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북한에 대해서 뭘 아나? 나 때는 말이야" 

필자는 개인적으로 기자 생활을 14년째 하고 있으며 북한 IT에 관해 취재를 한 것도 약 10년째가 된다.

그런데 취재를 위해 사람들을 만나보면 많이 듣는 말이 바로 "나 때는 말이야"라는 것이다. 그렇게 말하는 분들은 길게는 1990년대, 2000년대 김대중 정부 시절을 이야기하고 짧게는 2000년대 중반 노무현 정부 시절을 이야기한다.

각자 사연은 다르지만 핵심은 본인이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 남북 교류 협력과 대북 사업을 했었다는 것이다. 약간 과장을 보태서 자신이 남북 정상회담, 개성공단, 금강산관광 등을 할 수 있도록 만들었으며 김대중 전 대통령, 노무현 전 대통령,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은 물론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잘 알고 있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이분들 중 일부는 과거 무용담만 이야길하는 것이 아니라 이후 세대를 무시하고 자신만이 통일, 남북 협력, 대북 사업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1990년대, 2000년대 활약했던 분들의 나이가 지금 60대~70대 많게는 80대에 이르고 있다. 그런데 자신이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에 어르신들이 남북 협력, 대북 사업과 관련된 정부 부처, 정치권 등의 요직을 차지하고 있다.

예를 들어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 실장의 나이는 70대 중반으로 80을 바라보고 있다. 서훈 국정원장과 평양 남북 정상회담에 참석한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나이도 60대 중반을 넘어 70대를 바라보는 입장이다. 이들 이외에도 박지원 전 의원, 정세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 등 70대의 원로들이 많다.

물론 인재를 나이만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 강태공은 70대의 나이에 발탁돼 세상을 바꿨다.

그럼에도 필자가 통일 어르신들의 이야길 꺼낸 것은 최근 남북연락사무소 폭파와 남북 관계를 보며 통일 분야의 세대 교체가 필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남북연락사무소 폭파와 남북 갈등에 대해 다양한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필자는 남북 관계와 관련해 북한에서는 세대 교체가 이뤄졌는데 남한에서는 2000년대 머물러 있는 것도 원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2012년 집권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30대다. 현재 북한에서 대남 정책을 총괄한다고 알려진 김여정 제1부부장도 30대다. 남북 협력에 관여하고 있는 현송월 단장은 40대 초반으로 알려져 있다. 남북, 북미 관계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리선권 외무상과 장금철 통일전선부장, 최선희 외무성 제1부부상은 50대로 추정되고 있다.

솔직히 남한 내에서도 세대 간 소통이 어렵다. 70대 어르신들의 이야길 30대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다. 이것은 어르신들을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라 세대, 문화적 차이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기업들이 협상을 할 때 비슷한 직급은 물론 비슷한 또래를 내보낸다. 상대방이 40대라면 이쪽에서는 40대 아무리 못해도 30대, 50대 비슷한 연령층을 내보내서 응대하도록 한다. 어떤 기업이 40대 바이어의 파트너로 70대를 내보낸다면 상대방은 당황할 것이다. 부모님 같은 분하고 어떻게 협상을 할 수 있겠는가?

민감하고 정치적인 남북 관계는 다르다고 할 수 있지만 사람사는 것은 다 비슷하다. 입장을 바꿔서 필자가 북한의 30대 협상 담당자인데 남한에서 70대 어르신을 보낸다면 불편할 수밖에 없다. 좋은 음식을 대접해서 편히 계시다가 남한으로 돌아가라고 할 것이다. 한편으로는 왜 이런 협상 파트너를 보냈는지 저의를 의심할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불편해하는 상황에서 협상이 잘 될 수 없다.

어르신들 중에서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통일 꼰대들이 있다. "나 때는 말이야", "네가 너희 김정일 위원장하고 회담했던 사람이야" 이렇게 북한 담당자들에게 말하지 않았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행동만으로도 상대방은 그렇게 느꼈을 것이다.

남한에서 북한을 방문한 어르신들은 친근감의 표시로 김정일 위원장 시절을 이야기하고 2000년 정상회담을 말할지도 모른다. 북한 관계자들도 앞에서는 웃으며 들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속으로는 꼰대질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2018년 평양 정상회담 뒷이야길 들은 적이 있다. 어떤 어르신이 북한의 담당자들과 사전 협상에서 북한이 거절한 사안에 대해 김정은 위원장과 악수를 하면서 그걸 들어달라고 갑자기 요청했다는 것이다. 담당자들이 안 된다고 옆에서 조언했지만 김 위원장이 어르신의 청을 들어주도록 했다고 한다. 어르신은 이것을 자신의 무용담처럼 이야길했다는 후문이다.

사실 이렇게 정상적인 절차를 건너뛰는 것은 외교적으로나 도의적으로나 결례다. 20~30대 신세대들이 가장 싫어하는 행동 중 하나다. 그런데 어떤 어르신들은 이렇게 행동하고 말한다. 그것이 당연한 것처럼.

또 통일 꼰대들은 북한의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남북 화해 협력을 주장한다면서 사석에서 만난 어떤 분은 김정은 위원장을 어린아이 보듯이 이야길 했다. 그분 나이를 생각하면 그럴수도 있지만 그런 선입견이 결국 협상을 망친다.

어떤 어르신은 북한의 최신 현황을 모른다. 자신이 경험한 1990년대, 2000년대 북한을 중심으로 생각한다. 현재 북한 주민들 500~600만명이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북한 아이들이 게임을 즐기는 것에 관심이 없다. 남북 갈등이 종이 삐라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또 다른 갈등 요인은 유튜브다. 유튜브 남북 갈등은 언제 터질지 모르지만 그에 대한 연구나 대책도 없다. 무슨 유튜브냐고 20년 전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어르신들이 그런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세대 교체가 이뤄져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후진 양성을 위해서다.

1990년대, 2000년대 활약한 어르신들은 그 시대의 영웅이었다. 하지만 삼국지의 조자룡도 70대가 되면 창을 휘두르기 어려워진다. 2020년에는 새로운 영웅들이 발탁돼야 하는 것이다.  

누군가는 사람이 없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다. 이미 30대에 북한 관련 박사학위를 받은 인재들이 있고 40대에 실무경력을 보유한 인재도 많다. 그들 중 유능한 사람을 찾아내면 된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50대 국가안보실장, 국정원장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아래 차장, 비서관은 30~40대에서 발탁해야 한다.

통일부에서는 30~40대가 장관, 차관을 못할 이유가 없다. 차기 장관으로 원로들만 고려할 것이 아니라 통일부 내부 과장급 인사, 외부 젊은 박사들 중에서 파격적으로 장관을 선임할 수 있다.

물론 나이가 젊다고 무조건 선임해서는 안 된다. 발탁되는 30~40대 인재들은 북한에 대한 전문 지식은 물론 실무 경력이나 최신 현황을 파악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또 젊은 세대들이 말하는 소위 미친 추진력과 남북 관계에 대한 신념 그리고 누구도 생각 못 한 것을 생각하는 창의력이 있어야 한다. 1960년대 북한 서적을 손에 들고 남북 협상 전략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최신 북한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사용해 보면서 고민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이런 이야기는 꿈 같은 소리다. 통일, 외교, 안보 인사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면 누가 더 나이가 많고, 누가 더 선배라는 이야기부터 나온다. 이걸 깨기 위해서는 대통령의 결단이 필요하다.

꼰대라는 표현을 사용했지만 1990년대, 2000년대 활약한 그들은 영웅이다. 그들이 공을 인정해야 한다. 원로들이 그런 역사적 경험을 초등학교, 중학교 등을 돌아다니면서 학생들에게 이야길 해줬으면 한다.

누가 물러나고 누가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영웅들에 대한 결례다. 스스로 김대중, 노무현 정부 당시 통일 정책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알아서 자기 자리에서 내려오는 것이 맞다.  

어르신들은 아름다운 모습으로 남고 앞으로 남북 사업은 새로운 세대에게 맡겨보자.

강진규 기자  maddog@nk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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