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당시 국난 극복에 노력했던 유성룡에 대해 북한은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북한은 유성룡의 개별적인 업적은 인정하면서도 그가 봉건왕조에 충성하기 위해 왜적과 싸운 것이라고 평가절하했다.

NK경제는 북한 과학백과사전출판사가 편찬한 조선대백과사전(스마트폰용) 중 '류성룡(유성룡)'에 관한 내용을 확인했다. 

북한 사전은 유성룡이 임진왜란 때 조선봉건 정부의 관료였다고 설명했다. 사전은 유성룡이 조선에 대한 일본봉건 영주들의 침략야망이 날로 노골화돼 가는 정세에서 1591년 봉건국가의 방위력 강화를 주장했으며 이순신 장군 등 여러 무관들을 군사간부로 등용할 것을 제안했다고 소개했다.

또 그가1592년에 전쟁이 일어난 후 영의정 또는 3도체찰사와 같은  중요한 벼슬자리에 있으면서 봉건정부군의 강화와 왜적 격퇴를 위한 여러 대책을 세우기 위해 힘썼으며 일부 봉건통치배들의 명나라에 지나친 사대주의를 비난했다고 전했다.

사전은 1593년 유성룡이 훈련도감을 설치하고 속오군을 새로 편성하도록 했고 산성들의 방비 시설들도 보강하도록 했으며 군량을 마련하기 위해 둔전을 경영하고 공물을 쌀로 받아내는 등 조치를 취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임진와랜 후 1598년 반대파 양반들의 공격으로 영의정에서 물러나 고향에 가서 살았으며 대표 저서로 임진왜란의 경험에서 교훈을 찾으려는 의도에서 쓴 징비록과 시문집 서애집이 있다고 소개했다.

사전은 유성룡이 당시 양반 관리들 중 경제, 군사부문에 가장 넓은 지식을 갖고 있었으며 전쟁 기간 왜적을 물리치기 위해 많은 애를 썼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사전은 "양방지배계급 출신인 그의 애국심은 봉건왕조에 대한 충성심에 기초한 것이었다"며 "그러므로 그는 인민들의 애국적 힘에 의거해서가 아니라 이들에 대한 가혹한 봉건착취에 기초해 봉건국가를 강화하는 방법으로 왜적을 물리치고 봉건제도를 유지, 강화하려고 했다"고 비판했다.

북한에서는 유성룡의 왜적격퇴 노력, 국방 강화 정책 등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그가 조선왕조 유지를 위해 싸운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강진규 기자  maddog@nkeconomy.com

* 독자님들의 뉴스레터 신청(<-여기를 눌러 주세요)이 NK경제에 큰 힘이 됩니다. 많은 신청 부탁드립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NK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