끼와 헬멧을 하지 않은 기자, 조끼만 입고 헬멧을 안 한 기자, 헬멧을 하고 조끼를 안 입은 기자가 있었습니다.

그날 현장에서는 그런 복장이 크게 중요하지 않았지만 시위대와 경찰이 혼재된 상황에서는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무장 상태로 곤봉을 든 경찰이 달려들지 말라는 법이 없었습니다.

곤봉에 맞아서 팔다리가 부리지고 다친 시민들이 수두록 했습니다. 더구나 경찰은 고무총을 발사하는 총기도 가지고 다녔습니다. 총기로 위협을 가하기도 했습니다.

또 시위대가 오해를 해서 달려드는 상황도 고려해야 했습니다. 실제로 시위대가 시위 도중 중국인을 폭행한 사례도 있었습니다.

시위가 거의 마무리되고 밤 10시경 숙소로 돌아가려고 했지만 지하철이 운행을 중단했습니다. 원래 지하철이 12시까지도 다닌다고 하는데 시위 여파로 조기에 문을 닫은 것입니다. 현장에 수 많은 시민들, 기자로 택시를 잡기가 어려웠습니다. 한참을 걸어간 후 겨우 택시를 잡아서 숙소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밤 11시가 넘은 시각 숙소에서 그 때서야 저녁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가장 시급한 것은 조끼와 헬멧을 구비하는 것이었습니다. 조끼와 헬멧을 사기 위해 10월 11일 아침 몽콕 지역 재래시장을 뒤졌습니다. 그러나 제가 원하는 것들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든 생각이 스포츠용품을 파는 곳에 조끼와 헬멧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스포츠용품 매장을 뒤지기 시작했고 1~2시간을 뒤져서 조끼를 살 수 있었습니다.

헬멧을 어디서 찾아야할지 고민하다가 자전거 매장을 찾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현지 언어를 잘 못하는 관계로 자전거가 아니라 오토바이 매장을 찾았고 원하는 헬멧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자포자기 하며 돌아다니던 중 홍콩 뒷골목에서 철물점 거리를 발견했습니다.

철문점에는 헬멧이 있을 것으로 생각해 철물점들을 뒤졌습니다.

 

철문점에는 안전모가 있었습니다. 철물점에서는 공사장 인부와 거리가 있어 보이는 외국인이 안전모를 사는 것을 의아하게 보는 듯 했습니다. 그럼에도 친절하게 안전모를 찾아주고 제가 바로 쓸 수 있도록 턱끈 등을 조립해줬습니다.

조끼와 안전모를 산 후 다시 시위 소식을 들었고 현장으로 달려갔습니다.

 

현장에는 많은 시민들이 나와 있었습니다. 저는 다른 기자들과 마찬가지 복장으로 취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르는 사람들 속에서 이방인으로 취재를 한다는 상황에 위축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팔이 스치고 사람들이 시선에 긴장이 됐습니다. 현장에서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두려움과 외로움이 밀려왔습니다.

문제는 그날 밤 몸에 이상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긴장 상태에서 걷고 뛰기를 반복해서 인지 왼쪽 발을 삐끗해서 제대로 걸어다니기 어려웠습니다. 숙소에 돌아온 후 어딘가 부딪친 왼쪽 손목이 부어올라서 물건을 집는 것은 고사하고 키보드를 치는 것도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진통제를 먹고 파스를 붙이고 잠이 들었지만 계속되는 긴장 때문인지 복통으로 인해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1~2시간 마다 일어나서 진통제를 먹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깨어난 10월 12일 토요일 아침. 분명 주말을 맞아 대규모 시위가 열릴 것이 자명했습니다. 발과 팔목, 복통까지 몸 상태가 너무 안 좋아서 숙소에 그대로 있어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그런데 홍콩까지 온 것이 너무 아까웠습니다. 하루만 버티자는 생각에 홍콩중문대학으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홍콩 취재6] 학생들의 울분이 가득한 홍콩중문대학

10월 12일 오전 홍콩중문대학을 둘러보고 샌드위치를 먹고 있을 때 침사추이 방면으로 사람들이 모이고 있다는 속보가 나왔습니다. 침사추이로 급히 이동하는데 폭우가 쏟아졌습니다. 

폭우로 사람들이 해산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며 침사추이에 도착했는데 이번에는 지하철역 직원들과 경찰들이 막아섰습니다. 시민들의 시위대 참가를 막기위해 지하철역 주요 출구를 폐쇄한 것입니다. 출구를 찾아서 헤매다가 거리로 나간 후 다시 시위대를 찾아야했습니다. 

사람들은 폭우 속에서도 점점 모여들었고 어느새 비가 그쳤습니다. [홍콩 르포7] 홍콩 시위로 도심 마비...현장 직접 가보니

시위 현장에서 철물점에서 산 안전모와 조끼를 입고 취재를 시작했습니다. 조끼와 헬멧에는 조악하게 프레스라는 글자를 썼습니다. 예쁘게 프린트를 하고 글자를 새길 여력이 없었습니다. 

 

 

시위대는 일반 시민들이 많았지만 적극적으로 시위를 주도하느 검은 옷을 입은 청년들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거침이 없었습니다. 홍콩 관공서와 중국 은행, 상점을 파괴했습니다.

홍콩의 구청 건물이 나타나자 몰려들어 부수고 낙서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중국계 상점과 은행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홍콩 스타벅스 운영권을 보유한 기업인이 시위대를 비난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스타벅스도 공격 대상이 됐습니다.

시위대는 공사현장에서 각목, 쇠파이프 등을 꺼내고 각종 기물로 바리케이트를 만들었습니다.

폭력을 행사하는 시위대를 바로 옆에서 보면서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더구나 한 명이 외치면 사람들이 몰려 들었습니다. 방금 은행 창문을 깬 사람이 몽둥이를 들고 바로 제 옆을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검은 옷을 입은 청년들이 잠깐씩 복면을 벗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들의 얼굴은 중고등학생으로 보였습니다. 어린 학생들이 그렇게 거리로 나선 것이었습니다. 청바지, 치마 등을 입은 학생들이 화장실에서 검은 복장으로 갈아 입고 나오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어린 아이가 부모의 손을 잡고 나오기도 했고 어린 청소년과 부모가 함께 본면을 쓰고 시위에 나오기도 했습니다. 아마 시위에 나간다는 아이가 걱정돼 부모가 함께 나온 것으로 보였습니다. 시민들은 시위에 동참하거나 구호를 외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일부 시민들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시위대를 보고 상점 문을 닫기도 했습니다. 극심한 교통 체증으로 운전자들이 짜증을 내고 시위대와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일부 시위대와 운전자들이 다투기도 했지만 시민들이 말렸습니다.

시위대가 외친 것은 홍콩 자유, 민주주의였습니다. 또 중국에 반대한다는 입장도 나타냈습니다.

정신없이 시위대를 쫓아 지하철역 6~7개 구간을 걸었습니다. 시위대는 포포(PoPo)가 나타났다는 외침에 멈췄습니다. 포포는 경찰을 지칭하는 용어였습니다. 일부 시민들은 해산하라고 외쳤고 많은 사람들이 복면을 벗고 거리로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일부 시위대는 해산하지 않고 남아서 시위를 이어 갔습니다. 그들 중 한 명이 저에게 다가와서 뭔가 소리치더군요. 눈치를 보니 저의 정체를 묻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기자라고 하며 헬멧과 조끼를 보여줬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국인 기자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시위대가 다시 영어로 아닌 것 같다며 자기 생각에는 제가 경찰 뿌락치나 중국인 기자로 보인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한국인이라고 주장하고 그는 제가 중국인(차이니즈)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목소리가 커지고 소란스러운 상황이 벌어지면서 시위대가 저를 주시하고 사람들이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거기서 자칫 잘못 말하거나 행동을 하면 큰 일이 날 수 있겠다고 생각됐습니다.

도망을 갈 경우 더 의심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의 도움을 구할수도 없었습니다. 현장에 외신 기자들이 많았습니다. CNN, BBC, 교도통신 등등. 외신 기자들은 소속 회사별로 여러 명이 함께 다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더구나 저는 취재를 하는 동안 현장에서 한국인 기자를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 시위대 역시 한국인 기자를 현장에서 보지 못했다는 점 때문에 저를 의심하는 듯 했습니다. 한국인 기자가 여기 올리가 없다는 것이었을까요.  

저는 어떻게 하면 믿겠느냐고 했고 여권을 보여주기로 했습니다. 여권을 보여주고 한국인이라는 것을 확인시켜준 후 물러갔습니다. 행여나 여권을 숙소에 두고 왔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지 미지수입니다.

그렇게 취재를 하다보니 저녁이 됐고 시위대가 흩어지는 것을 보고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시위대를 쫓아가다보니 어디인지도 모르는 곳이었고 더구나 휴대폰 전원도 방전된 상태였습니다. 정처없이 왔던 길로 40여분 다시 걸어서 큰 길로 나왔고 거기서 지하철을 타고 호텔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온몸이 부서지는 것처럼 느껴졌지만 오히려 발과 손에는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10월 12일 무사히 시위를 취재할 수 있었다는 것에 대해 안도했습니다.

만약 홍콩까지 와서 취재를 제대로 못 했다면 그것이 더 걱정이었습니다. 사람들에게 홍콩에 취재를 간다고 했는데 취재를 못하면 어떻게 하지, 독자들에게 제대로 된 기사를 못 보여주면 어떻게 하지, 강진규라는 기자가 이 정도 뿐이 안 되는 것인가. 홍콩에 갈 때 부터 마음을 누르고 있던 고민들이었습니다. 10월 12일 취재 후 조금이나마 그런 마음이 해소됐습니다.

물론 홍콩 취재가 흡족하지는 않았습니다. 너무 겁이 많아서 더 적극적으로 취재를 못한 것에 대해 아쉬움이 큽니다. 

다행히 건강은 한국으로 돌아온 후 점차 나아졌습니다. 말로 다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현장의 공포와 긴장감 등의 영향이 컸던 것 같습니다.

IT 기자의 직업병...눈에 들어오는 IT

IT 취재를 너무 오래했기 때문일까. 홍콩 취재를 할 때 눈에 들어온 것은 IT와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홍콩에서 11월 핀테크 행사를 한다며 참가와 투자를 독려하고 있었습니다. 전 세계 관계자들이 참가를 할지 또 행사가 잘 치뤄질지 여부는 의문입니다.

홍콩 공항에서는 클라우드를 홍보하는 텐센트 광고를 봤습니다.

몽콕의 컴퓨터 센터는 한가해 보였습니다.

 

홍콩중문대학에는 블록체인 관련 강의와 프로그램에 대한 내용이 소개되고 있었습니다.

새로운 아이폰에 대한 관심은 홍콩에서도 뜨거웠습니다. 홍콩 애플 매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우연히 들어간 곳이 미슐랭에 나온 레스토랑이라니...

홍콩 시위가 게릴라식으로 갑자기 진행되면서 제대로 식사를 하기 어려웠습니다. 식당에 들어가다가 시위 현장으로 뛰어가고 또 허탕을 친 경우도 있습니다.

 

10월 11일 센트럴역에서 시위 취재를 하고 한 후 오후 2시가 넘었습니다. 아무 생각도 들지가 않아서 근처에 식당을 찾았고 우연히 만만해 보이는 곳에 들어갔습니다. 그곳에는 족발 국수라는 것이 있었고 시켜보니 진짜 한국 족발 삶은 물에 간장을 풀어서 국수를 말아놓은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렇게 국수를 먹고 나왔는데 나중에 홍콩 안내 책자들을 보다보니 그곳이 미슐랭에 나온 식당이었다고 합니다. 미슐랭에서 극찬한 것은 족발 국수는 아니고 다른 음식이었다고.

홍콩에서 먹은 현지 음식 중 가장 맛있었던 것은 숙소 호텔 근처에 24시간 하는 동네 음식점의 볶음밥이었습니다. 취재를 하다가 밤 10시반에 가서 시킨 것입니다. 닭볶음밥과 오향 소스에 조린 두부와 계란이었는데 그 식사가 가장 맛있었습니다. 너무 고생을 하고 먹어서 맛있었던 것도 같습니다. 

숙소 근처에 파이브가이즈 햄버거집도 있었습니다. 밤 9시 30분에 저녁 먹을 곳을 찾다가 갔는데 오바마 미국 전 대통령이 좋아하던 집이라고 선전하고 있었습니다. 늦은 시간인데도 현지인, 외국인들로 만석이었습니다. 기본 햄버거와 감자튀김, 밀크세이크를 시켰는데 한국돈으로 2만7000원이어서 기겁을 한.

10월 10일에는 밤 11시가 넘어서 호텔에 온 후 저녁을 먹었습니다. 슈퍼에서 샀던 볶음밥과 한국에서 가져간 라면, 김치로 끼니를 해결한.

그런데 라면, 소주, 김치를 가져갈 필요가 있었을까 생각됩니다. 홍콩 일반 슈퍼에서도 한국 라면을 팔고 조금 큰 슈퍼에서는 김치, 소주, 과자 등 한국 식품들이 즐비했습니다.

 

홍콩에서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 1997년 홍콩의 중국 반환을 기념해 세워진 조형물에 가봤습니다. 행여나 시민들이 파괴, 낙서하지 않았을까 하는 우려에서 였습니다. 그러나 조형물은 멀쩡했습니다. 오히려 주변에 아무 사람도 없이 적막함을 넘어 처량해 보였습니다.

홍콩이 반환됐을 때 지금과 같은 갈등과 혼란을 예상했던 사람들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군가는 불안해 했겠지만 누군가는 희망을 꿈꾸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모두에게 상처뿐인 지금의 모습은 말 그대로 비극입니다.

노래 가사에도 나오는 것처럼 홍콩의 밤거리가 유명합니다. 쇼핑, 먹거리 천국에 상대적으로 안전해서 많은 사람들이 홍콩을 찾았습니다. 또 홍콩의 밤을 즐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상점, 식당들이 문을 닫고 술집은 썰렁한 상황이었습니다. 홍콩의 밤거리는 경찰과 시위대의 땀과 피로 얼룩진 상황이었습니다.

 

가장 안타깝게 보였던 것은 어느 시위대가 붙인 홍콩을 사랑한다(I Love HK)는 문구였습니다. 그들이 사랑한 홍콩에 자유와 평화가 함께 하기를. 

강진규 기자  maddog@nk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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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석 2019-11-03 02:53:26
강 진규 기자님,

와...
홍콩에도 가셨네요...

사실 외귁 시위 현장에 가신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닐 텐데요...

더군다나 큰 언론사에서 가는 것도 아니고....
기사 정말 재미 있게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